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프로 골퍼 출신 캐디 김민이씨가 말하는 ‘캐디의 세계’

[커버스토리] 프로 골퍼 출신 캐디 김민이씨가 말하는 ‘캐디의 세계’

입력 2013-08-17 00:00
업데이트 2013-08-17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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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日 진출 꿈 키워주는 부끄럽지 않은 직업… 캐디는 내게 15번째 클럽”

서울 근교 S골프장에서 만난 김민이(21)씨의 직업은 경기 보조원, 즉 ‘캐디’다. 그는 이 직업을 가진 것에 전혀 부끄러움이 없다. 20대를 갓 넘긴 팔팔한 나이답게 “내가 왜 내 직업을 부끄러워하느냐”고 되묻는다.

김민이씨가 수도권의 한 골프장에서 라운드에 앞서 주말골퍼들의 캐디백을 정리하고 있다.
김민이씨가 수도권의 한 골프장에서 라운드에 앞서 주말골퍼들의 캐디백을 정리하고 있다.
그는 프로 골프선수다. 비록 2부와 3부 투어를 왔다 갔다 하는 처지지만 말이다. 지난해 12월 처음 캐디 옷을 입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잡은 골프채도 잠시 내려놨다. 돈 때문이었다. 골프는 우리나라에선 돈이 많이 드는 운동이다. 골프의 ‘ㄱ’자도 모르던 부모님이 골프에 온 살림을 쏟아부으면서 집안 형편도 기울기 시작했다.

코치의 권유로 캐디 생활을 시작한 지 이달로 9개월째. 한 달 수입은 제법 짭짤하다. 지난달엔 300만원 남짓 통장에 입금됐다. 그중 200만원을 훈련하는 데 썼다. 나머지는 생활비로 들어갔고 언젠가 다시 뛸 투어 대회에 대비해 자그마한 적금도 들었다. 힘은 들지만 그는 만족한다. 무엇보다 훈련 비용을 감당할 수 있어서다.

캐디를 하기 전에는 투어를 뛰면서 겪게 되는 온갖 쪼들림이 그대로 스트레스가 됐다. 공이 잘 맞을 리 없었다. 상금 순위 30위를 들락거리며 ‘계속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걱정했다. 하지만 형편이 나아지니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이는 투어를 다시 뛸 동력이 됐다.

목표는 오는 11월 중순 전남 무안에서 열리는, 내년 1부 투어 선수가 되기 위한 자격시험인 ‘시드전’이다. 지난 두 해 보기 좋게 미역국을 먹었지만 올해는 사정이 다를 것이다. 하루도 연습장 훈련을 빼먹지 않은 데다 석 달 전부터는 영업이 끝난 이 골프장 코스에서 9개홀 실전 훈련까지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전 11시 이전 일을 나가는 ‘1부’만 뛰도록 마스터가 ‘대기 조정’을 해 준 덕이다. 물론, 1부에다 오후 2부까지 뛰면 돈을 곱절로 벌 수 있지만 욕심은 없다. 돈은 딱 필요한 만큼만 있으면 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일본에서 뛰는 유명 골퍼 이보미(25)의 강원 홍천고 후배인 그의 꿈은 명료하다. ‘보미 언니’처럼 미국이나 일본 무대에서 뛰는 것이다. 김씨는 “선수의 골프백엔 14개 골프채만 허락되잖아요. 지금 제 캐디 생활은 15번째 클럽인 셈이죠”라며 활짝 웃었다. 캐디 경험이 프로의 비장의 무기라는 의미다.

골프장경영협회 자료에 따르면 현재 국내 골프장에서 일하는 캐디는 3만 500여명으로 추산된다. 늘 들고 나는 인원이 많은 탓에 공식적인 집계는 어렵다. 2006년 1만 7500여명보다 2배 가까이 늘었다. 캐디 한 명당 1년 동안 맡는 팀(4명 기준) 수는 234개팀. 팀당 캐디비 10만원을 받는다고 가정할 때 연간 수입은 2500만원에 육박한다. 하루 36홀을 뛰는 경우 수입은 곱절로 늘어난다.

월급쟁이 수준의 연봉이지만 그늘도 있다. 이들은 특수고용직 근로자로 분류돼 근로기준법, 최저임금법, 퇴직급여보장법 등 노동 기본법규가 적용되지 않는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다. 김씨와 같은 경우를 제외한 이들 대다수가 자신의 신분을 밝히길 꺼리는 것은 당당한 직업인으로 아직 인정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글 사진 최병규 기자 cbk91065@seoul.co.kr

2013-08-17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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