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후년의 클럽하우스] 골퍼와 비골퍼의 송년회

[김후년의 클럽하우스] 골퍼와 비골퍼의 송년회

입력 2005-12-21 00:00
수정 2005-1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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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 모임이 잦은 연말이다. 남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우루루 몰려다니던 게 마냥 좋았던 어린 시절의 친구들. 절반 정도가 모일 때까진 가족들 안부나 세상 돌아가는 일에 서로 귀동냥하기에 바쁘다. 하지만 식탁 위에 빈병이 하나 둘 쌓일 즈음이면 화제는 자연스럽게 골프로 바뀐다.

핸디가 몇인지, 자주 가는 골프장은 어딘지, 어떤 골프채를 쓰는지…. 빈 술병만큼이나 말이 많아지는 ‘고수’와 귀를 쫑긋 세우지만 못들은 척 술잔만 기울이는 비골퍼의 구분이 시작되는 건 얼굴이 벌게지기도 전이다. 회원권을 가진 친구들의 홈 코스 자랑이 늘어나고,‘오잘공’은 물론 코스에서 지갑이 털릴 뻔한 아찔한 실수를 구사일생으로 만회한 기막힌 샷의 드라마도 줄줄이 나온다. 구석에서 말없이 술잔을 기울이던 비골퍼의 입에서 “야야 재미없는 얘기 집어치우고 술이나 한 잔 하자.”며 강제로 술잔을 부딪치지만 그냥 물러설 골퍼들이 아니다.

말대로라면 산전수전 다 겪은 골퍼들. 무대는 이제 외국 골프장으로 넘어간다. 그린피 싸고 서비스 좋다는 태국에서 시작해 지구 한 바퀴를 거침없이 돈다. 미국 캘리포니아 사막 한가운데 스킨스게임의 발상지 얘기로 목소리를 높이더니 호주와 뉴질랜드를 거쳐 영국, 그 중에서도 골프의 발상지라는 스코틀랜드의 세인트 앤드루스를 찍고 일본으로 돌아온다. 실상 출장 틈새에서 한두 차례 골프장을 찾은 얘기는 단기 사병 출신이 예비군 훈련장에서 특전사 제대했다고 과장하듯 조만간 세계 100대 골프코스 라운드를 마칠 것처럼 화려한 영웅담으로 변한다. 남의 바지저고리 추태에 혀를 끌끌 차는 매너 교육도 빠지지 않는다.

이때쯤이면 화장실에 가는 사람이 늘고, 가족을 위해 사느라 이제서야 7번 아이언 하나 들고 똑딱이 골프를 치는 늦깎이들은 부러움과 시샘을 말아서 들이부은 술로 고주망태가 된다. 자리를 파할 시간. 그러나 보낼 사람 보낸 뒤엔 2차가 기다리고 있다.

흐릿한 조명 속에 모험담은 계속 이어진다.18홀을 마쳤으니 이제는 19홀 얘기. 바야흐로 화려한 ‘밤문화’의 경험담이다. 푸껫을 돌아 필리핀까지 술기운을 타고 거침없이 쏟아내는 짜릿한 모험담에 비골퍼 친구들의 눈도 그제서야 말똥말똥해 진다. 이야기 보따리가 바닥을 보일 때쯤 자리를 끝내는 것도 ‘고수’의 기술. 마지막 한 마디로 일격을 가한 뒤 비틀비틀 자리에서 일어선다.“어이쿠, 늦겠다. 김 사장이랑 라운딩 잡혀 있는데….”

골프 칼럼니스트 golf21@golf21.com
2005-12-21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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