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 판자촌 주민들 “불탔어도 마을 못 비워”

화재 판자촌 주민들 “불탔어도 마을 못 비워”

입력 2011-06-13 00:00
수정 2011-06-13 0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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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가구 270명 야적장에 자리 깔고 버텨

“21년간 유령처럼 살았습니다. 몇 년씩 투쟁해서 겨우 주민등록과 주소를 되찾았는데 불이 났다고 자리를 비우면 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릅니다. 정부의 말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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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무허가 판자촌 밀집 지역인 서울 개포동 1266번지 폐기물 야적장에서 대형화재가 발생한 가운데 소방대원들이 소방 호스로 물을 뿌리며 진화작업을 하고 있다. 이 화재로 인근 주택 수십 가구와 재활용품 등 이 일대 3300㎡ 중 990㎡가 불타고, 6500여만원의 재산피해(소방서 추산, 오후 11시 기준)가 났으나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다. 연합뉴스
12일 무허가 판자촌 밀집 지역인 서울 개포동 1266번지 폐기물 야적장에서 대형화재가 발생한 가운데 소방대원들이 소방 호스로 물을 뿌리며 진화작업을 하고 있다. 이 화재로 인근 주택 수십 가구와 재활용품 등 이 일대 3300㎡ 중 990㎡가 불타고, 6500여만원의 재산피해(소방서 추산, 오후 11시 기준)가 났으나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다.
연합뉴스


12일 밤 서울 강남구 개포동 1266번지(포이동 266번지) 판자촌 주민들은 늦게까지 잠들지 못했다. 이날 오후 마을 재활용품 야적장에서 난 불로 판잣집 10여채가 탔고, 소방당국과 경찰의 현장조사는 밤늦게까지 계속됐다.

강남구는 주민들에게 인근 구룡초등학교 체육관으로 거처를 잠시 옮기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이 마을 96가구 주민 270여명은 이를 거부한 채 야적장에 자리를 깔았다. 마을을 비우면 구에서 철거반을 투입할지도 모른다는 이유였다.

관할 행정 당국에 대한 주민들의 이같은 불신은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판자촌은 1981년 정부가 도시 빈민을 ‘자활근로대’라는 이름으로 강제 이주하면서 만들어진 빈민촌이다.

이후 1988년 행정구역이 개포동 1266번지로 변경되면서 이곳은 불법점유지로 분류됐고 거주자들의 주민등록도 말소됐다. 서울시에서 1981년 개포택지개발사업을 시행하고 남은 공유지여서 주민 전입이 안 된다는 게 강남구의 설명이었다.

법적으로 ‘공유지 불법점유자’가 된 주민들에게는 지금까지 가구당 적게는 몇백만원에서 많게는 1억원까지 토지변상금이 부과됐다. 이곳 주민 상당수는 고물을 수집해 내다 팔며 생계를 잇고 있다.

주민들은 수년간 자활근로대증과 세금납부확인증 등 각종 증빙자료를 근거로 내며 강남구에 주민번호 복원ㆍ등재와 토지변상금 부과 철회를 요구했다. 그러나 구는 “주민이 강제 이주됐다는 증거가 없다”며 손쓸 방법이 없다는 입장이었다.

2009년 6월 대법원이 ‘30일 이상 거주 목적으로 살고 있다면 주민등록을 인정해야 한다’고 판결하면서 주민들은 21년 만에 존재를 인정받았다. 그러나 토지변상금을 갚지 못한 이들은 재산을 압류당하거나 신용불량자 처지가 됐다.

주민 박모(53)씨는 “정부가 애초 우리 주민등록을 말소하고 무단 점유자로 만든 것은 책임을 회피하려는 의도였다는 생각”이라며 “국가 시책으로 피해를 본 국민은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데 아무도 우리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이번 화재와 관련해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고 13일 오전 11시 마을에서 서울시와 강남구 등에 피해 대책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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