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의사가 있다. 의사 A는 “이 수술을 받으면 100명 중 90명은 삽니다.”라고 했다. 의사 B는 “이 수술을 받고 죽은 사람은 100명 중 10명입니다.”라고 했다. 누구에게 수술을 맡겨야 할까.- 심리학과 행동경제학, 커뮤니케이션학 등에서 많이 인용하는 예시다. 사람들은 대부분 A에게 수술을 맡긴다고 한다. 왜? 수술하고 살 확률이 90%이니까. 그럼 B에게 수술을 맡기면? 물론 그의 성공률도 90%다. 그런데도 환자들은 A를 찾는다. 이게 프레이밍 효과(framing effect)다. 보는 관점에 따라 사람은 같은 사물도 이처럼 달리 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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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경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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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경호 논설위원
이명박 대통령이 엊그제 휴가를 떠나면서 청와대 직원들에게 한 권의 책을 선물했다고 한다. 리처드 탈러 미 시카고대 경제학 교수와 캐스 선스타인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가 함께 쓴 베스트셀러 ‘넛지(nudge)’다. 직역하면 ‘팔꿈치로 슬쩍 찌르다’이고, 의역하면 ‘주의를 환기시키다’가 된다. 덧붙여 탈러와 선스타인은 ‘타인의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이라는 뜻을 얹었다. 작은 자극만으로도 상대의 판단과 반응을 크게 바꿀 수 있다는 내용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당신은 행복하세요.”라는 질문의 앞에 던질 때와 뒤에 던질 때 “행복하다.”라는 답변의 비율이 달라지는 게 바로 프레이밍 효과를 이용한 넛지의 힘이다. 남성들의 수렵본능(?)을 이용, 남자 화장실 소변기 한가운데에 파리 모양의 스티커를 과녁처럼 붙임으로써 소변기 밖으로 튀는 소변을 80%나 줄였다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공항의 일화도 넛지의 사례다.
촛불정국에 호되게 데이고 난 지난해 7월 여름휴가 때 윈스턴 처칠의 회고록을 직원들에게 선물하며 위기정국 돌파 의지를 내비쳤던 이 대통령이다. 그런 그가 올여름 넛지를 집었다. 무슨 뜻일까. 뭘 말하자는 걸까. 얼마 전 만난 이 대통령의 측근 인사는 “이제서야 대통령이 정치에 재미를 느끼는 것 같더라.”고 했다. ‘이제’란 지난해 촛불시위와 친박 진영과의 갈등, 올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 등을 거친 뒤이고, 근원적 처방을 언급하며 친서민 행보의 기치를 뽑아든 시점을 말한다. 새삼 정치에 재미를 붙인 이 대통령이 넛지를 잡았다면 그 메시지는 뭔가. 부드럽게 홍보하자? 국민들에게 넛지를 가하자? 정국 프레임을 바꾸자?
탈러가 말한 넛지는 선의의 정책 행위를 전제로 한 홍보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같은 값이면 정교한 홍보활동으로 국민들에게 정책을 잘 이해시키고 국민적 공감대를 넓히는 것이 정책 성공의 지름길임을 말한다. 좋은 일을 잘해 보자는 게 넛지다. 여기엔 전제가 있다. 넛지가 성공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상대(국민)를 알고, 상대가 원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점이다.
한데 지금 여권은 반대로 가고 있다. 정부 각 부처 홍보인력을 늘리더니 국정홍보를 강화할 기구를 국무총리실에 새로 만들겠다고 한다. 자기들 손으로 관(棺)에다 처박은 국정홍보처까지 다시 꺼낼 심산인 듯하다. 소통을 하랬더니 홍보를 하겠단다. 들으라 했거늘, 떠들겠다고 한다. 아무래도 촛불에 덜 데인 모양이다.
나 지금 당신 옆구리를 살짝 찌를 거야. 이렇게 말하면 이미 넛지가 아니다. 넛지의 시작은 옆구리를 찌를 팔꿈치가 아니라 상대의 마음을 읽는 눈과 귀다. 확성기 틀어놓고 목청 터져라 외쳐 고개를 돌리도록 만드는 게 아니라 부드럽게 귀를 간지럽혀 저도 모르게 돌아보도록 만드는 게 홍보다. 책이 아깝다.
진경호 논설위원 jade@seoul.co.kr
2009-08-06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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