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지하철·숭례문 방화범 존경” 검은 옷·모자에 고글쓰고 살인극

“대구지하철·숭례문 방화범 존경” 검은 옷·모자에 고글쓰고 살인극

김정은 기자
입력 2008-10-21 00:00
수정 2008-10-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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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 고시원 살인 방화

20일 발생한 묻지마 살인은 서울 강남의 도심에서 무차별적으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충격을 주고 있다. 숭례문 방화범을 존경했다고 말해 왔던 범인 정모(30)씨의 살인극이 우발적인지 사전 계획된 것인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지만, 경찰은 사전계획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불 지른 뒤 대피자 무차별 공격

정씨는 이날 오전 8시15분쯤 고시원 3층 자신의 방 침대에 미리 준비해둔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질렀다.5분 뒤 연기를 피해 복도로 뛰쳐나온 고시원 투숙자들에게 무차별 흉기를 휘둘렀다.

정씨는 8시30분쯤 고시원 4층으로 올라가 투숙자 4~5명을 추가로 공격했다. 피해자 중 5명은 흉기에 찔려 숨졌고 1명은 창문으로 뛰어내리다 숨졌다. 정씨는 범행 후 4층 창고에 숨어 있다 출동한 경찰에 붙잡혔다. 고시원은 월세방 85개(3층 50개·4층 35개)를 갖추고 근처 영동시장에서 일하는 중국동포 여성 등 69명이 투숙해 왔으며, 월 투숙비는 17만원으로 알려졌다.

하루종일 고시원·PC방 은둔생활

정씨는 광란의 살인극을 위해 치밀한 준비를 한 듯하다. 연기로 자욱한 복도에서 피해자들을 구별키 위해 고글과 머리에 쓰는 소형 플래시를 착용했다. 흉기 2개는 케이스를 구입해 양다리에, 가스총은 허리춤에 찼다. 경찰은 정씨가 이 흉기들을 2004~2005년 동대문 등지에서 사들인 것으로 보고 사전에 살인극을 준비했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정씨는 검은 모자와 상·하의로 ‘킬러’ 복장을 했다. 이런 점에서 지난해 4월 미국과 우리나라를 뒤흔든 재미교포 조승희씨의 버지니아공대 살인 사건과 닮았다. 조씨는 당시 전투복을 입고, 교실에서 한 명씩 처형하듯 권총을 발사했다.

정씨는 경남 합천에서 4남1녀 중 막내로 태어났으며,2002년 8월 상경했다. 강남 등지에서 식당 보조일 등을 하다 올 4월부터 직업 없이 고시원에서 지냈다. 중학교 때 자살을 시도한 뒤 정기적으로 두통에 시달렸다고 진술했지만 정신과 치료를 받은 적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주변 사람들은 “정씨가 사회 불만이 대단했다.”고 전했다. 인근 식당에서 주차요원으로 일하는 김모(34)씨는 “정씨는 ‘평소 내가 존경하는 인물은 대구지하철 방화범과 숭례문 방화범’이라고 했다.”며 “‘전쟁이 나 이 지겨운 나라가 사라져야 한다.’며 투덜댔다.”고 전했다. 고시원 4층에 거주하는 중국동포 박모(45)씨는 “정씨는 고시원에서도 방안에만 박혀서 지냈다.”며 “주변 사람들과 말을 하지도 않았고, 늘 모자를 쓰고 다녀 얼굴을 제대로 아는 이가 드물다. 하루 종일 PC방에서 지내거나 돈을 벌면 인형뽑기에 다 썼다.”고 말했다.

중국동포 여성들 무너진 코리안드림

중국동포 이월자(50)·민대자(51)씨와 서진(20)씨 등 3명의 여성 사망자가 안치된 순천향병원은 통곡의 바다였다. 이씨의 둘째언니 이정인(57)씨는 “하루에 3시간만 자며 일해 월 150만원을 벌었다.”며 “한국에서 부지런히 벌어 딸이랑 집을 사서 함께 사는 게 소원이었는데, 불쌍해서 어떡해.”라며 오열했다.

중환자실에 입원 중인 김모(29)씨의 어머니 이모(51)씨는 “낮에는 일하고 밤에 고교 검정고시 준비한다며 고시원에 들어갔는데….”라며 눈물을 쏟아냈다. 강남성모병원 중환자실에 입원 중인 중국동포 김모(45)씨의 남편 김모(48)씨는 “한국 와서 몇 년만 고생해서 우리 부부 행복하게 살자고 했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인지 모르겠다.”며 망연자실했다.

김승훈 김정은기자 hunnam@seoul.co.kr
2008-10-21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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