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서로 “우리가 승리” 강대강… 징용 해법·정상회담 ‘기싸움’

한일 서로 “우리가 승리” 강대강… 징용 해법·정상회담 ‘기싸움’

임일영 기자
임일영, 박기석, 김태균, 한준규 기자
입력 2019-11-25 01:48
업데이트 2019-11-25 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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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측 ‘두고 볼 수 없다’식 정면대결 왜

정의용 “日에 유감… 최종 합의한 것 아냐”
“어떤 행동 할지 몰라” ‘트라이 미’ 경고

日 “美 압박에 한국 종료 강행 포기
거의 퍼펙트 게임… 타협은 절대 없을 것”

美 ‘조건부 연기’ 아닌 ‘갱신’으로 규정
韓 종료카드 사용 못하게 사실상 압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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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엔 웃고 韓엔 굳은 얼굴… 日 외무상 ‘표정 외교’
美엔 웃고 韓엔 굳은 얼굴… 日 외무상 ‘표정 외교’ 주요 20개국(G20) 외교장관회의에 참석한 강경화(왼쪽) 외교부 장관이 지난 23일 일본 나고야관광호텔에서 열린 한일 외교장관회담에서 굳은 표정의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과 악수하고 있다(왼쪽 사진). 반면 모테기 외무상은 존 설리번 미 국무부 부장관과의 미일 양자회담에서는 밝은 표정으로 악수했다(오른쪽 사진).
나고야 연합뉴스
“한마디만 덧붙이면 영어로 ‘트라이 미’(Try me)라는 얘기가 있다. 어느 한쪽이 터무니없이 주장을 하면서 상대방을 계속 자극할 경우 ‘그래? 계속 그렇게 하면 내가 어떤 행동을 취할지 모른다’라는 경고성 발언이다. ‘유 트라이 미’(You try me), 그런 말을 일본에 하고 싶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24일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가 열릴 부산 벡스코 프레스센터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소미아(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연장과 일본의 수출 규제 철회와 관련한 최근 합의 발표를 전후한 일본의 몇 가지 행동에 깊은 유감을 표할 수밖에 없다”며 이처럼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정 실장은 “거듭 말씀드리지만 (지난 22일이) 최종 합의가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밝힌다”며 “지소미아 종료 통보 효력과 WTO(세계무역기구) 제소 절차 정지의 결정은 조건부였고, 잠정적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모든 것은 일본 태도에 달려 있다”고 경고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도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소미아 종료 후 ‘아무것도 양보하지 않았다’고 언급한 것으로 보도된 데 대해 “아베 총리의 발언이 사실이라면 일본 정부의 지도자로서 과연 양심을 갖고 할 수 있는 말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상대국 정상에 대한 청와대 코멘트로는 지극히 이례적이다. 지소미아 ‘조건부 종료 연기’ 이후 일본 반응에 대한 불편한 심기가 오롯이 묻어난다. 그간 청와대는 일본의 언어 도발에 가급적 맞대응을 자제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모양새다. 수출당국 간 협의나 한일 갈등의 근원인 강제징용 배상 문제를 둘러싼 본격 협상을 앞둔 기싸움이자 경고의 성격이 짙다는 분석도 나온다.

청와대의 이례적 대응은 선을 넘은 일본의 여론전에서 비롯됐다. 아사히신문은 아베 총리가 “미국이 상당히 강해서 한국이 (종료 강행을) 포기했다는 이야기”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또 “워싱턴의 파괴력은 엄청나다. 한국을 옥죄었다”는 총리관저 관계자의 말을 옮기기도 했다.

산케이신문은 “거의 퍼펙트게임”이라는 정부 관계자의 말을 전했다. 이 관계자는 “수출관리를 둘러싼 한일 당국 간 협의 재개에는 응하겠지만, 절대로 타협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고 했다.

미국 국무부는 지소미아 종료 연기 결정을 협정의 ‘갱신’이라고 받아들였다. “한국의 결정을 환영한다”면서도 ‘조건부 연기’를 ‘갱신’이라고 규정한 것은 한국 정부가 지소미아 ‘종료 카드’를 다시 사용할 수 없도록 사실상 압박을 넣은 것으로 해석된다.

한일 양국이 지소미아 ‘조건부 종료 연기’로 가까스로 파국을 피한 지 불과 이틀 만이자, 양국 수출당국 간 협의 등 본격 대화에 들어가기도 전에 진실게임 양상까지 더해지면서 한일 관계 복원까지는 지난한 과정을 거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한일이 수출 규제에 대한 국장급 협의를 시작하기로 했지만, 종속변수일 뿐이다. 강제징용 배상 해법에 대한 이견을 좁혀야만 한국 정부가 요구하는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우대국)나 3개 품목에 대한 수출 규제 조치의 원상회복이 가능하고, 정상회담에서 관계 복원의 모멘텀도 만들 수 있다. 결국 강제징용 해법을 찾는 과정과 수출 규제 협의, 정상회담까지 ‘세 번의 고비’가 엮여 있는 고차방정식인 셈이다.

이런 가운데 한일 정상회담까지 남은 한 달 동안 강제징용 문제 등의 접점을 찾아낼지 주목된다. 양국이 정상회담 개최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일정 조율에 나선 것만 해도 진전이라는 평가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지난 4일 태국 방콕에서 11분간 환담을 나눴지만 정식 정상회담은 아니었다. 회담이 성사되면 지난해 9월 이후 15개월 만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강제징용 문제를 논의하는 데 모멘텀을 제공할 것”이라면서도 “아직 입장 차가 있기 때문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예단하기 어렵다”고 했다.

양국 외교장관은 지난 23일 일본 나고야에서 회담을 열고 강제징용 판결 문제 해소를 위해 외교당국 간 협의를 지속하기로 했다. 양국이 정상회담 전까지 얼마나 접점을 만들어 내느냐에 따라 성패가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문희상 국회의장이 제시한 ‘1+1+α’(한일 기업 출연금+국민 성금 배상) 방안이 실마리가 될지도 주목된다.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는 “청와대의 강경 대응이 향후 협상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저쪽에서 여론전을 하니까 맞대응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정상회담 전까지 강제징용 해법을 마련한다면 갈등의 돌파구를 열 수 있겠지만 접점을 찾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박철희 서울대 교수도 “모든 것의 뇌관은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처리이고 기폭 장치는 압류 자산의 현금화”라면서 “현금화를 유예시키든, 현금화 이전에 기본적 합의라도 하든 둘 중 하나는 해야 한다”고 했다.

부산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서울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2019-11-25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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