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이 사라진다] (하) 주민이 지켜낸 울산 장생포

[마을이 사라진다] (하) 주민이 지켜낸 울산 장생포

입력 2009-01-23 00:00
수정 2009-01-23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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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해마을 오명 씻고 고래 관광지로 부활

한국의 포경(고래잡이) 전초기지였던 울산 남구 장생포. ‘경찰서장 할래, 고래잡이배 탈래?’라고 물으면 아이들 누구나 “포경선 탈랍니더.”라고 답했다던 어촌이 당시의 면모를 되찾기까지는 적잖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21일 아침 찾은 장생포 주민들은 고향을 찾는 설 손님 맞이에 분주했다. 마을 입구에 현수막을 내걸고, 주변 청소도 말끔히 했다. 장생포는 60년대 ‘고래해체장’, 80년대 ‘포경선’, 90년대 ‘환경오염 이주’, 2000년대 ‘고래박물관’ 등 수십년간 진행된 온갖 풍상을 견뎌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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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장생포가 지난해 10월 ‘고래문화특구’로 지정되자 마을 주민들이 10년만에 ‘장생포 대 풍경제’를 열어 축하연을 펼치고 있다. 울산 남구 제공
울산 장생포가 지난해 10월 ‘고래문화특구’로 지정되자 마을 주민들이 10년만에 ‘장생포 대 풍경제’를 열어 축하연을 펼치고 있다.
울산 남구 제공
●공해 이주로 주민 10분의1로 감소

주민들이 일손을 잠시 접고 방문객을 맞는다. 80년대 포경선 포수로 이름을 날린 주민 손남수(73)씨는 “장생포는 일본에 고래고기를 수출하게 된 1975년부터 10년 동안 황금기를 맞았다.”고 회고했다.

현금이 넘쳐나던 이 마을에 1985년부터 위기가 닥쳤다. 몇해 전부터 들어선 울산석유화학공단이 주범이다. 병풍처럼 마을을 둘러싼 공장에서는 매일 매연과 폐수를 내뿜었다. 마을 주민들의 삶은 갈수록 위협을 받았고 황폐해졌다.

정부는 그해 석유화학공단 주변 장생포, 매암, 여천 등을 ‘환경오염 이주지역’으로 지정했다. 보상작업도 시작됐다. 이듬해에는 상업적 포경까지 금지됐다. 마을 주민들의 생활 터전과 생계수단이 한 순간에 날아갔다.

주민들은 동요했고, 하나 둘 마을을 떠났다. 전성기 때 1만 5000명에 이르던 인구는 90년대 들어서면서 1500명으로 줄었다. 10분의1로 급감한 것이다. 마을은 흉물스러운 폐가로 넘쳐났다.

살길을 찾아 마을을 떠난 것은 주로 젊은이들이었다. 전 장생포발전협의회장 정두열(59)씨는 “노인들은 자녀들과 함께 살기를 원했지만 별 수 없었다.”고 당시의 마을 분위기를 전했다. 젊은이들은 ‘옥상에 빨래도 못 널고, 썩어 가는 항구에 무슨 희망이 있느냐.’고 항변하며 도회지로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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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감시 초병으로 나선 마을 주민들

마을을 살리는 것은 고스란히 남은 주민들의 몫이었다. 대책위를 만들고 하루에 한 번씩 행정기관을 찾아 “환경오염 이주지역에서 제외해 달라.”고 요청했다. 주민들이 조를 짜 공단을 돌면서 환경오염 감시활동도 벌였다.

주민들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턱없이 높은 이주 보상금을 불러보기도 했다. 전 청년회장 고정구(45)씨는 “주민들에게 마을을 떠나더라도 전출 신고를 하지 말아 달라고 애원도 했었다.”고 말했다.

8년여간 지속된 주민들의 노력이 결실을 맺기 시작했다. 주민들 목소리는 울산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울산 시민들은 ‘이주지역 제외·상업포경 허용’을 요구하는 탄원서에 너도나도 서명해 정부와 국회 등에 전달했다. 1993년 이 마을은 이주지역에서 풀렸다.

●국내 유일의 고래 문화 툭구로 지정

이주지역에서 해제되고도 주민들의 생계는 포경 금지조치로 여전히 어려웠다. 그물에 걸리거나 죽은 고래고기를 팔아 생계를 이었다. 하지만 주민들의 활동으로 마을은 다시 유명세를 탔다. 울산시와 남구는 ‘고래마을’이 뜨자 2000년대 들어 장생포의 고래문화·관광사업에 발벗고 나섰다. 고래박물관은 2005년 문을 열었고, 이듬해 고래연구소가 개관됐다. 지난해에는 장생포 일대가 ‘고래문화특구’로 지정됐다. 오는 4월 국내 첫 해양 고래관광 사업도 본격 닻을 올린다.

요즘 고래박물관에는 하루 1000여명의 관광객이 찾는다. 공단 주변이 깨끗해지자 관광객과 낚시꾼들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는다.

김두겸 남구청장은 “장생포는 옛날 고래잡이 항구에서 이제는 고래 문화·관광지로 새롭게 부활하고 있다.”면서 “올해 고래관광선 출항을 시작으로 고래마을·분수광장·생태연구센터·테마공원·컨벤션센터 등 고래 관련 인프라를 구축하게 된다.”고 말했다.

울산 박정훈기자 jhp@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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