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저승서도 주먹쥐고 외칠거다 사죄하라

[커버스토리] 저승서도 주먹쥐고 외칠거다 사죄하라

입력 2017-09-08 22:44
수정 2017-09-09 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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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분 가득한 ‘나눔의집’ 가보니

“내가 먼저 가려고 했어. 그런데 군자가 10만원이 든 흰 봉투를 주면서 자기가 먼저 가겠다는 거야. 결국 말대로 됐지.”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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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경기 광주시 나눔의집 인근 병원에 신장 치료차 입원한 이옥선(90) 할머니는 지난 7월 세상을 떠난 김군자 할머니를 떠올리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 할머니는 “형제보다 더 가까이 지냈는데, 이제 얘기할 사람도 없다”면서 “하긴 얘기할 사람이 있다고 해도 이젠 말할 정신이 없다”고 말했다. 이 할머니는 하상숙(89) 할머니의 지난달 28일 별세 소식도 뒤늦게 듣고 굵은 눈물방울을 떨궜다.

이 할머니는 “정신이 없다”고 했지만 75년 전 위안부로 끌려간 그때 그 일만큼은 또렷하게 기억했다. “15살 때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 학교에 가질 못했어. 그러다 결국 1942년에 중국 연변으로 끌려갔어. 일본군이 차를 끌고 다니면서 길에 있는 여성들을 다 태웠었지. 그때부터 3년간 위안부 생활을 했어. 그러고 나서 한국으로 돌아오려고 했는데 차마 가족을 다시 만날 자신이 없어서 중국에 눌러앉았어. 2000년 6월에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가족들은 모두 죽고 아무도 없었어.” 이 할머니는 자못 담담하게 아픈 기억을 쏟아냈지만 이내 눈시울을 붉혔다. 할머니의 가슴에 남은 상처와 분노에는 아직도 굳은살이 생기지 않은 듯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저항은 2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1년 8월 14일, 고 김학순 할머니는 일본 정부가 “일본군은 위안부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발표한 것에 분노해 마이크를 잡고 자신이 당한 피해를 증언했다. 김 할머니의 증언으로 의혹으로만 제기됐던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처음으로 공개됐다.
8일 경기 광주 ‘나눔의집’에서 하수임(왼쪽·87) 할머니가 간병인의 간호를 받으며 누워 있다. 김순옥(95) 할머니가 옆에 누워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최해국 선임기자 seaworld@seoul.co.kr
8일 경기 광주 ‘나눔의집’에서 하수임(왼쪽·87) 할머니가 간병인의 간호를 받으며 누워 있다. 김순옥(95) 할머니가 옆에 누워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최해국 선임기자 seaworld@seoul.co.kr
지난달 29일 고 하상숙 할머니의 빈소에서 만난 이용수(89) 할머니는 25년 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에 위안부 피해자라고 신고하던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이 할머니는 “1992년 6월 25일에 내가 직접 위안부 피해자라고 신고했다”면서 “다음날 모임에 나갔더니 거기서 수십명의 동료(피해 할머니)들을 만났다”고 회상했다.

이 할머니는 75년 전 기억을 마치 최근에 겪었던 일처럼 끄집어냈다. 이 할머니는 16살이던 1944년 어느 날 한밤중에 ‘밥도 많이 먹게 해 주고 가족들도 잘살게 해 준다’는 말만 듣고 군복을 입은 일본인을 따라 나섰다. 잠들어 있었던 가족들에게 인사도 하지 못했다. 그날 밤 이 할머니와 함께 일본인을 따라 나선 ‘소녀’는 이 할머니의 친구 ‘분순이’를 포함해 모두 5명이었다.

2015년 12월 28일 박근혜 정부가 일본과 체결한 한·일 위안부 합의는 피해 할머니들에게 위로는커녕 상처만 남겼다. 특히 이 합의에 따라 일본 정부의 예산으로 지난해 설립된 여성가족부 산하 재단법인 화해·치유재단을 둘러싼 논란은 지금도 뜨겁다. 할머니들은 “돈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며 한·일 위안부 합의 폐기와 재단의 해체를 주장하고 있다. 할머니들이 바라는 것은 돈이 아니라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와 명예회복, 그것뿐이었다. 이용수 할머니는 “1억원 같은 거 필요 없다. 명예회복이 필요하다”면서 “일본 국왕이 무릎 꿇고 빨리 사죄해야 한다. 일본 총리가 법적인 배상을 해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나눔의집을 방문한 한 가족이 돌아가신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기리기 위해 설치된 흉상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다.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나눔의집을 방문한 한 가족이 돌아가신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기리기 위해 설치된 흉상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다.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할머니들이 그렇게 26년 동안 일관되게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를 요구해 왔지만 일본의 태도는 변함이 없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할머니들도 하나둘씩 하늘의 별이 돼 가고 있다.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이후에만 12명의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일본은 할머니가 모두 돌아가시길 기다리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용수 할머니는 “일본은 우리가 살아 있는데도 저렇게 거짓말을 하는데 우리가 죽고 나면 무슨 소리를 할지 모르지 않느냐”면서 “저승에 가서라도 사죄하게 할 거다. 데모할 거다”고 호소했다.

현재 경기 광주시의 나눔의집에 9명, 서울 마포구 연남동 ‘평화의 우리집’에 2명의 할머니가 거주하고 있다. 나머지 생존자 24명은 가족과 함께 살거나 혼자 생활하고 있다. 여가부 관계자는 “신분 노출을 꺼려 하는 할머니 중에는 가족들에게 위안부 피해자라는 사실을 알리지 않고 지내는 할머니들이 많다”면서 “모두 85세가 넘는 고령분들이시고, 아직 당시의 상처를 가족에게 알리기 어려운 분들”이라고 설명했다.

이용수 할머니는 오는 20일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지는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떠난다. 이 할머니는 “소녀상을 한국에 빼곡하게 세우고, 미국에도 세우고, 마지막은 동경 벌판에 세워서 사죄를 받아낼 것”이라면서 “어떻게든 내가 해결해 놓고 가겠다”고 했다.

김주연 기자 justina@seoul.co.kr

김정환 서울시의원 “수도계량기 디지털 전환, 설치 확대보다 안정성과 내구성 살펴야”

서울시가 수도계량기 원격검침 확대를 위해 디지털 계량기 보급에 속도를 내고 있는 가운데, 김정환 시의원이 단순한 디지털 전환에 치중하기보다 고장률과 내구성, 설치·유지관리 비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계량기 전환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지난 3일 열린 제339회 임시회 환경수자원위원회 서울아리수본부 업무보고에서 김정환 의원(더불어민주당, 동작1)은 수도계량기 원격검침 전환 추진현황과 기계식 계량기와 통신단말기를 결합한 ‘일체형 수도미터’의 기술 안정성을 점검했다. 이번 추경 예산을 활용해 서울아리수본부는 동파 취약 지역 내 스마트 원격검침 전환을 가속화하고, 당초 계획에 없던 디지털 계량기 6만 5000대를 추가로 설치할 방침이다. 이와 관련해 김 의원은 기계식 계량기보다 디지털 계량기의 고장률이 눈에 띄게 높은 점을 꼬집으며, 원격검침 확대 과정에서 기기의 안정성과 내구성을 면밀히 검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김 의원은 서울시가 그동안 기계식 계량기와 통신단말기를 하나로 결합한 일체형 수도미터 개발을 독려해 온 점에 주목했다. 서울아리수본부에 따르면 관련 제품 가운데 납품검사를 통과한 2개 업체 제품 200개를 강서수도사업소 관할 지역
thumbnail - 김정환 서울시의원 “수도계량기 디지털 전환, 설치 확대보다 안정성과 내구성 살펴야”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2017-09-09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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