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켤레 만들고 11만원… 난 노예가 아니다”

“20켤레 만들고 11만원… 난 노예가 아니다”

홍인기 기자
홍인기 기자
입력 2018-06-11 23:38
수정 2018-06-12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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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성수동 제화공’ 정기만씨

켤레당 공임비 4500~5500원
‘탠디 사태’로 노동 환경 드러나
30년차 제화공인 정기만씨
30년차 제화공인 정기만씨
“장인의 손길이 닿았다며 20만원짜리 구두로 팔잖아요. 정작 장인이라고 불리는 저희는 구두 한 켤레 만들면 5000원을 받습니다. 장인이 아니라 노예죠.”

30년차 제화공인 정기만(53)씨의 손은 투박했다. 곳곳에 남아 있는 흉터와 마디마디에 박인 굳은살은 정씨가 구두를 만든 세월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었다. 지난 5일 만난 정씨의 손에는 구두 가죽 대신 ‘소사장제 철폐’라고 적힌 손팻말이 들려 있었다.

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 제화지부장이기도 한 정씨는 “성수동 제화공 가운데 막내둥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는 제화공장 300여곳이 밀집해 있고 3000여명의 제화공이 일하고 있다. 성수동을 포함해 관악구 봉천동, 서울역 인근 제화거리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 환경은 지난달 이른바 ‘탠디 사태’를 통해 알려졌다.

탠디 제화공들은 공임 인상과 소사장제 폐지, 직접 고용을 요구하며 지난 4월 26일부터 5월 12일까지 관악구의 본사 건물에서 점거 농성을 벌였다. 탠디 노사는 신발 밑창(저부)과 신발 윗부분(갑피) 공임 단가를 1300원씩 인상한다는 합의서를 작성했다. 합의서에는 회사가 정당한 사유 없이 일감 축소로 조합원을 차별하지 않고 소사장제 폐지를 결정하는 협의회를 상·하반기에 한 번씩 연다는 내용도 담겼다.

정씨는 “탠디는 그나마 규모가 큰 업체라 6500~7000원의 공임비를 줬지만 다른 업체들은 4500~5500원의 공임비를 준다”며 “숙련공들이 하루 12시간을 일하고 20켤레 정도 작업해도 11만원을 받는 셈”이라고 말했다. 켤레당 공임비를 받는 이들은 겉으로는 사업자 등록증을 발급받은 자영업자다. 공임비에는 식대나 교통비가 포함되지 않고 연차 휴가나 퇴직금도 받지 못한다.

제화공들은 1997년 외환위기 이전에는 모두 업체에서 고용한 노동자 신분이었다. 4대 보험에 가입하고 자녀 학자금과 퇴직금도 받았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2000년대 초반부터 이들은 ‘소사장’이 됐다. 일하는 구조는 이전과 변함이 없었지만, 사장이 아닌 제화공들에게는 일감이 오지 않았다.

업체들은 제화공들이 맡았던 공정을 외주화해 비용을 아낀 셈이었다. 그러다 보니 공임비는 20년 넘게 제자리였다. 정씨는 “모든 공정을 거쳐 완성된 구두의 납품가는 4만~5만원이다 보니 하청업체도 큰 이익을 거두지는 못한다”며 “20만원짜리 구두를 팔면 중간에 발생하는 이익을 누가 가져가는 것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제화공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2월 서울고법의 판결 이후다. 법원은 탠디 노동자 9명이 사측을 상대로 낸 퇴직금 청구 소송에서 “이들이 노동자임을 인정하고 퇴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정씨는 “판결 이후 제화공들이 ‘더이상 이런 취급을 받고 일할 수 없다’며 노조에 가입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30여명에 불과했던 제화지부 조합원은 탠디의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 98명을 비롯해 성수동 제화 노동자 250여명이 가입하면서 400여명으로 늘어났다.

정씨의 바람은 제화공들의 노동 환경을 개선해 구두 만드는 기술을 이어 갈 젊은 세대가 성수동으로 오게 만드는 것이다. 현재 성수동 제화공들은 50~70대가 대부분이다. 정씨는 “제화공이 노예가 아닌 기술자 대우를 받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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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2018-06-12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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