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탐방] 대상중앙연구소 醬 감별사들

[주말탐방] 대상중앙연구소 醬 감별사들

입력 2008-09-13 00:00
수정 2008-09-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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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구이 맛이 조금 강하지 않을까요? 일반인들은 좀 맵다고 느낄 것 같은데….” “시제품에는 청양초가 그리 많이 들어가지 않았는데요…아마도 효소의 차이 때문이 아닐까요?” “그러면 효소량을 조절한 시제품으로 다시 테스트를 거치죠.” 경기도 이천시 표교리 대상중앙연구소 3층 식품개발실.5명의 연구원과 요리사가 머리를 맞댄 채 열심히 젓가락질을 하며 회의를 하고 있다. 이들의 연구 과제는 최근 개발하고 있는 황태구이용 고추장의 상품화. 시제품으로 만든 고추장을 양념으로 한 황태구이를 직접 맛보고 있다. 고추장의 맛을 살리기 위해 파나 버섯 등 야채는 거의 넣지 않았다. 매운맛 탓에 이들의 콧잔등에는 어느새 땀이 송글송글 맺힌다. 그러나 맛의 ‘찰나’를 놓치지 않기 위해 분주히 음식과 고추장, 그리고 입을 헹구기 위한 물에 연신 손이 간다. 이들은 혀 끝으로 우리 먹거리의 핵심인 고추장과 된장, 그리고 간장을 만드는 ‘장(醬) 감별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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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명의 연구원들 50여가지 장(醬) 만들어

인체의 감각 중에서 가장 민감한 곳은 미각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이 가장 큰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감각은 단연 미각이다.‘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옛말은 허투루 나온 게 아니다. 내륙과 해양을 끼고 있는 한반도의 특성상 산해진미를 다양하게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우리 음식을 대표하는 특성은 된장과 고추장, 간장 등 발효 조미료를 쓴다는 점이다. 대상중앙연구소는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의 식품연구소 중 하나이다. 이곳의 식품연구실 식품2팀 9명의 연구원들은 1년 365일동안 ‘맛있는 장’이라는 목표에 매달리는 맛 전도사다.

이곳에서 만드는 장은 고추장 12종류와 된장 7종류, 그리고 간장 11종류 등 모두 50여가지다. 시중에 나오는 장들은 가장 맛있으면서도 빛깔이 좋고 보관도 오래 할 수 있는 제품이다.

식품연구실 김중필 식품2팀 수석연구원(팀장)은 “5,6년 전만 해도 일일이 발품을 팔아 전국을 돌아다니며 유명하다고 하는 30여가지의 온갖 장을 찾아 맛보고 성분분석을 통해 장점만 뽑아내곤 했다.”면서 “장에 들어가는 볏짚 안의 발효균을 채취하기 위해 수확이 끝난 가을철 전국의 논을 순회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연구원들이 가장 맛 좋은 장을 만들 때는 단맛, 신맛, 짠맛, 쓴맛 등 4대 미각(味覺)을 다 사용한다. 그러나 음식을 먹고자 하는 충동을 불러일으키는 감칠맛과 함께 곡물이 발효했을 때 나오는 구수한 맛인 ‘고꾸미’ 등 6가지 미각으로 맛을 구분한다.

그렇다면 가장 맛있는 장맛은 무엇일까. 장 전문가들은 ‘정답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미각처럼 쉽게 변하지 않는 감각은 없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자신들의 입이 ‘절대적’이다.

식품연구실 정경옥 연구원은 “누구나 ‘어머니 손맛’을 가장 맛있다고 혀 끝으로 느끼기 때문에 맛에는 정답이 없다.”면서 “다만 여섯가지 맛이 어떻게 조화를 이뤄 느끼하지 않으면서도 매운맛과 구수한 맛, 짠맛 등 장들의 본연의 맛을 풍부하게 낼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서구화 따라 짠맛서 단맛으로 이동

하나의 제품을 출시하기 위해 걸리는 시간은 고추장과 된장은 1년, 간장은 무려 2년가량이다.2개월 정도인 고추장과 된장, 그리고 6개월 정도인 간장의 숙성 기간을 네번 정도 거쳐야 한다. 그 와중에 연구원들은 하루에 수백번씩 맛을 본다. 다른 회사는 물론 일본 등 외국 제품도 비교 대상이다. 성분 분석을 통해 가장 좋은 맛을 찾더라도 곰팡이·세균의 함량과 색깔 등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여기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일반 소비자들의 입맛이다. 전문가들이 아무리 좋은 맛을 찾아내더라도 대중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소용이 없기 때문에 소비자 설문·시장 조사를 거친다. 김중필 팀장은 “90년대만 하더라도 장맛의 중심은 짠맛이었지만 이젠 단맛 쪽으로 입맛이 이동하고 있다.”면서 “서구 음식이 대거 들어오면서 깔끔한 맛이 각광을 받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세계화될 수 있는 우리 맛은 고추장

그러나 우리 장은 이미 ‘세계화’, 정확히 말하면 ‘일본화’가 상당히 진행된 상태. 시중의 된장과 간장은 대부분 일본식이다. 청국장의 퀴퀴한 냄새의 근원은 바실러스속 균. 세균 냄새를 대중들이 외면하면서 달짝지근한 일본식 된장이 주류로 자리잡았다.

이에 따라 장 전문가들은 된장과 간장 대신 고추장이 세계화될 수 있는 우리의 맛이라고 입을 모은다. 일본식 간장과 된장은 곰팡이를 쓰지 않고 분해된 아미노산과 당 등을 통해 특유의 맛을 낸다. 때문에 단맛은 강할지 몰라도 발효음식 특유의 맛과 향은 지니지 못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일본 업체들이 고추장 시장을 주도하고 있지만 대량 생산은 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우리의 구수하면서도 단맛이 나는 고추장이 국제적인 ‘소스’로 자리잡을 여지가 있다는 뜻이다.

특히 외국인들 역시 멕시코식 타바스코 소스나 중국의 산초 등 매운 소스의 입맛에 길들여져 있어 고추장에 대한 거부감이 적다. 여기에 처음에만 입에 불이 나는 것같이 매운 외국 소스와 달리 고추장은 매운맛이 은은하게 올라온다는 차별성도 장점이다.

김중필 팀장은 “비행기 기내식에 우리 고추장이 들어가는 것 역시 고추장의 세계화를 위한 노력의 결실”이라면서 “특히 비빔밥 등 경쟁력 있는 우리 음식과 함께 진출한다면 세계적인 소스로 부상하는 데 더욱 용이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글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사진 도준석기자 pado@seoul.co.kr
2008-09-13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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