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암 김창협은 노론을 대표하는 문인관료의 한 사람이다. 그는 1671년 금강산을 돌아보고 ‘동유기’(東遊記)라는 기행문을 남겼다. 농암은 한양을 출발해 양주, 포천, 철원, 김화, 금성, 회양을 지나고 단발령을 넘어 내금강에 들어섰다. 조선시대 도성에 거주하며 금강산을 유람하는 데 가장 보편적으로 활용된 여정이다
원나라 역사책 ‘원사’(元史)에는 위구르 출신의 관료를 주인공으로 하는 ‘역흑미실전’(亦黑迷失傳)이 있다. 역흑미실은 지원 24년(1287년) 불발사리(佛鉢舍利)를 구하려 마팔아국(馬八兒國)에 사신으로 갔다. 그곳에서 궁궐 건축재로 자단목을 사재로 구입한 뒤 돌아가 황제에게 바쳤다는 내용이다. 마팔아는 마바르의
서울의 북촌 화동에 살던 초등학교 시절 안국동의 민영환 동상은 꽤 친숙했다. 지금도 안국동이라면 선생이 먼저 생각난다. 그런 동상이 어느 날 사라졌다. 거리를 넓히는 공사 때문이었다고 한다. 동상은 돈화문 앞으로 갔다가 다시 안국동 우정총국 곁으로 옮겨졌다. 동상이 선생의 시호에서 이름을 딴 충정로에 자리잡은 것
미국의 걸프스트림과 캐나다의 봄바디어는 비즈니스 제트기의 양대 산맥이다. 두 회사는 누가 더 멀리까지 날 수 있느냐를 놓고 끊임없이 경쟁한다. 걸프스트림은 2014년 이후 1만 3890㎞ 항속 거리로 이 분야 최고로 군림하고 있었다. 그런데 2018년 봄바디어가 1만 4260㎞의 새로운 기록을 세운다. 하지만 걸
제16회 광주비엔날레가 지난 토요일 개막했다. 광주비엔날레전시관의 메인 전시와 함께 27개 국가·도시·문화기관이 참여한 ‘파빌리온 프로젝트’가 문화시설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그런데 광주시립미술관 하정웅미술관의 중국관은 지금 비어 있다. 전시를 기획한 중국 국립미술학원 대표단이 철수했기 때문이다.중국은 광주비엔날
경상남도 사천 늑도유적엔 고대국가 초기 해양문화 흔적이 몰려 있다. 2023년 발굴조사에선 BC 1세기의 온돌이 확인됐다. 벽체 주변에 판석을 양쪽에 세워 좁은 터널 형태로 고래를 만든 초기형이었다. 방 전체에 고래가 깔린 전형적인 온돌로 발전하는 과정을 보여 준다.앞서 평안북도 영변 세죽리의 BC 3~BC 1세
절경 촉석루 손짓하는 ‘풍류의 고장’호남 지리산권·남해권 잇는 교통축끝내 순절한 김시민 장군 동상 우뚝2차 전투서 결국 성 잃은 아픔 생생창렬사 가는 길에 국립진주박물관 ‘세계사 흐름 속 임진왜란’ 둘러볼 만진주성은 덕유산에서 발원해 낙동강에 합류하는 남강이 휘돌아 나가는 언덕에 그림처럼 자리잡고 있다. 강물에
불교 경전 화엄경에 이런 대목이 있다. ‘남쪽에 산이 있으니 보타락가(補陀落迦)라 한다. 그곳에 관자재라는 보살이 있다.’ 보타락가는 산스크리트어 포탈라카를 음역한 것이다. 관자재는 중생의 고통을 덜어 주는 관음보살이다.당나라 현장법사(602~664)는 인도를 둘러보고 ‘대당서역기’를 남겼다. 그는 남인도로 관음
신문사 같은 부서에서 근무한 대선배와는 인연을 오래 이어 갔다. 시내에서 저녁자리가 끝나면 같은 동네에 살던 우리는 지하철도 함께 탔다. 만사에 다른 사람을 먼저 배려하는 분이었지만 한 가지, 지하철 경로석을 차지한 젊은이에게는 너그럽지 않았다. 오래전의 일이다. 이제 경로석에 앉은 젊은이가 있다면 아마 외국인
대한불교조계종에는 ‘영규대사 및 800의승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위원회’가 있다. ‘명예회복’을 위한 조직이 있다는 것은 ‘회복하고 싶은 명예’가 남았다는 뜻이다. 금산 칠백의총이 이름부터 조헌 의병을 기릴 뿐 영규 승군에 대한 배려는 적다는 소외감의 표현이다.임진왜란 당시 충청도 지역 관군의 후손들도 마음속으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