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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가 나당전쟁서 이긴건 당의 흥망성쇠에 있었다

신라가 나당전쟁서 이긴건 당의 흥망성쇠에 있었다

함혜리 기자
입력 2015-08-07 23:48
업데이트 2015-08-08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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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동아시아 세계대전/서영교 지음/글항아리/816쪽/3만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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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세기의 동아시아는 무대를 중원에서 동쪽으로 옮겼을 뿐 전국시대와 다름없었다. 중국의 수·당, 한반도의 고구려·백제·신라, 바다 너머의 왜국, 중앙 초원의 돌궐·설연타·거란·토욕혼, 티베트 고산지대의 토번 등이 뒤엉켜 벌인 국제전은 그야말로 ‘유라시아판 열국지’였다. 21세기의 지정학적 잣대로는 이해할 수 없는 원교근공(遠交近攻)과 합종연횡(合從連衡)이 되풀이되는 복잡다단한 시대였다.

중원대 한국학과 서영교 교수가 최근 출간한 ‘고대 동아시아 세계대전’은 고대 제국들이 존망을 걸고 맞부딪쳤던 치열한 대결 구도와 복잡하게 얽힌 역학 관계를 입체적으로 조망한다. 저자는 고구려가 수나라를 물리친 612년 살수대첩부터 676년 나당전쟁에 이르기까지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전쟁의 시대를 세밀하게 되짚어 복원한다. 그러면서 삼국통일 과정에서 진행됐던 일련의 전쟁들이야말로 당시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웠던 ‘제1차 동아시아 세계대전’이었으며 한반도의 지정학을 최초로 결정지은 위대한 전쟁이었다는 주장을 펼친다. 임진왜란을 조선과 왜국의 전쟁이 아닌 국제 정치적 역학 구도 속에서 치러진 세계전으로 바라보는 최근 학계의 움직임과 맞물려 주목받는 대목이다.

송나라 역사가 사마광의 ‘자치통감’, ‘수서’, ‘구당서’, ‘신당서’를 비롯한 25사와 ‘돈황본토번역사문서’, ‘요동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조선상고사’ 등 고대 문헌과 고대사에 관한 한·중·일의 최신 연구 성과들을 집대성했다. 실증적 사료와 함께 문학적 서사 형식을 취하면서 전장에서 불꽃처럼 스러져 간 장수들의 리더십과 당시의 치열한 전쟁을 눈에 보일 듯이 묘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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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고구려인의 기백을 상징하는 풍운아 연개소문이 세운 천리장성의 일부인 비사성. 일생의 라이벌인 당 태종 이세민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연개소문은 중국 고전에서 항상 악역으로 등장할 만큼 전투에 능하고 강한 카리스마를 지녔던 인물이다. ② 안악 3호분 벽화에 그려진 고구려 귀족의 행차 모습과 ③ 고구려 전사의 모습. 글항아리 제공
① 고구려인의 기백을 상징하는 풍운아 연개소문이 세운 천리장성의 일부인 비사성. 일생의 라이벌인 당 태종 이세민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연개소문은 중국 고전에서 항상 악역으로 등장할 만큼 전투에 능하고 강한 카리스마를 지녔던 인물이다. ② 안악 3호분 벽화에 그려진 고구려 귀족의 행차 모습과 ③ 고구려 전사의 모습.
글항아리 제공


612년 수나라 황제 양광은 고구려를 ‘악의 축’으로 몰고 선전포고를 했다. 30만 대군이 고구려를 향했으나 돌아온 이는 2700명에 불과했다. 살수대첩 이후 고구려는 중국인들에게 세상의 끝이요, 살아 돌아올 수 없는 곳이었다. 고구려 침공에 실패한 수나라가 망하고 618년 이연이 당나라를 세웠다. 이연의 둘째 아들 이세민은 형제를 죽이고 정권을 탈취한 뒤 스스로 황제가 된다. 당 태종 이세민의 집권은 고구려와 백제에는 위기였지만 고구려·백제, 왜에 포위된 신라에는 희망이었다.

643년 당 태종은 고구려와 백제에 서한을 보낸다. “신라는 우리 당 왕조에 충성을 다짐하며 조공을 그치지 않으니 고구려와 백제는 마땅히 군사를 거두라. 만약 다시 신라를 공격하면 군사를 내어 너희 나라를 칠 것이다.” 645년 태종은 정식으로 고구려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중국 역사에 박힌 가시이니 그것을 빼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결과는 당의 패배였다. 연개소문이 이끄는 고구려와의 소모전에 지치고 백제의 이중플레이에 신물이 난 당에 신라는 끊임없이 구애를 보냈다. 외교의 귀재 김춘추는 나당동맹 체결만이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킬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고 믿었다.

책은 고구려군의 살수대첩과 안시성 전투 외에 무명 노장 김유신이 신라의 구원자로 등장한 대야성 전투, 백제의 비극으로 끝난 황산벌 전투, 백제가 무너지고 신라 삼국통일의 서막이 열린 백강 전투, 고구려를 내전에 휩싸이게 한 평양성 전투 등 한반도의 운명을 가른 결정적인 전투들을 시공을 오가며 그려 낸다. 저자는 당나라 황실의사 장원창의 ‘신수본초’에 남은 기록을 통해 백제의 의자왕이 위암으로 추정되는 반위(反胃)로 긴 투병 생활을 겪었으며, 이로 인해 백제 왕조의 통수권이 약화돼 결국은 패망하게 됐다는 사실도 새롭게 조명한다. 또 사마광이 ‘자치통감’과 별개로 편찬한 ‘고이’(考異)의 기록 가운데 연개소문이 몽고의 설연타 제국 매수에 성공했다는 내용을 추후 편찬된 자치통감 주석에서 찾아내 발굴하는 성과도 보였다.

저자는 당의 지원으로 백제와 고구려를 물리친 신라가 어떻게 세계 최강 당나라를 상대로 한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의문에서 주변국의 정세와 당시 지형을 파고든다. 그는 당나라의 설인귀가 670년 동돌궐 기병 11만 대군을 이끌고 티베트고원 대비천에서 토번군과 맞붙어 전멸당한 사실에 주목한다. 이후 당은 실크로드 교역의 이권을 차지하기 위해 주된 동북아 거점을 만주에서 서역으로 옮기게 됐고, 이는 신라가 당과의 전쟁을 감행하게 만든 배경이 돼 통일신라가 지속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긴박한 정세의 일목요연한 전개와 자세한 전투 묘사, 거침없는 공간 이동과 세력 구도의 거시적인 조망, 전략 전술의 디테일, 전쟁과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 등은 여타 고대 전쟁연구서와 차별성을 지니며 읽는 재미를 선사한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2015-08-08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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