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보이지 않는 인간들’을 위하여

[기고] ‘보이지 않는 인간들’을 위하여

입력 2008-11-07 00:00
수정 2008-11-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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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곤 서울대 영문학과 교수·한국 아메리카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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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으로 미국은 새로운 시대를 맞이했다. 1776년 건국 이후 그동안 미국 사회의 근간을 이루어온 서구·백인중심 문화가 혼혈 대통령의 등장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 이제 본격적인 다인종·다문화 시대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오바마는 바로 그 의미심장한 변화의 정점에서 앞으로 4년 동안 미국을 이끌어갈 새로운 지도자로 부상했다. 그래서 그의 대통령 당선은 한 개인의 영광을 초월해 국가적인 대사건이자, 세계적인 화제일 수밖에 없다.

사실 흑인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오바마야말로 어떤 의미에서는 가장 미국적인 인물이며, 미국을 대표하는 상징적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오바마처럼 하이브리드며, 다인종으로 이루어진 다문화사회이기 때문이다. 놀라운 것은, 미국의 아프리카계 인구가 미국 총인구의 12.4%밖에 되지 않는데도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그가 많은 백인들의 지지를 받고 당선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바마의 당선에 공헌한 또 다른 사람들은 미국 인구의 14.8%를 차지하고 있는 라틴계와 4.4%를 점유하고 있는 아시아계 미국인들이다. 사실 총 인구의 33.8%에 달하는 유색인들의 지지가 없었더라면 오바마의 당선은 어려웠을 것이다.

오바마의 당선은 또 미국이 스스로의 숙명적인 짐인 인종차별을 극복했다는 점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케네디 대통령이 미 의회에 제출한 민권법이 1964년 정식으로 발효되기 전까지 유색인들은 차별과 분리의 대상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식당과 극장 그리고 버스와 학교에서 백인들과 같은 자리에 앉지도 못했던 유색인들이 불과 44년만에 미합중국 대통령을 배출했다는 것은 가히 놀라울 만한 발전이다.

미국 흑인작가 리처드 라이트는 미국에서 태어난 흑인들이 전혀 미국인 취급을 받지 못하는 부조리한 현실을 고발하기 위해 자신의 소설에 ‘네이티브 선’(1940)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어린 시절, 라이트는 양손에 짐을 들고 엘리베이터에 탄 적이 있었다.

실내에서 모자를 쓰는 것은 버릇없는 일이기 때문에 옆의 백인이 그의 모자를 벗겨주었다. 문제는 그런 경우, 흑인은 백인에게 ‘생큐’라는 말을 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렇게 되면 백인이 흑인에게 서비스를 해주었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그 역시 무례한 경우가 된다. 그래서 그는 그냥 백인을 바라보며 씩 웃는 것으로 감사를 표시했다고 회상하고 있다. 또 다른 흑인작가 랠프 앨리슨은 소설 ‘인비지블 맨’(1952)에서 백인들이 흑인들을 개체로 보지 않고 전형화해서 보기 때문에, 흑인들은 미국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인간’들이라고 개탄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이제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게 되었으며, 미국은 오바마의 등장으로 새로운 인종화합의 시대를 열게 되었다. 아프리카 케냐에서 온 유학생과 백인여성의 후예인 오바마는 흑인이 아니라, 혼혈 공화국인 미국을 상징하는 흑·백인이며, 진정한 아메리칸 드림을 성취한 미국인이다.

마틴 루서 킹과 맬컴 엑스가 그 대표적인 예지만,1960년대만 해도 꿈과 이상을 품었던 흑인 지도자들은 암살자들의 총탄에 쓰러져 갔다. 그러나 지금은 시대가 변했다. 미국에 귀화한 영국시인 W H 오든은 “미국인들은 변화를 믿으며, 변화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든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오바마의 당선은 변화에 대한 미국인들의 믿음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경우다. 다인종 사회인 미국은 앞으로도 계속 변화해나갈 것이고, 그것은 그 어느 나라도 따라갈 수 없는 미국만의 독특한 저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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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곤 서울대 영문학과 교수·한국 아메리카학회장
2008-11-07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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