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가치 훼손’ 유신ㆍ인혁당사건 관련 판결은

’헌법가치 훼손’ 유신ㆍ인혁당사건 관련 판결은

입력 2012-09-24 00:00
업데이트 2012-09-24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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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살인’ 인혁당 재심 무죄…민사 배상도 이뤄져긴급조치 잇단 위헌 판결, 최근에도 재심 결정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가 24일 5ㆍ16, 유신, 인혁당 사건이 헌법가치를 훼손했다며 피해자 가족에게 사과함에 따라 사법부의 관련 사건 판결이 어떻게 결론 내려졌는지 다시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박 후보가 지난 10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대법원 판결이 두 가지로 나오지 않았나’라고 발언하면서 논란을 촉발한 인혁당 사건을 비롯해 유신 시절 긴급조치 위반 사건 등이 주목받고 있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은 재심에서 무죄가 났고 민사 손해배상까지 이뤄졌다. 긴급조치도 대법원에서 위헌 판결이 잇따르면서 기존 판례가 상당수 폐기됐다.

◇’사법살인’ 인혁당 재심서 전부 무죄 = 인혁당 사건은 박정희 정권 때 발생한 대표적인 공안조작 사건이다. 사건을 1, 2차로 구분할 수 있는데 문제가 된 것은 2차 인혁당 재건위 사건이다.

1차 인혁당 사건은 1964년 8월14일 김형욱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북한 노동당 지령을 받고 대규모 지하조직으로 국가변란을 획책한 인민혁명당 사건을 적발, 일당 57명 중 41명을 구속하고 16명을 수배 중’이라고 발표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그러나 1차 사건에서는 극형이 나오지 않았다.

박 후보의 역사인식과 결부된 사건은 1974년 발생한 2차 인혁당 사건이다. 흔히 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불린다.

1975년 당시 법원은 북한의 지령을 받아 유신체제에 반대하는 ‘민청학련’을 조종하고 국가를 전복하려 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관련자 8명에게 사형을, 17명에게 최고 무기징역에서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특히 사형선고를 받은 피고인 8명은 판결이 내려진 지 불과 18시간 만에 형이 집행됐다. ‘사법살인’이라는 오명이 따라붙은 것도 이 때문이다. 피해자들은 미처 항변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한참 세월이 흐르고 인혁당 사건 유족들은 의문사위원회 진상조사 결과 등을 근거로 2002년 법원에 재심신청을 냈고 2005년 법원은 이를 받아들여 사건 재심을 개시하기로 결정했다.

2007년 1월 서울중앙지법은 인혁당 재건위 사건이 발생한 지 32년 만의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이미 사형이 집행돼 숨진 우홍선씨 등 8명이 누명을 벗었지만 유족의 아픔은 치유되지 못했다.

이듬해인 2008년 1월에는 무기징역 등을 선고받았던 전창일씨 등 9명에 대해서도 무죄가 선고되면서 인혁당 사건 판결은 최종 결론이 내려졌다.

이 사건은 민사 소송으로도 이어져 서울중앙지법은 2007년 8월 사형이 집행된 8명의 유족 46명이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국가가 희생자별로 27억∼33억원씩 총 245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한 데 이어 2009년 6월에는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관련자 14명과 가족 등 67명이 낸 손배소송에서도 가족별로 7억5천만∼21억원, 총 235억2천5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지난달에는 이미 정신적 손해를 배상받은 피해자에게 국가가 재산상 손해까지 추가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인혁당 사건 피해자가 ‘감옥에 갇힌 탓에 얻지 못하게 된 수입을 배상하라’며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국가가 5억6천여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

◇유신체제 긴급조치 1ㆍ4호 위헌 = 유신헌법과 이에 근거한 긴급조치는 국민의 기본권을 근거 없이 지나치게 침해한 초법적인 조항이다.

1972년 제정된 유신헌법 제53조는 천재지변이나 재정ㆍ경제상 위기, 국가의 안전보장 또는 공공의 안녕질서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잠정 정지하는 긴급조치를 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박 전 대통령은 이를 근거로 1974∼1975년 긴급조치 1∼9호를 발동했다.

1974년 1월 선포된 긴급조치 1호는 유신헌법 비방과 유언비어를 날조ㆍ유포하는 행위 등을 금지하고 2호는 긴급조치 위반 사건을 비상군법회의에서 심판하게 하는 내용 등을 담았다.

긴급조치 4호는 민청학련이나 관련 단체에 가입하거나 이들의 활동 등에 관련된 모든 활동을 금하고 위반 시 영장 없이 체포, 구속, 압수, 수색해 비상군법회의에서 처벌할 수 있도록 했다.

긴급조치 1호의 근거인 유신헌법 53조는 1980년 10월27일 폐지됐다.

유신헌법 폐지 30년 만인 지난 2010년 1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긴급조치 및 반공법 위반 등의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복역한 오종상씨의 재심 사건에서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고 긴급조치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렸다.

당시 재판부는 “긴급조치 1호는 국회의 의결을 거친 법률이 아니어서 위헌 여부에 대한 심사권이 헌법재판소가 아닌 대법원에 속한다”면서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해 유신헌법은 물론 현행 헌법상으로도 위헌”이라고 밝혔다.

대법원 판결로 긴급조치 1호가 합헌이라는 전제하에 내려졌던 기존의 대법원 판례도 모두 폐기됐다.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 따르면 유신시절 긴급조치 1호 위반 혐의(전부 또는 일부)로 기소된 피고인은 무려 580명에 이른다.

피해자 중 일부는 대법원의 위헌 판결 이후 재판을 통해 보상을 받거나 재심을 거쳐 형사보상 대상이 되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지난해 2월 서울고법은 긴급조치 4호에 대해서도 유신체제에 대한 저항을 탄압하려는 목적이 분명해 긴급조치권의 한계를 벗어났다면서 역시 위헌 판결을 내렸고, 서울북부지법은 지난 8월 긴급조치 9호를 위반해 유죄를 선고받은 피고인 4명에 대해 재심을 결정한 바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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