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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기의 러브앤더시티] #10. “내가 이러려고 연애했나” 남성들의 절규

[이슬기의 러브앤더시티] #10. “내가 이러려고 연애했나” 남성들의 절규

이슬기 기자
입력 2016-11-08 17:39
업데이트 2016-11-08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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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男, 대국민 담화문 발표
30대男, 대국민 담화문 발표 “이러려고 연애했나…만사 귀찮아”
# “마음에 열 하나 없는 것들이 삶에 풍요를 바래~”

뒤늦게 꽂힌 노래, ‘공중도덕’. 그 중에서도 도끼의 저 부분이, 들으면 들을수록 명문이라고 생각했다. 알고 보니 원래 가사는 ‘열’이 아니라 ‘여유’였는데(도끼야, 미안), 열은 열대로 여유는 여유대로 ‘얘기가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사람이 어떻게 마음에 열(또는 여유)하나 없고서 어떻게 삶에 풍요를 바라? (가사 속 ‘바래’의 맞춤법에 대해서는 따지지 않도록 하자. 문학도 그렇듯, 랩 송에도 ‘시적 허용’이란 게 있는 거다.)

내 걸 들어봐봐 확실한 Another another level~ 야!야!야!
내 걸 들어봐봐 확실한 Another another level~ 야!야!야! 사심을 담아 직접 캡처를 했다. 야!야!야!
Mnet 캡처


# 마음에 ‘열’과 ‘여유’가 없는 남자들, 특히 연애에 대해서는 더…

그러나 요즘 마음에 ‘열’과 ‘여유’가 없는 또래들을 많이 목도한다. 특히나 직장에서의 스트레스가 심할수록, 남자일수록 더.

특히나 30대 초중반의 직장 남성들 가운데 연애에 관한 마음씀에 있어서 ‘열’과 ‘여유’를 상실한 경우를 왕왕 본다. 그들에게 있어서 연애란 ‘소싯적에 다 해 봤던 것’들이며, 안 그래도 피곤한 게 많은 세상에 감정적으로 피곤한 일이다.

그나마 ‘열’이 좀 있는 축은 연애 말고도 하고 싶은 게 너무도 많다. 일도 열심히 해서 커리어도 쌓아야 하고, 주말이면 형들이랑 야구도 해야 하고, 야구가 끝나면 여친 눈치보지 않고 맥주도 한 잔 마셔야 한다. 연애가 끼어들 여지가 없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연애가 등골 휘어지는 아파트를 마련해야 할 전초 단계, 쯤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가장’이라는 책임의 굴레로 진입하는 일종의 하이패스. 이러한 경향에 대해 수지좌파(30)는 한 마디로 정리했다. “만약에 30대 초반의 남자가 연애에 가열차다? 그럼 둘 중 하나야. 원래 가열찬 인간이거나, 20대때 연애를 별로 안해봤거나.” 갖은 스트레스로 머리 숱이 줄어들고, 배는 사정없이 앞으로 나오는 그네들에게 연애는 또 하나의 탈모의 원인이자 복부 비만의 원인일 뿐인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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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이 배를 보고 욕하랴
누가 이 배를 보고 욕하랴 남자들이여, 힘을 내라.
 

# 반면에 그녀들은…

반면에 나는 ‘열’이 끓어넘치는 연애주의자이다. 연애에 관해서는 ‘여유’를 낼 여유도 있다. 오죽하면 연애에 관한 기사를 써서 밥벌이를 하고 살겠냔 말이다. 인생에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는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하는 ‘Happily ever after’ (결혼 유무는 차치하더라도) 이다.

신문사에 입사해 사회부 사건팀을 2년 남짓 견뎌서인지는 몰라도 기동력도 좋고, 하루에 한 시간 자는 생활을 몇 달 반복한 이후로는 체력도 동급 최강이다. 일을 그렇게 한 게 억울해서라도 연애도 대개는 그렇게 하고 싶다. 좀 절박하고 간절하게.

간만에 찾아온 연애에서 나는 나의 그러한 기질을 십분 발휘했다. 나라는 사람은 그의 생일날에는 그의 바쁜 사정에도 불구하고 그를 꼭 만나야 했다. 유난히 업무가 길었던 그 날, 급히 퇴근해 부랴부랴 선물을 싸 짊어지고 그를 만나러 갔다. 그러나 선물을 받아든 그의 얼굴에선 예상치 못했던 기색이 보였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 없는데…얘 생일 날에는 도대체 어떻게 해줘야 하지? 부담스러운데…’ 그냥 그 자체로 좋아하길 바랐던 내게, 그의 표정은 너무 가혹했다.

그래서 무릇 직장남들과는 연애 못하겠다고 하는 여자들이 측근들 중에 왕왕 있다. 도끼의 가사처럼 마음에 열도 없고, 여유도 없는 그들을 견디지 못하겠다는 것. 사랑에 관한 한없는 낭만파인 가을뮤트이성경(30·여)의 주변에는 온통 예술하는 남자들이거나 한량(?)들이다. 이씨가 말하는 예술하는남자의 매력은 평일에 시간이 비교적 자유롭고 생각이 틀에 갇혀 있지 않다. “그들은 돈을 잘 못 벌잖아?” 라는 우문에는 “내 남자는 내가 책임진다”라는 현답으로 대신했다.

살다보면좋은날도오겠지(29·여)도 기타치는 남자에 푹 심취해 있다. 자기 앞에서 낭만적으로 기타를 연주하던 남자를 잊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뭔가 창작을 하는 사람이란 거 자체가 좀 매력적이지. 건축하고 미술하고 음악하고 이런 사람들 있잖아. 뭘 만들어내는 남자는 멋진 거 같아.”

# 피차 피곤한 일이지만...

1년 전 쯤인가, 온라인 상에서 회자되던 ‘30대 남자가 여자에게 매달리지 않는 이유’라는 글이 있었다. 글의 요지인즉슨 남자가 서른이 넘으면 경제적으로 여유롭고, 이제 와서 어찌될지 모를 일에 시간과 돈을 투자하느니 자기 자신에게 투자하는 것이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이익이라는 실질적인 손익 계산을 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누가 남자더러 여자한테 매달리라고 했단 말인가. 한쪽의 시혜에 기대는 연애는 오래 가지도 않을 뿐더러, 이제는 여자 쪽에서도 그런 부담스런 연애는 바라지 않는다. 어느 작가의 말처럼, 죽어도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전혀 다른 개체가 서로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그 모습이 아름다운 거다.

최근에 읽은 장강명의 에세이 ‘5년만에 신혼여행’에서는 이런 얘기가 나온다. 화분과 달팽이는 물론, 멕*카나 치킨 사은품으로 온 애완용 열대어도 3년 넘어 키우는 작가를 보고 아내 HJ는 그가 만약 아버지가 된다면 훌륭한 아버지가 될 사람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그건 사랑이 아냐, 그냥 성실한 거야.”라는 작가의 말에 HJ는 말했다. “그게 사랑이야.”

연애에는 그만큼 공력이 많이 들어가는 일이지만, 그만한 공력을 들일 필요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백세 시대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늙어간다는 것, 그게 얼마나 낭만적인 일이란 말이냐. (상대는 때마다 바뀔지라도) 그런 의미에서 저랑 멕*카나 열대어도 소생시킬 분을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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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 작가가 3년 넘게 키웠다는 멕*카나 열대어는 이런 놈이었을까
장강명 작가가 3년 넘게 키웠다는 멕*카나 열대어는 이런 놈이었을까 열대어든 화분이든, 아무나 키우는 게 아니다. 성실해야만 한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이슬기 기자의 ‘러브 앤 더 시티’
이슬기 기자의 ‘러브 앤 더 시티’
스무 살, 갓 상경한 꼬맹이는 십여 년 전 나온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로 연애를 배웠다. 드라마 속 ‘캐리’처럼 프라다 VIP가 된다거나, 마놀로 블라닉은 못 신고 살지만 뉴욕 맨하튼이나 서울이나 사람 사는 모양새가 별 반 다르지 않다는 것만은 알게 되었다. 서른 즈음에 쓰는 좌충우돌 여자 이야기, ‘러브 앤 더 시티’다. (매주 화요일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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