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력가 보관 사실 못 알리고 숨져… 동거녀, 피의자 변심에 행방 쫓아 의뢰받은 심부름센터 직원 신고
지난 8월 19일 서울 서초구 강남대로의 한 사무실. 인테리어 작업공 조모(38)씨는 내부 수리를 하다 조그마한 나무 상자를 발견했다. 동료 2명과 함께 나흘 전 화재로 타 버린 사무실의 붙박이장을 뜯던 중이었다. 장을 뜯어내니 푹 꺼진 바닥에 나무 상자가 있었다. 상자를 열어 본 조씨 등은 입이 벌어졌다. 금괴 130여개(시가 65억원 상당)가 신문지에 싸인 채 들어 있었다. 2003년 숨진 사무실 주인이 은퇴 후 증권 수익 등으로 모은 재산을 금괴로 바꿔 비밀 공간에 보관했던 것이다. 사무실 주인의 부인 김모(84)씨와 자식들조차 모르는 사실이었다.조씨와 동료들은 신고할지 말지, 주인에게 알릴지 말지 고민했다. 옥신각신하던 그들은 금괴 130여개 중 한 사람당 1개씩 모두 3개만 꺼내 가지기로 했다. 나머지는 제자리에 넣어 두고 신고하지 않았다. 하지만 조씨는 이후 금괴가 계속 아른거리자 결국 깊은 밤 동거녀 A씨와 사무실에 들어가 나머지 금괴를 훔쳐 달아났다.
범행은 엉뚱한 데서 탄로났다. 조씨가 A씨와 헤어진 뒤 새 애인과 함께 금괴를 들고 도망가 버리자 A씨가 심부름센터에 조씨의 행방을 의뢰한 것이다. 하지만 심부름센터 직원은 이 사실을 경찰에 제보했다. 경찰은 조씨와 나머지 인부들, 금괴를 매입한 금은방 업주 등 총 7명을 검거하고 19억원 상당의 금괴 40개와 현금 2억 2500만원 등을 압수했다.
서초경찰서는 조씨를 특수절도 등의 혐의로 구속하고, 공범인 인부 박모(29)씨 등 6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9일 밝혔다. 조씨는 경찰 조사에서 “금괴를 판 돈으로 지인에게 투자하거나 벤츠 등을 구입했다”고 진술했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2014-12-10 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