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백문일특파원|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 인턴사원인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스캔들로 2개월간 소파에서 지냈다고 22일 시판될 회고록 ‘나의 인생(My Life)에서 밝혔다.르윈스키와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으나 ‘부도덕하고 어리석은 짓’이라고 후회했다.
그러나 20일 BBC와의 인터뷰에서 진행자가 “르윈스키와의 관계를 후회하는 게 진짜냐.”고 집요하게 묻자 클린턴은 이례적으로 이성을 잃고 화를 냈다고 영국 언론들이 20일 보도했다.초판 150만부가 팔리기도 전에 예약 주문이 200만부를 넘어 이미 ‘베스트 셀러’를 보장받은 957쪽의 내용 가운데 일부를 간추린다.
●르윈스키와의 관계는 끔찍한 실수 ‘반성’
수개월간의 공식적인 부인 끝에 르윈스키와의 관계를 힐러리에게 말하자 그녀의 표정은 마치 복부를 강타당한 것 같았다.(힐러리는 앞서 출간된 회고록 ‘살아있는 역사’에서 남편의 고백을 듣는 순간 “그의 목을 비틀고 싶었다.”고 말했다.)이후 백악관 침실 옆의 거실에 있는 ‘침상 소파(couch)’에서 최소한 두달을 지냈다.‘침실 금지’가 풀린 것은 탄핵과정이 끝난 뒤였다.
르윈스키와의 관계는 도덕적으로 끔찍한 실수였고 가장 어두운 내면을 드러냈다.누구도 도덕적으로 옹호할 수 없는 행동을 저질렀다.(르윈스키와의 정사 여부에 ‘부적절한 관계’로 우회적으로 답한 것과 관련)당시 검사가 직설적이고 구체적인 질문을 했다면 나는 솔직하게 대답했을 것이다.그러나 결과적으로 아내와 함께 우익세력의 쿠데타에 맞서 싸우려고 했다.힐러리는 ‘이상’과 ‘현실’을 잘 조화하고 있다.
그는 그러나 22일 방영 예정으로 지난주 뉴욕에서 녹화된 토크 쇼에서 ‘진짜 회개하느냐.’는 질문에 끝내 평상심을 잃었다.클린턴은 언론의 공격에 일반적인 비판을 가하다가 나중에는 얼굴을 붉히고 진행자에게 언성을 높이는 등 노골적으로 화를 냈다.영국 언론들은 시청자들이 이 장면을 보면 클린턴이 정말 과거를 회개하고 있는 지 의아해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불우했던 유년시절은 콤플렉스
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 직전 교통사고로 죽었다.어머니와 재혼한 의붓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였으며 통제불능의 상태에서 어머니와 의붓 동생을 비롯해 나를 학대했다.때문에 나는 화를 드러내지 않기로 다짐했다.그러나 폭력적인 가정 환경은 평생 수치심과 두려움으로 작용했고 무엇을 공개해야 하고 감춰야 할지 고민거리로 남았다.
어떤 일은 남보다 더 어렵게 다가왔으며 피곤하거나 화가 날 때 또는 외롭다고 생각이 들 때에는 ‘자기 파괴적’인 행동을 하는 경향이 있다.너무 힘들어 13살 때에는 신의 믿음에 의문을 제기하는 ‘영적인 위기’를 겪었다.17살 때 마르틴 루터 킹 목사의 ‘나에게는 꿈이 있다.’는 연설을 듣고 큰 감명을 받았다.연설 내내 울었으며 킹 목사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결의를 다졌다.
●98년 탄핵은 ‘영광의 상징’
대통령 재임시 가장 큰 실수는 1994년 화이트워터 부동산 스캔들을 조사하라고 시킨 것이다.재닛 리노 법무장관에게 특별검사를 임명하라고 지시하면서도 감출 것이 없었기 때문에 크게 우려하지 않았으나 결국 르윈스키 스캔들로 확대되고 탄핵 과정에 들어갔다.당시 결정은 어머니의 사망으로 심신이 지치고 정서가 불안한 상황에서 나온 ‘어리석은 선택’이었다.
1998년 탄핵은 공화당 지도자들이 나의 거짓이나 부도덕성을 문제삼은 게 아니라 나의 정치적 목표에 동의하지 않는 권력다툼이 배경이었다.탄핵은 불법이었기 때문에 나는 ‘오점’으로 생각지 않으며 싸우는 과정은 ‘영광의 상징(badge of honor)’이었다.이같은 시련에도 업무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은 백악관 참모들과 각료,세계 지도자,친구들의 격려가 있었기 때문이다.심지어 ‘정적’들 때문에 힐러리와 다시 가까워졌다.
●부시, 방북 권유 무시해
백악관을 떠나기 직전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만나 북한을 방문해 핵 프로그램을 끝낸다는 1994년의 북미 합의를 끝내라고 촉구했다.부시 대통령은 경청했으나 재빨리 화제를 다른 쪽으로 돌렸다.
국가안보와 관련해 다섯가지 우선적인 문제를 말했다.오사마 빈 라덴과 알 카에다를 첫번째로 내세웠고 이라크 문제를 마지막으로 들었다.빈 라덴을 잡지 못한 게 가장 실망스러운 일이라고 전했다.나는 테러리즘이 점증하는 위협인 것을 잘 알고 있었다.
mip@seoul.co.kr˝
그러나 20일 BBC와의 인터뷰에서 진행자가 “르윈스키와의 관계를 후회하는 게 진짜냐.”고 집요하게 묻자 클린턴은 이례적으로 이성을 잃고 화를 냈다고 영국 언론들이 20일 보도했다.초판 150만부가 팔리기도 전에 예약 주문이 200만부를 넘어 이미 ‘베스트 셀러’를 보장받은 957쪽의 내용 가운데 일부를 간추린다.
●르윈스키와의 관계는 끔찍한 실수 ‘반성’
수개월간의 공식적인 부인 끝에 르윈스키와의 관계를 힐러리에게 말하자 그녀의 표정은 마치 복부를 강타당한 것 같았다.(힐러리는 앞서 출간된 회고록 ‘살아있는 역사’에서 남편의 고백을 듣는 순간 “그의 목을 비틀고 싶었다.”고 말했다.)이후 백악관 침실 옆의 거실에 있는 ‘침상 소파(couch)’에서 최소한 두달을 지냈다.‘침실 금지’가 풀린 것은 탄핵과정이 끝난 뒤였다.
르윈스키와의 관계는 도덕적으로 끔찍한 실수였고 가장 어두운 내면을 드러냈다.누구도 도덕적으로 옹호할 수 없는 행동을 저질렀다.(르윈스키와의 정사 여부에 ‘부적절한 관계’로 우회적으로 답한 것과 관련)당시 검사가 직설적이고 구체적인 질문을 했다면 나는 솔직하게 대답했을 것이다.그러나 결과적으로 아내와 함께 우익세력의 쿠데타에 맞서 싸우려고 했다.힐러리는 ‘이상’과 ‘현실’을 잘 조화하고 있다.
그는 그러나 22일 방영 예정으로 지난주 뉴욕에서 녹화된 토크 쇼에서 ‘진짜 회개하느냐.’는 질문에 끝내 평상심을 잃었다.클린턴은 언론의 공격에 일반적인 비판을 가하다가 나중에는 얼굴을 붉히고 진행자에게 언성을 높이는 등 노골적으로 화를 냈다.영국 언론들은 시청자들이 이 장면을 보면 클린턴이 정말 과거를 회개하고 있는 지 의아해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불우했던 유년시절은 콤플렉스
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 직전 교통사고로 죽었다.어머니와 재혼한 의붓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였으며 통제불능의 상태에서 어머니와 의붓 동생을 비롯해 나를 학대했다.때문에 나는 화를 드러내지 않기로 다짐했다.그러나 폭력적인 가정 환경은 평생 수치심과 두려움으로 작용했고 무엇을 공개해야 하고 감춰야 할지 고민거리로 남았다.
어떤 일은 남보다 더 어렵게 다가왔으며 피곤하거나 화가 날 때 또는 외롭다고 생각이 들 때에는 ‘자기 파괴적’인 행동을 하는 경향이 있다.너무 힘들어 13살 때에는 신의 믿음에 의문을 제기하는 ‘영적인 위기’를 겪었다.17살 때 마르틴 루터 킹 목사의 ‘나에게는 꿈이 있다.’는 연설을 듣고 큰 감명을 받았다.연설 내내 울었으며 킹 목사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결의를 다졌다.
●98년 탄핵은 ‘영광의 상징’
대통령 재임시 가장 큰 실수는 1994년 화이트워터 부동산 스캔들을 조사하라고 시킨 것이다.재닛 리노 법무장관에게 특별검사를 임명하라고 지시하면서도 감출 것이 없었기 때문에 크게 우려하지 않았으나 결국 르윈스키 스캔들로 확대되고 탄핵 과정에 들어갔다.당시 결정은 어머니의 사망으로 심신이 지치고 정서가 불안한 상황에서 나온 ‘어리석은 선택’이었다.
1998년 탄핵은 공화당 지도자들이 나의 거짓이나 부도덕성을 문제삼은 게 아니라 나의 정치적 목표에 동의하지 않는 권력다툼이 배경이었다.탄핵은 불법이었기 때문에 나는 ‘오점’으로 생각지 않으며 싸우는 과정은 ‘영광의 상징(badge of honor)’이었다.이같은 시련에도 업무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은 백악관 참모들과 각료,세계 지도자,친구들의 격려가 있었기 때문이다.심지어 ‘정적’들 때문에 힐러리와 다시 가까워졌다.
●부시, 방북 권유 무시해
백악관을 떠나기 직전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만나 북한을 방문해 핵 프로그램을 끝낸다는 1994년의 북미 합의를 끝내라고 촉구했다.부시 대통령은 경청했으나 재빨리 화제를 다른 쪽으로 돌렸다.
국가안보와 관련해 다섯가지 우선적인 문제를 말했다.오사마 빈 라덴과 알 카에다를 첫번째로 내세웠고 이라크 문제를 마지막으로 들었다.빈 라덴을 잡지 못한 게 가장 실망스러운 일이라고 전했다.나는 테러리즘이 점증하는 위협인 것을 잘 알고 있었다.
mip@seoul.co.kr˝
2004-06-21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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