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디곱던 우리 언니, 이제 살아서 볼 날이 올지…”

“곱디곱던 우리 언니, 이제 살아서 볼 날이 올지…”

입력 2013-06-12 00:00
업데이트 2013-06-12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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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당국회담 무산에 애끓는 이산가족들

“이번에는 ‘혹시나’ 하고 기대를 했는데 그 희망이 이렇게 무너지니 이제는 정말 영영 못 만나지 싶습니다.”

남북 당국회담이 무산된 이튿날인 12일 이산가족 고하자(82) 할머니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체념한 듯 깊은 한숨을 내쉬며 이렇게 말했다.

이번 회담으로 60년 넘게 헤어져 있던 북녘의 가족과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에 부풀었던 이산가족들은 회담 무산에 대한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열여덟 살에 두 살 터울의 언니를 북한에 두고 피난을 왔다는 고 할머니는 “그때는 스무 살 곱디곱던 언니였는데 이제는 여든네 살이나 됐으니 돌아가셨지 싶다”라며 “살아만 있다면 좋겠는데 다시 만날 날이 올지 모르겠다”며 울먹였다.

열네 살에 오빠 두 명과 헤어진 김부원(80) 할머니는 “이번 회담만 잘되면 꼭 만날 수 있을 줄 알았다”며 “죽기 전에 한번 만나보려고 어제는 대한적십자사에 가서 다시 상봉신청 확인도 했는데 정말 실망이 크다”고 토로했다.

김 할머니는 “남북회담이 다시 잘 돼서 살아서 오빠들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며 “오빠들을 만나면 ‘사랑한다’는 말을 꼭 하고 싶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산가족들은 그러나 “아직 작은 기대는 있다”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북한에 누나와 동생이 있다는 조일웅(83) 할아버지는 “이미 반세기 이상을 기다렸다. 이 정도는 순간”이라며 “안타깝지만 조금만 더 기다리면 언젠가는 재회할 수 있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하지만 조 할아버지도 “이북이 먼 길이 아닌데 장벽 때문에 가지도 못하고 너무 억울한 인생을 살았다”며 가족을 다시 만나면 ‘얼마나 고생이 많았느냐’고 아픈 상처를 보듬어주고 싶다고 말했다.

11일까지 이산가족 상봉에 대한 기대감으로 이산가족들의 발길이 드문드문 이어졌던 서울 남산 대한적십자사의 이산가족 민원접수처도 이날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겨 썰렁했다.

남북 당국 차원의 이산가족 상봉은 1985년 분단 후 처음 이뤄진 뒤 15년간 진전이 없다가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2000년부터 2007년까지는 매년 평균 두 차례씩 대면상봉이 이뤄졌다.

그러나 남북관계 경색으로 2008년에는 성사되지 못했고, 2009년과 2010년 한 차례씩 이뤄진 이후 현재까지 3년 가까이 중단된 상태다.

2000년 이후 18차례의 대면상봉과 7차례의 화상상봉을 통해 남북 양측에서 4천321가족, 2만1천734명이 만났다. 제3국에서 이뤄진 민간차원의 상봉도 1990년부터 작년까지 1천742건이다.

하지만 전체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가 13만명에 이르는 점을 감안하면 가족을 만난 이산가족은 소수에 불과하다.

특히 이산가족의 고령화로 끝내 혈육과 재회하지 못한 채 세상을 뜨는 경우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통일부와 대한적십자사가 공동 운영하는 ‘이산가족정보통합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5월31일을 기준으로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는 12만8천808명이다.

이 중 42.96%에 달하는 5만5천347명은 이미 사망했다.

작년 한 해 동안에만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 가운데 4천167명, 월평균 347명씩 숨졌다.

생존해 있는 이산가족 신청자 7만3천461명 가운데서도 80대가 40.6%(2만9천808명), 70대 30.5%(2만2천389명), 90대 9.4%(6천935명)로 70대 이상의 고령자가 전체의 80.5%를 차지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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