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대한민국 느낀 계기 됐죠”
5월3일부터 촛불집회에 출석체크를 했으니 이제 80여일쯤 됐다. 그새 평범한 여고생에서 ‘촛불소녀’로 변신한 한채민(17)양은 “정신적으로 한 뼘쯤 자란 것 같다.”고 말했다.2학년 중간고사를 끝내고 구경 삼아 집회에 놀러 갔던 여고생이 이렇게 변할 줄은 자신도 미처 몰랐다.
그를 처음 잡아끈 힘은 ‘감동’이었다.“전 광우병 위험이 있는 쇠고기가 한국으로 들어오는 것도 몰랐거든요. 그런데 집회에 간 첫날 동갑내기 여고생이 발언하는데, 그 학생에게는 쇠고기가 너무나 절박한 문제였던 거예요. 그 발언을 듣고 감동받아버렸죠.” 한양은 그 뒤로 매일 집회에 나가 피켓을 들고 전단지를 돌렸다.
한양 같은 10대들이 주축이 된 촛불집회의 원동력은 생존권이었다.‘고생해서 대학 갔는데 광우병 걸려 죽으면 안 된다.’는 10대들의 절박함이 배어 있었다. 그 절박함이 전경버스와 방패에 가로막히자 10대들은 일어설 수밖에 없었다.
한양은 “잘못된 건 잘못됐다고 얘기해야 하잖아요. 신문을 찾아보고 친구들과 토론할수록 이건 아니란 생각이 들더군요. 독감으로 열이 치솟아도 집회에 나갔어요. 친구들이 ‘너 집회에 미쳤냐.’고 할 정도로요.”라고 했다.
한양이 켜든 촛불은 결국 대통령을 한 달 새 두 번이나 사과하게 만들었다. 그때 한양이 배운 것은 ‘하니까 되는구나.’하는 승리의 경험, 그리고 모두가 하나되는 뿌듯한 감동이었다.“집회현장에 있으면서 가족의 모습, 생중계로 응원해 주시는 분들, 관심없는 사람들, 취객 등등 한 장소에서 이전엔 몰랐던 우리 사회의 여러 면을 봤죠.” 한양에게 촛불은 ‘살아있는 대한민국 체험현장’이었고 성장의 자양분이었다.
한양은 단언했다.“해냈지만 이긴 건 아니다.”라고.“국민들이 주권을 못 찾았어요. 이러면 독재로 갈 수밖에 없는 거 아닌가요? 공안정권의 끝이 좋았던 적이 없잖아요. 앞으로가 걱정이에요.”17세 여고생에게서 ‘공안정권’,‘국민주권’이라는 말이 술술 나오는 건, 모두 촛불의 힘이다.
그는 더 공부하겠다고 했다. 앞으로 계속 사회에 관심을 갖겠다고도 했다.“촛불집회 때문에 보지도 않던 신문을 꼼꼼히 읽었어요. 공부하다 보니 관심도 많아졌어요. 최근엔 의료민영화나 파병 문제도 공부하고 있어요. 앞으로도 계속 제 목소리를 내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공동기획취재팀
2008-07-29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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