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르바초프 페레스토로이카의 배경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필요」와 「이익」이다. 팽배한 관료주의의 지배아래 창의력과 성취력을 잃은 그 상태로 둔다면 소련은 21세기를 향해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수 없을뿐더러 끝내는 2류 공업국으로 전락하고 말리라는 절대절명의 위기감의 소산이라 해도 좋다. ◆일반적으로 소련인은 정치는 「힘」이라는 신념을 갖고 있다. 국내정치도 국가관계도 최종적으로는 힘에 의해 결판난다는 신념이다. 이데올로기나 체제의 역할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소련인은 그런 것도 주먹 앞에서는 결국은 부차적인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러시아인은 힘이 없는 동지보다도 강력한 적을 내심으로는 훨씬 존경하는 쪽이다. 과거 쿠바 사건에서의 소련의 굴욕은 미국의 압도적인 군사력과 강한 결의 앞에 무릎을 꿇었던 사건이다. 그때까지는 케네디대통령을 연약한 풋나기 정도로 얕보고 있었던 소련인도 이사건 뒤에는 그를 아주 존경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쿠바의 굴욕은 소련의 군비확장의 큰 동기가 되었다. 그 소련이 지금 왜 군축에 앞장 서는가. 그들의 짐이 너무 무겁기 때문이다. ◆쿠바사건의 소련측 당사자는 흐루시초프였다. 따지고 보면 오늘의 동서화해나 군축추세 또는 페레스토로이카의 연원을 거슬러 찾자면 흐루시초프에 이를지 모른다. 그가 은퇴한 뒤 써낸 회고록에서는 6ㆍ25 한국전쟁의 배후에 소련이 있음을 명확히 했다. 『김일성이 모스크바를 두차례나 찾아와 스탈린에게 남침계획을 보고했고 미군의 개입이 없을 것이라는 다짐을 받은 스탈린이 마침내 동의했다』 ◆최근들어 6ㆍ25에 관해서는 「남침」이었다는 전통주의가 북침설 또는 남침유도설 따위 수정주의에 의해 도전받고 있다. 그러나 역사는 「실재의 과거」이다. 사실은 수정되지 않는다. 드디어 소련은 6ㆍ25기간중 7만명의 공군병력을 동원,북한을 지원했고 지상군을 투입시킬 계획을 세웠었다고 참전을 시인했다. 그것도 관영 모스크바 방송이다. 지금은 아주 가까워진 소련이다. 그러나 역사는 남고 현재는 흐르는 것이다.
1990-03-25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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