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저격사건’ 문서 공개] ‘문세광사건’ 후폭풍

[‘박정희 저격사건’ 문서 공개] ‘문세광사건’ 후폭풍

입력 2005-01-21 00:00
수정 2005-01-21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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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세광 사건’은 10월 유신 이후 박정희 정권 내부의 복잡한 역학 관계 변동을 불러일으켰다. 이와 함께 1973년 8월 ‘김대중 납치사건’으로 국제 외교가에서 궁지에 몰렸던 상황을 반전시켰지만 궁극적으로는 정권의 몰락을 재촉한 측면이 강했다.

지난 1974년 서울 정동 국립극장에서 열린 …
지난 1974년 서울 정동 국립극장에서 열린 … 지난 1974년 서울 정동 국립극장에서 열린 광복 29주년 기념식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을 저격하려다 실패, 고 육영수 여사를 살해한 것으로 알려진 재일교포 문세광(당시 23세)이 호송직원에 이끌려 법정에 들어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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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규 청와대 경호실장은 충성 경쟁을 벌이던 차지철 국회 내무위원장에게 자리를 물려줌으로써 15년 남짓 누려온 ‘대통령 오른팔’ 지위도 함께 내줬다.‘DJ 납치사건’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의 뒤를 이어 등장한 신직수 중정부장 역시 이 사건으로 문책 경질당했고 그 후임으로 바로 ‘10·26 박정희 시해 사건’의 주역 김재규가 중정부장으로 화려하게 등장하게 된다.

하지만 박종규를 대체한 차지철 경호실장은 별도의 사설 정보라인을 가동하며 중정의 권위를 약화시키고 청와대와 김재규 중정부장의 보고 체계를 무력화시키며 그를 권력의 중심에서 밀어내며 ‘10·26’의 불씨를 모락모락 지폈다.

박정희 대통령 역시 이들의 갈등을 적극적으로 통제하지 못하고 방치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수년 뒤 자신과 정권의 몰락을 불렀다는 분석도 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2005-01-21 3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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