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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한·일 70년] <9> 원폭 피해자와 2·3세들

[격동의 한·일 70년] <9> 원폭 피해자와 2·3세들

강원식 기자
입력 2015-03-12 18:14
업데이트 2015-03-12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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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폭 한국인 7만… 후유증 대물림 심각한데 2·3세 지원 ‘全無’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 15분 일본 히로시마에 인류 역사상 처음 원자폭탄이 투하됐다. 3일 뒤인 9일 오전 11시 1분 두 번째로 나가사키에도 원폭이 떨어졌다. 두 도시는 눈 깜짝할 새 폐허가 됐다. 수만 명이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당시 두 도시에서 원폭 투하로 23만 3167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됐다. 피폭된 피해자까지 포함하면 69만 1500여명으로 추정됐다. 한국인 피해도 컸다. 히로시마에서 5만여명, 나가사키에서 2만여명이 피폭된 것으로 추산됐다. 이 가운데 사망자는 각각 3만여명, 1만여명으로 추정됐다. 목숨을 건진 원폭피해 한국인 가운데 2만 5000여명이 귀국(남한 2만 3000여명, 북한 2000여명)한 것으로 추산됐다. 한국원폭피해자협회에 따르면 이 중 10%쯤이 생존해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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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에 입주해 있는 노인들이 과일과 떡 등 음식을 나눠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에 입주해 있는 노인들이 과일과 떡 등 음식을 나눠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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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히로시마에서 직장에 다니던 17살 때 원폭 피해를 입은 이수용 할머니가 당시 근무했던 회사에 관한 글이 실린 책을 보며 참상을 설명하고 있다.
일본 히로시마에서 직장에 다니던 17살 때 원폭 피해를 입은 이수용 할머니가 당시 근무했던 회사에 관한 글이 실린 책을 보며 참상을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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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폭 투하 70년이 흘렀지만 피해자들의 통곡은 여전하다. 피폭 후유증이 대물림돼 나타나는 바람에 세월이 갈수록 고통과 아픔은 더하다. 원폭 피해자 2·3세들까지 원인을 알 수 없는 각종 질환에 시달리며 불행한 삶을 이어 간다. 경남 합천군 지역은 ‘대한민국의 히로시마’로 불리기도 한다. 원폭 피해 한국인들이 많이 살고 있어서다.

12일 원폭피해자협회에 따르면 협회와 대한적십자사에 등록된 한국인 원폭 피해자 2590여명 가운데 419명이 합천에 산다. 협회는 등록되지 않은 원폭 피해자도 많을 것으로 본다. 피해자협회에 따르면 뒤늦게 등록하는 피해자들은 피폭자라는 사실을 알리기 싫은데다 등록 절차를 몰랐다고 한다.

국내 하나뿐인 원폭피해자 요양시설인 원폭 피해자복지회관도 합천에 있다. 이곳에서 만난 이수용(87) 할머니는 히로시마에 원폭이 떨어진 순간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 17살이었다.

“아침에 2층 사무실로 출근해 일을 시작하려던 순간 엄청난 폭발 소리가 들렸고 바로 정신을 잃었습니다. 눈을 떠 보니 피투성이인 채로 사무실 바닥에 내동댕이처져 있었습니다. 얼굴, 다리 등 온몸에 유리 조각이 박혀 몸을 만질 수 없었습니다.” 이 할머니는 7살 때 부모를 따라 일본으로 건너갔다. 해방 직후 한국으로 돌아온 이 할머니는 후유증으로 69세 때 자궁암 수술을 했다. 생후 6개월 무렵 부모를 따라 일본으로 간 뒤 철도화물 회사에서 일을 하다 원폭 사고를 겪은 정정오(89) 할아버지는 후유증 탓에 복지회관에서 10년째 생활하고 있다.

의학적으로 확인되지 않았지만 피폭에 따른 각종 후유증은 대물림된다. 원폭 피해자 2·3세 가운데 다운증후군 환자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원폭2세환우회는 원폭 피해자 2·3세가 1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 피해 1세에게는 한·일 정부가 의료비와 원호수당, 진료비 등을 지원한다. 그러나 2·3세 지원은 전무하다. 복지회관에 들어갈 수도 없다.

합천군 용주면 장전리에 사는 강상기(49)·상원(44) 형제는 8년 전 세상을 뜬 어머니가 원폭 피해자다. 강씨 형제는 정신지체 2급으로 어머니가 세상을 뜬 뒤 정부에서 지원하는 도우미가 방문해 도와준다. 초계면 대평리에 사는 문택주(64)·종주(62) 형제도 원폭 피해자인 아버지로부터 후유증을 물려받았다. 문씨 형제 아버지는 징용으로 일본에 끌려갔다가 원폭 현장에서 다쳐 고향으로 돌아온 뒤 온갖 병을 앓다 일찍 세상을 떠났다. 택주씨는 태어날 때부터 말을 못 하고 귀도 들리지 않았다. 스무살 무렵부터는 볼 수도 없게 됐다. 동생 종주씨도 시력이 좋지 않다. 어머니 박달순(89)씨가 건강이 나빠져 요양원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지금은 가사 도우미가 형제를 챙긴다.

합천군에는 원폭 피해 후유증을 안고 하루하루를 힘들게 버티는 2·3세들도 많다. 지역 주민들에 따르면 합천은 산이 많은 지형이어서 먹고살기가 어려워 많은 주민이 돈을 벌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거나 징용으로 끌려갔다가 원폭 피해를 입었다.

경남도와 합천군은 2011~2012년 원폭 피해자 2·3세까지 지원하는 내용을 담은 ‘원자폭탄 피해자 지원조례’를 각각 제정했다. 그러나 도와 군은 한계가 있어 별다른 지원을 하지 못한다.

정부가 나서 관련 법률을 만들고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17·18대 국회에서 특별법안이 발의됐으나 무관심 속에 폐기됐다. 19대 국회에서도 여야 의원들이 원폭 피해자와 자녀 지원을 내용으로 하는 특별법안 4개를 발의했다.

글 사진 합천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2015-03-13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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