「세종대사태」책임 누가 지나/이영섭 전대법원장(세평)

「세종대사태」책임 누가 지나/이영섭 전대법원장(세평)

이영섭 기자 기자
입력 1990-07-15 00:00
수정 1990-07-15 00:00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매일 보도되는 신문에 의하면 세종대학의 분규는 드디어 끝간데까지 가고 만듯하다. 혹시나 좋은 소식이 있을까 하고 기다렸던 국민들의 안타까운 마음은 아무 의미없이 무너지고 만 느낌이다.

필자는 세종대학 분규의 실상을 자세히 모른다. 이 대학도 대한민국이 젊은 사람들을 훌륭하게 길러내기 위하여 인정한 사학임에 틀림없다. 명색이 한 나라의 최고학부일진대 반드시 대학으로서의 권위와 긍지가 아울러 갖추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수일전에 신문에 난 사진을 보면 학생들이 총장을 폭력으로 교문 밖까지 끌고 나와 여럿이 보는 앞에서 동댕이쳐서 꼴사나운 망신을 주기도 하고,대학을 찾아간 장관이 탄 승용차 위에 구둣발로 올라가서 천장이 무너져라 발을 구르고 있었다.

학원 중에서도 최고위에 속하는 대학에서 과연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선생님은 아버지와 같아 항상 존경의 대상이어야 하고,선생님은 무한한 애정 속에서 제자를 감싸는 곳이 학원인 것이다.

위와 같은 사진을 볼 때 모든 것이 정상이 아닌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세종대학의 분규는 일찍이 학교법인과 학생들사이의 약속을 법인측이 지키지 아니한 데서 출발했던 것이라 한다. 그리고 학교법인측이 제때에 학생들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은 학교법인의 구성이 지나치게 족벌적 이어서 자유스러운 운신의 폭을 가질 수 없었던 것이라고 한다.

사학재단이 제아무리 재산출연자의 의사를 무시할 수 없다 할지라도 거기에는 상식선상에서 나타나는 조리를 뛰어넘어서는 안된다. 만일 이러한 테두리를 벗어나서 학교법인이 행동한다면 자칫 교직원이나 학생들의 선량한 총의를 짓밟기 쉽다.

슬기로운 재단의 출연자로서는 자칫 빠지기 쉬운 이기심과 독재성을 일보직전에서 제어하고 자유민주정신에 부합되는 교육을 위하여 양보하는 아량을 베풀어야 할 것이다.

이번 세종대학 사태에서도 일찍이 재단측이 용단을 내렸더라면 사태가 이렇게까지 악화되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아니한다. 만시지탄은 있으나 이제와서 서둘러 재단의 이사장과 일부이사가 교체되었다고 한다. 다행한 일이나 이것이 이미기울대로 기울어 버린 사태를 얼마만큼 회복하는데 도움이 되겠는지는 의문이다.

세종대학의 전원유급이라는 엄청난 사태를 보고 국민으로서 또 한가지 생각되는 것은 지금까지 감독관청인 문교부가 무엇을 했느냐는 점이다. 재단이 완미하고 너무 고집스러워서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기 어렵다고 생각되었으면 적시에 손을 써서라도 재단이 할일을 할 수 있게 만들었어야 되지 않았을까고 생각되는 것이다.

다음에 문제되는 것은 지금까지 계속 수업을 거부하여 온 학생 측이다.

재단측이 학생측 총장을 직선하겠다고 약속한 것이 과연 잘한일인지 아닌지는 고려하여 볼 문제이다. 재단이 얼떨결에 학생측과 이러한 약속을 한번 해놓고 민망하여 지키지 아니한데도 국민의 눈으로 볼 때에는 상당한 이유가 있어 보인다. 왜냐하면 학생이 대학에서 총장을 선출하는데 관여한다는 것은 아무리 민주화된 세상이라 하더라도 얼른 수긍이 안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재단이 여러가지 비리가 있어서 학생들로서 견디기 어려울 때에는 대학의 감독청인 문교부장관에게 적절한 감독권 발동을 요청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그러기에 이미 위에서도 본 바와 같이 학생들의 불만이 어디에 있는가를 일찍이 찾아내서 문교부장관이 재단내부를 정화하였던들 이렇게 큰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 아닌가.

지금 사회에는 민주화의 물결이 도처에서 도도히 흐르고 있다. 젊은 혈기에 자칫하면 감성에 호소하기 쉬운 대학생들로서도 학원의 민주화운동에 휘말리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그러나 민주화운동이라고 테두리없이 아무데나 뛰어들어서 목청을 높이는 것만이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대학생은 최고의 지성을 목표로 하여 심신을 연마할 존경할만한 신사인 것이다. 학문의 깊고 향기 높은 냄새를 대학생들로부터 맡을 수 없다면 그러한 대학생이 버젓이 허용되는 그러한 나라의 장래에서 그 무엇을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

대학생은 항상 모든 행동을 이성적인 심성에서 판단하여야 한다. 깊은 사려속에서 우러나오는 신선하고 숭고한 지성적 판단만이 대학생에게 알맞는 행동인 것이다.

일부 대학생들이 툭하면 폭력에 호소하여 화염병을 던지거나 공공건물을 파괴하는 일이 자주 일어나는 것은 진정한 자유민주국가에서 하루속히 없어져야 할 행동이 아닐 수 없다. 자유민주주의를 꽃피우려는 국민의 열망을 짓밟고 거기에 무질서와 혼란을 조성한다면 언제 우리는 정치적인 미숙아의 위상을 벗어날 수 있단 말인가.

세종대학사건을 계기로 일반론으로서 우리 대학생들이 학문연구라는 본분에 충실해주기를 간절히 빈다.
1990-07-15 5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탈모약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재명 대통령이 보건복지부 업무보고에서 “탈모는 생존의 문제”라며 보건복지부에 탈모 치료제 건강보험 적용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대통령의 발언을 계기로 탈모를 질병으로 볼 것인지, 미용의 영역으로 볼 것인지를 둘러싼 논쟁이 정치권과 의료계, 온라인 커뮤니티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당신의 생각은?
1. 건강보험 적용이 돼야한다.
2. 건강보험 적용을 해선 안된다.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