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라운지] 한국 유일의 남자 복싱 세계챔피언 슈퍼페더급 김지훈

[스포츠 라운지] 한국 유일의 남자 복싱 세계챔피언 슈퍼페더급 김지훈

입력 2009-09-25 00:00
수정 2009-09-25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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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하나 땄고… 세계통합챔프에 올라야죠”

‘4전5기’의 생소한 낱말을 보통명사화시켰던 홍수환(59)이 아널드 테일러를 물리치고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라고 전화기에 대고 외친 건 1974년 7월. 멀고도 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더반이었다. 그리고 김지훈(22)이 요하네스버그에서 국제전화로 조용히, 그리고 침착하게 어머니 박순옥(46)씨에게 챔피언이 됐음을 알린 건 35년이 흐른 지난 9월13일. 도시는 달랐지만 35년 간의 세월을 사이에 두고 같은 남아공에서 승전보를 전한 둘 사이에는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후자가 한층 더 싸늘하고 냉철하다면 과장일까. 또 떠들썩하지 않게, 조용히 알릴 수밖에 없는 다른 이유는 없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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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국제복싱기구(IBO) 슈퍼페더급 타이틀매치에서 정상에 등극, 한국 남자선수로는 유일하게 세계챔피언이 된 김지훈이 일산주엽체육관에서 샌드백을 앞에 두고 포즈를 잡고 있다.
지난 12일 국제복싱기구(IBO) 슈퍼페더급 타이틀매치에서 정상에 등극, 한국 남자선수로는 유일하게 세계챔피언이 된 김지훈이 일산주엽체육관에서 샌드백을 앞에 두고 포즈를 잡고 있다.
●아버지 지방발령 틈타 도장 다녀

국제복싱기구(IBO) 슈퍼페더급 세계챔피언 졸라니 마랄리(남아공)는 6회까지 경기를 리드했다. 변칙 공격을 하던 마랄리가 7회부터 본래의 왼손잡이 자세로 돌아왔다. 순간 지훈은 아버지를 떠올렸다. 고교 3년 때부터 본격 복싱에 맛을 들인 탓에 공부는 제쳐뒀던 터였다. 아버지 원한(49)씨는 “공부가 아니면 절대 안 된다.”고 노발대발했다. 때마침 아버지가 지방 발령이 나 집을 비운 틈을 타 도장에 나가 샌드백을 두들겼다. 그러길 1년. 그러면서 다짐했다. “한국 챔피언, 동양 챔피언, 그리고 세계 챔피언이 되면 떳떳하게 챔피언 벨트를 보여드리며 아버지의 아들이 이것들을 가져왔다고 말하겠노라.”고.

●데뷔 2년만에 동양챔프… 22세에 24전

지훈은 상대의 깊은 곳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9회 중반 묵직한 오른손 스트레이트를 마랄리의 관자놀이에 터뜨렸다. 승리를 확신한 그는 왼손 어퍼컷과 오른손 스트레이트를 연타로 퍼부었고 챔피언은 무너져 내렸다. 2년 2개월 만에 한국 남자복싱 유일의 세계챔피언은 그렇게 탄생했다.

김지훈의 표정은 ‘냉혈한’에 가깝다. “애써 웃으려 해도 웃을 일이 없다. 특히 링 위에선 더욱 그렇다.”는 게 그의 말이다. 마랄리의 버팅으로 왼쪽 눈두덩이의 부기가 아직 뚜렷한 그에게 취미가 뭐냐고 묻자 “복싱”이라는 말로 헛웃음을 나오게 만들었다.

그가 링에 첫발을 들인 건 우연이었다. 고교 2학년 여름방학 직전 학교에는 복싱 만화 붐이 불었다. “운동 삼아 한 번 가 보자.”며 김형렬(55) 관장이 운영하는 일산 주엽체육관을 찾았다. 그러고는 그만이었다. 하지만 김 관장은 “서울대 안 갈 거면 차라리 운동으로 승부를 내자.”며 역설했다. 이듬해 4월부터 링에서 비지땀을 흘린 그는 10월 프로에 정식 데뷔했다.

그의 성장은 빨랐다. 이듬해 9월 페더급 한국챔피언에 오르더니, 1년 뒤 10월에는 범아시아권투위원회(PABA) 동양챔피언 벨트를 둘렀다. 당시 챔피언의 유고 사태로 잠정 챔피언 자격이었지만 1년 뒤 정식 챔피언으로 인정받았다.

지훈은 복싱에 관한 한 모든 방면에 능하다. 188㎝의 긴 팔은 최고의 강점. 스트레이트와 훅, 어퍼컷 어떤 기술로도 KO승을 이끌어낼 수 있는 인파이터다. 경쾌한 리듬으로 상대를 압박할 줄 안다. 김 관장은 “22세밖에 되지 않았지만 김지훈은 벌써 24전을 치른 선수다. 특히 두려움이 없다. 상대를 밀고 들어가는 근성이 보통 선수에 견줘 다르다.”고 평가했다.

김지훈의 세계챔프 등극은 우리를 고무시킨다. 35년 전 홍수환이 그랬던 것처럼 그가 한국 복싱의 중흥을 이끌어 줄 것이란 기대다.

●한국복싱 중흥 기대주… 스폰서도 없어

그러나 희망뿐일까. 홍수환과 김지훈이 또 닮은 건 남아공에서의 파이트머니가 나란히 1만달러 안팎이라는 사실. 김 관장은 “지훈이가 번 돈은 훈련비와 용돈을 쓰고 나면 남지 않는다. 세계챔피언인데도 아직 스폰서가 없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지만 지훈은 오늘도 링 위에서 땀을 쏟아낸다. “하루하루 신기록을 세운다.”는 게 그의 생활지표다. “오늘만 있고 내일은 없다. 에너지가 완전 연소될 때까지, 체력이 바닥을 보일 때까지 모조리 비우고 내일 새것을 채운다.”는 설명이다.

챔피언에 오르기 훨씬 전 그는 목표를 세웠다. “사분오열돼 있는 세계 복싱기구를 죄다 아우르는 통합 챔피언이 될 겁니다. 이제 겨우 한 개 따냈으니,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셈이죠.”

글 사진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김지훈은 누구

▲출생 1987년 1월17일 서울 용산 ▲체격 177㎝, 67㎏ ▲가족 김원한(49), 박순옥(46)의 2남 중 첫째 ▲학력 일산초-일산중-신일정보산업고-부천대(2년 휴학중) ▲성적 24전19승(16KO) 5패 ▲주무기 좌우 스트레이트에 이은 어퍼컷 ▲경력 2004년 10월 프로 데뷔. 2005년 한국권투위원회 페더급 한국챔피언. 2007년 범아시아권투위원회(PABA) 페더급 동양챔피언. 2009년 국제복싱기구(IBO) 슈퍼페더급 세계챔피언
2009-09-25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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