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실로 얼룩진 국세청 인사
손형준기자 boltagoo@seoul.co.kr
뒤숭숭한 국세청
한상률 청장의 거취가 불투명해지면서 국·과장급 후속 인사가 보류되는 등 국세청의 업무공백이 우려되고 있다. 15일 오후 점심식사를 마친 국세청 직원들이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사무실로 향하고 있다.
손형준기자 boltago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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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청장의 그림 파문만 해도 진위와 관계없이 국세청 내부의 상납 구조가 여전한 관행으로 자리잡고 있음을 보여 준다. 전군표 전 청장이 정상곤 전 부산지방국세청장으로부터 거금을 상납 받아 구속될 때 국세청 안팎에서 적지 않은 반발이 일었던 것도 이런 고질적 관행에 익숙해진 의식을 털어내지 못했기 때문으로 풀이됐다.
한 청장 파문은 이에 더해 인사불만과 권력을 둘러싼 암투까지 겹쳐져 있다. 국세청 내부에서는 인사에 불만을 품은 S지방국세청 A국장과 그의 부인 G갤러리 대표 H씨 그리고 전 전 청장의 부인 이미정씨가 만들어낸 ‘한상률 죽이기’로 단정한다. 지난 정권 때 승승장구하던 A국장이 한 청장 취임 후 승진인사에서 거듭 탈락하자 부인들까지 가세해 그림 상납을 주장하며 한 청장 공격에 나섰다는 것이다. 물론 국세청 내부에선 지난 시절 A국장의 고속 승진이 더 문제였다는 시각도 엄존한다.
경위가 어떻든 이런 잡음은 출신지역과 학연에 의해 편이 갈리고, 그들 집단끼리 경쟁하고 타협하며 요직을 나눠 갖는 국세청 내부의 인사관행에서 비롯된다. 청장이 어느 지역 출신이냐에 따라 승진과 요직이 결정되다 보니, 능력과 서열은 무시되고 그 과정에서 조직 내부의 불만이 증폭돼 온 것이다. 과거엔 적절한 선에서 타협하며 이 집단간 균형이 이뤄져 왔으나 지난 10년 정권이 두 차례 교체되면서 이런 카르텔이 무너진 셈이다.
한 청장의 지난달 경주 골프회동이 폭로되는 과정은 외부세력의 한상률 흔들기의 대표적 사례다. 한 청장이 골프회동을 마친 직후 각 언론사엔 일제히 한 청장의 행적을 ‘고발’하는 투서가 팩시밀리로 날아들었다. 마치 감시하기라도 한 것처럼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투서내용에 담겨 있었다. 일각에선 골프 회동과 저녁식사에 참석한 면면과 그들의 발언까지 공개되기도 했다. 취임 후 1년여 동안 골프를 하지 않다가 처음 그린에 나선 한 청장으로선 직격탄을 맞은 셈이다.
이런 정황 때문에 국세청 주변에선 대구·경북(TK) 인사들이 충남 태안 출신에 지난 정권이 임명한 한 청장을 밀어내기 위해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국세청 관계자는 “골프건 말고도 지난 1년 동안 한 청장 관련 투서들이 잇따랐다.”면서 “대부분 사실무근이었으나, 그만큼 한상률 흔들기가 집요하게 이뤄져 왔다는 증좌”라고 말했다. 한 청장이 이명박 대통령의 지인들과 골프회동을 가진 것도 결국 충청권 출신으로 지난 정권 때 임명된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고 주변세력들에 맞서기 위해 시도한 권력 줄대기로 풀이된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국세청은 전문성이 요구되는 데다 배타적인 내부 단결을 중시하는 전통이 있어서 다른 정부부처와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이 때문에 지연, 학연 등 내부 편가르기가 심하고 다른 부처 출신이 따돌림을 당하는 상황”이라며 “위에서 아래까지 총체적으로 바로잡는 혁명적인 수술을 하지 않고 고위직 몇명 바꾸는 정도의 인사 조치로는 국세청 개혁은 힘들다.”고 말했다.
권영준 경희대 경영학부 교수는 “국세청 내부의 부정부패 고리가 뿌리 깊게 자리매김한 상황에서 내부인사가 청장으로 발탁되는 관행은 반드시 깨져야 한다.”면서 “정권이 국세청을 이용해 권력을 휘두르려는 욕심을 버리지 않는 한 국세청 개혁은 요원하다.”고 말했다.
진경호 유영규 이두걸기자 jade@seoul.co.kr
2009-01-16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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