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 주석 덕에 빈농서 대기업 소유주 됐죠”

“마오 주석 덕에 빈농서 대기업 소유주 됐죠”

입력 2009-09-29 12:00
수정 2009-09-29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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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뤼런 마오자호텔 회장

│사오산(후난성) 박홍환특파원│“빈농의 딸이 이렇게 버젓한 회사의 회장이 됐습니다. 모두 마오쩌둥 주석의 은덕이지요.” 사오산 마오쩌둥기념원 바로 옆 ‘마오자호텔(毛家飯店)’의 탕뤼런(湯瑞仁·79) 회장은 지나간 60년 세월이 감격스러운 듯 이따금 말을 멈추고 창밖 하늘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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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자호텔 탕뤼런 회장. 뒤편 사진은 1959년 고향을 방문한 마오쩌둥이 고향사람들과 대화하는 모습을 담은 ‘마오 주석과 고향사람들’로 사진 속 아이를 안고 있는 여성이 탕 회장이다.
마오자호텔 탕뤼런 회장. 뒤편 사진은 1959년 고향을 방문한 마오쩌둥이 고향사람들과 대화하는 모습을 담은 ‘마오 주석과 고향사람들’로 사진 속 아이를 안고 있는 여성이 탕 회장이다.
빈농의 딸로 태어나 끼니를 구하기 위해 민요를 외웠던 소녀가 60여년이 흐른 지금 국내외에 200여개의 가맹점을 거느리고 연간 11억위안(약 1980억원)의 영업수익을 올리는 대기업의 회장이 됐으니 어찌 감회가 새롭지 않을 수 있을까. 지난 23일 사오산 마오자호텔에서 만난 ‘탕 아줌마’(탕 회장의 별칭)는 연신 마오의 건국대업을 소리 높여 설명했다. 그녀는 “마오 주석은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고, 고향을 떠나 중국 인민을 위해 싸웠으며 우리를 해방시켰다.”고 말했다.

사오산에서 50여㎞ 떨어진 상탄(湘潭)현에서 태어난 탕 회장은 14살 때인 1944년 사오산의 마오 주석 고향집 부근 마오씨 집안으로 시집을 왔다. 항일전쟁과 국공내전의 와중에서 남편은 전쟁터로 떠났고, 그녀는 농사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건국 후에도 그녀의 생활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그녀의 삶이 바뀐 것은 1959년 6월 공산혁명을 위해 집을 떠난 지 32년 만에 마오가 고향 집을 방문하면서 시작됐다. 고향 방문 이틀째 산책하던 마오는 갑자기 그녀의 집을 찾았고, 그녀의 가족들과 환담하는 모습을 담은 ‘마오 주석과 고향사람들’이라는 한 장의 사진을 남겼다. 이후에도 그녀는 문화대혁명 때 홍위병에 가입, 마오의 고향을 지키는 역할을 자원하는 등 마오와의 인연을 이어 갔다.

개혁·개방은 그녀에게 또 다른 삶을 가져다줬다. 57세 때인 1987년 마침내 ‘마오 주석과 고향사람들’을 문 앞에 걸고 지금의 호텔을 열었다. 이어 주류회사와 식품회사, 여행사 등을 잇달아 창업했고, 그녀는 마오씨 집안의 상징이 됐다. 그녀에게 마오쩌둥과 사오산은 삶 자체였던 셈이다.

stinger@seoul.co.kr

2009-09-29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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