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러커 여사는 지난해 11월 사망한 피터 드러커 교수의 ‘70년 친구’다. 경영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드러커 교수의 평생학습, 지식경영 등을 한국 사회에 접목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피터드러커소사이어티(PDS) 헌장 선포식에 참석하기 위해 지난 5일 한국을 찾았다.PDS 헌장 선포식은 7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의원회의실에서 열린다.
PDS 준비위원들은 지난 2004년 11월 미국을 방문, 드러커 교수에게 헌장 선포식에 참석해줄 것을 요청했다. 드러커 교수는 “나는 안되지만 내 아내가 대신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2년 전 남편의 약속을 드러커 여사가 지킨 것이다.
이번이 드러커 여사에게는 두번째 한국 방문이다.1977년 남편과 함께 방한, 서울과 부산·경주 등을 둘러봤다. 지난번 방문 때 경주에서 묵었던 ‘발 전체가 따뜻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던’ 온돌의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단다.
독일 태생의 드러커 여사는 나치를 피해 영국으로 건너갔다가 그곳에서 자신의 대학 강사였던 드러커 교수를 전철역에서 만나 1937년 결혼했다. 드러커 교수 또한 나치를 피해 영국에 와 있었다.“반대편 에스컬레이터에서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 몇분만 늦었어도 피터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드러커 여사는 물리학 석사, 변호사 자격증, 경제학 박사 등의 경력을 갖고 있다. 프리랜서로 특허 취득에 대한 자문을 해오다 지난 1996년 비지복스라는 회사를 세웠다. 강사의 목소리 크기를 전기신호로 바꿔 특정 크기보다 작아지면 경고등이 켜지는 장치를 만드는 회사다.
2004년에는 ‘라듐을 발견해, 아니면 네 머리를 뽑아버릴거야.’라는 제목의 자서전을 펴냈다.94세라는 나이가 도저히 믿기지 않는 드러커 여사는 “건강, 에너지, 무언가를 하겠다는 결심만 있으면 나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지금도 일하고 있다.
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