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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 달간 ‘탄핵심판 롤러코스터’ 탄 헌재…결정적 변곡점들

석 달간 ‘탄핵심판 롤러코스터’ 탄 헌재…결정적 변곡점들

입력 2017-03-03 09:42
업데이트 2017-03-03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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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재판부터 예상 깬 진행…돌발상황 거듭에 긴장-이완 연속

대한민국의 명운을 결정할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이 긴 겨울 이어진 대장정을 마무리하고 이제 봄날의 선고만을 눈앞에 뒀다.

지난 석 달간 탄핵심판은 마치 난기류를 만난 비행기가 거세게 흔들리듯 예상치 못한 돌발변수를 헤치며 전진해왔다. 총 스무 번의 공개변론 동안 심판정의 분위기는 롤러코스터에 탄 것처럼 등락을 반복했다.

심판이 변곡점을 지날 때마다 헌재와 대리인단, 헌재 내부에서는 크고 작은 긴장 상태가 조성되기도 했다. 이에 첫 준비절차부터 최종변론까지 심판 진행 방향에 영향을 준 결정적 장면들을 꼽아봤다.

◇ 첫 재판부터 청와대 당황케 한 헌재

“세월호 참사가 2년 이상 지났지만 대부분 국민이 자신의 행적에 대해 기억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날입니다. 피청구인(대통령) 역시 그런 기억이 남다를 거라 봅니다.”

국민의 관심이 쏠린 상황에서 지난해 12월 22일 열린 탄핵심판 첫 준비절차 기일은 다소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렀다. 이진성 재판관이 박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행적을 시간대별로 밝히라고 요구하며 시작부터 상당한 긴장 모드가 연출된 것이다.

세월호 참사 당시 박 대통령의 대응이 적절했는지를 둘러싼 논란은 국회의 탄핵소추 의결서에 가까스로 들어간 탄핵사유였다. 여권뿐 아니라 야권에서도 “억지로 넣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주요 쟁점으로 취급되지 않았다.

그러나 헌재의 요구에 분위기는 180도 달라졌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재판은 기본적으로 청구인이 사유를 입증해야 하는 구조이지만 ‘7시간’의 경우 반대로 대통령 측이 소명을 해야 하는 모양새가 됐다”고 했다.

첫 재판 직후 청와대는 ‘헌재가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다’며 당황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 측은 1월 10일 대통령의 당일 시간대별 행적을 밝혔지만, 대체로 기존 해명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 헌재 측은 요구에 미치지 못한다는 반응을 내비쳤다.

◇ 본격변론 시작…첫 단추 못 끼우고 증인과 숨바꼭질

탄핵심판은 2016년 12월 세 차례의 준비절차 기일을 마치고 이듬해 1월 본격변론을 개시했다. 그러나 정작 재판은 핵심 증인들의 잠적으로 수차례 파행하는 난항을 겪었다.

1월 5일 열린 2차 변론기일엔 이재만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안봉근 전 국정홍보비서관·이영선·윤전추 행정관이 나오기로 돼 있었지만, 모습을 드러낸 건 윤 행정관뿐이었다.

특히 이 비서관·안 비서관의 경우 장기간 집을 비우며 헌재의 증인출석 요구서 자체를 받지 않았다. 요구서를 수령해야 출석 의무가 생기고 헌재가 ‘강제 구인’ 카드를 쓸 수 있는 점을 고려한 듯한 고의성이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1월 10일 3차 변론기일에 소환된 ‘비선 실세’ 최순실·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정호성 전 부속비서관 역시 모두 ‘불출석 사유서’를 내고 나타나지 않았다. 본 재판 시작 후 일주일간 증인 7명 중 6명이 헌재를 피해간 것이다.

기일이 공전을 거듭하자 헌재는 1월 16일 예정에 없던 ‘특별기일’을 잡는 특단의 조처를 했다. 이렇게 되면 주 3회 변론기일을 여는 강행군이 되지만 일정 지연은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지 표명이었다.

그러나 증인들의 송달 거부·불출석 사유서 제출은 심판 내내 이어지며 애꿎은 시간을 허비하게 했다.

대통령 측이 강력하게 신문을 주장한 최씨의 한때 최측근 고영태씨의 경우도 출석 요구서를 아예 받지 않고 잠적하거나 요구서 수령을 계속 거부했다. 급기야 헌재 직원이 그가 증인으로 출석한 서울중앙지법을 찾아가는 ‘숨바꼭질 작전’을 벌였으나 고씨의 입장은 변하지 않았다. 결국, 그는 법원에는 검찰 증인으로 나갔지만, 헌재의 부름엔 응하지 않았다.

◇ 내부 이견 있었지만…퇴임 박한철 “3월 13일 前 결론” 공표

심리 초반 진행이 더디던 헌재는 1월 중순 최순실·안종범 전 수석·정호성 전 비서관·광고 감독 차은택·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 등 사건의 핵심 인물들을 증인석에 앉히는 데 성공했다.

‘모르쇠’로 일관한 최씨와 달리 안 전 수석과 정 전 비서관 등은 비교적 솔직하게 ‘국정농단’ 의혹의 전모를 밝혔다. 정 전 비서관은 박 대통령의 차명폰 사용을 고백했고, 이후 박영수 특별검사의 대통령 차명폰 사용 내역 확보에 실마리를 제공했다. 안 전 수석도 대부분의 일이 대통령 지시에 따른 것이라 증언했다.

재판이 본궤도에 오르며 일각에선 1월 말 박 전 소장의 퇴임 이전 결론을 내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박 전 소장 역시 ‘업적을 남기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다. 그러나 대통령 측은 1월 23일 8차 변론기일에서 증인 39명을 무더기 추가 신청했다. 박 전 소장 퇴임 전 선고는 어려워졌다.

박 전 소장은 자신의 마지막 재판인 1월 25일 9차 변론기일 개정과 동시에 굳은 표정으로 ‘작심 발언’을 내놨다. “헌재 구성에 더는 큰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늦어도 3월 13일까지는 최종 결정이 선고돼야 한다.” 결론 기한을 못 박은 그의 말은 대통령 측은 물론 차기 대권 일정에 돌입한 정치권에 큰 파장을 불렀다.

헌재 안팎에 따르면 동료 재판관들은 박 전 소장의 일정 언급을 반대했다. 취지는 공감하지만, 정치적으로 첨예하게 대립한 상황에서 괜한 시비를 부를 수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그러나 박 전 소장의 뜻을 끝내 굽히진 못했다고 한다.

박 전 소장의 발언은 대통령 직무정지에 따른 국정 공백이 언제까지 지속할지에 대한 불확실성은 상당 부분 제거했다. 그러나 대통령 측은 곧바로 대리인단 총사퇴를 시사하며 극렬히 반발했다. 이는 심판 내내 “끝낼 시점을 미리 정해두고 재판한다”, “헌재가 국회와 내통했다”는 ‘막말’에 가까운 비난을 불렀다. 결국, 대통령 측의 ‘결론 불복’ 시사 발언으로까지 이어졌다.

◇ 朴대통령 인터뷰와 ‘태극기’의 반격

박한철 전 소장이 ‘3월 13일 이전 선고’를 언급한 1월 25일, 공교롭게도 박 대통령 측도 작심 행동에 나섰다. 우파 성향의 정규재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을 통해 자신의 탄핵사유와 형사사건 혐의를 일절 부인하는 방송 인터뷰를 내보낸 것이다.

인터뷰 내용은 특별히 새로울 게 없었지만, 박 대통령의 ‘육성’을 들은 지지자들은 세를 결집했다. 이른바 ‘태극기집회’ 인원이 눈에 띌 정도로 불어났다. 공개 석상에서 ‘탄핵 반대’를 외치는 정치인 역시 하나둘 나타났다.

이런 분위기는 심판정으로 이어졌다. 박 전 소장 퇴임 후 2월부터 재판장은 이정미 소장 권한대행이 이어받았다.

이후 박 대통령 측의 ‘공세’가 시작됐다. 수시로 이 권한대행 말을 끊는가 하면, 면전에서 “(재판부가) 신속을 강조하다가 세계 사법 역사상 비웃음을 살 재판을 남을까 두렵다”는 아슬아슬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 권한대행은 대통령 측 대리인단을 강하게 제지하지는 않았다. 헌재 내부에선 “박 전 소장이었으면 어림도 없었을 상황”이라고 했다. 대통령 측 한 변호사는 당시 “변론이 길어지면서 그간의 수세 분위기가 반전됐다. 이제는 공격에 들어갈 차례”라고 주장했다.

2월 초순 이후 대통령 측은 이 사건의 본질이 ‘최순실과 불륜을 벌이다 틀어진 고영태의 악의적 왜곡 폭로’라고 주장했다. 또 고씨와 동료가 음모를 꾸미는 듯한 ‘고영태 녹음파일’로 ‘판’을 뒤집으려 했다. 박 대통령의 탄핵사유와 직접 관련이 없다고 국회 측은 지적했지만, 파일을 심판정에서 틀거나, 고씨를 불러와야 한다고 거듭 강변했다.

대통령 측 ‘도발적 공세’의 ‘화룡점정’은 대한변호사협회장 출신 김평우 변호사의 등장이었다. 뒤늦게 대리인으로 합류한 김 변호사는 2월 20일 15차 변론에서 “왜 함부로 재판을 진행하느냐”, “왜 헌법재판관씩이나 하느냐”는 고함으로 신고식을 했다.

22일 16차 변론에선 1시간 35분 동안 “강일원 재판관은 국회의 수석대리인”, “9인 체제 선고가 아니면 내란이 일어날 수 있다”는 등의 과격 발언으로 이 권한대행이 변론 중 손으로 뒷목을 잡게끔 했다.

◇ 단호해진 이정미 ‘쾌도난마’…남은 건 결론뿐

박 대통령 측의 변론 방식은 헌재 안팎의 지적을 받았다. 오히려 헌재가 더 단단해지는 반작용을 불렀다. 2월 둘째 주 한 헌재 관계자는 “이번 주 진행을 잘 보라”고 귀띔했다. 실제로 그 주 9일 열린 12차 변론기일을 시작하는 이정미 권한대행의 얼굴은 분위기가 변했다. 양 눈썹 끝이 치켜 올라가고, 입은 한일(一)자로 꽉 다문 모습이었다.

이 권한대행은 그날 박 대통령 측 대리인이 증인을 상대로 중복 질문을 하거나, 불필요한 질문을 할 때마다 “신문이 비효율적”이라고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을 끊었다. 강일원 재판관 역시 웃음기 없는 얼굴로 “왜 수사기록을 다 확인하고 계시느냐. 왜 그러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지적했다.

재판부의 ‘태세 전환’ 이후 진행 속도는 훨씬 빨라졌다. 이 권한대행은 2월 14일 13차 변론기일에서 불출석한 대통령 측 증인을 직권 취소하고 추가 증인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16일 14차 변론기일엔 대통령 측의 강한 반발에도 2월 24일 최종변론을 열겠다고 쐐기를 박았다. 불과 일주일 만에 쾌도난마처럼 결론까지 다가선 것이다.

대통령 측은 시간부족을 이유로 최종변론을 3월 2∼3일로 미뤄달라고 요청했다. 법조계에선 변론 장기화를 내심 원하는 대통령 측이 ‘충분한 심리’를 요청하며 실은 ‘지연작전’을 쓰는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왔다.

연기 요구를 받아들인 헌재는 최종변론을 2월 27일로 못 박고 대통령 출석 여부도 26일까지 밝히라 했다. 특히 대통령이 최종변론 이후 출석 의사를 밝혀도 새로 기일을 잡지 않을 거라고 미리 선을 그었다. 박 대통령은 고민 끝에 출석을 포기했다. 한 대리인은 “재판부 분위기에 부담을 많이 느꼈을 것”이라고 촌평했다.

2월 27일 열린 최종변론은 6시간 30분간 진행됐다. 국회 측은 1시간 14분 동안 대통령의 탄핵 필요성을 강조했다. 대통령 측은 이동흡 전 헌법재판관을 필두로 15명의 변호사가 5시간 동안 마라톤 변론으로 탄핵사유를 부인하거나 헌재 ‘8인 체제’의 부당함을 호소했다.

헌재는 최종변론 다음 날부터 결론 도출을 위한 재판관 평의에 들어갔다. 평의 기간은 전례에 비춰 약 2주가 예상되지만, 내부에선 ‘상당히 무르익은 상태’라고 한다. 법조계에선 3월 10일 혹은 13일을 선고기일로 예상한다. 선고일은 이르면 6∼7일 공표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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