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질보다는 구걸이 낫잖아요”

“도둑질보다는 구걸이 낫잖아요”

입력 2006-05-09 00:00
수정 2006-05-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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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똑바로 마주한다는 것은 대단히 고통스러운 일이다.

지난 3일 시에라리온의 수도인 프리타운에서 동쪽으로 자동차로 1시간을 달리자 습지대 인근에 세워진 주이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언뜻 여느 마을이나 다를 바 없어 보이는 이 재정착촌은 노르웨이의 한 자선단체 도움으로 지어졌다고 했다.그러나 10가구 정도가 사는 마을을 지키는 이들은 얼마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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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수로 볼펜을 집어들어 어렵사리 노트에 한국 정부에 대한 호소문을 쓰고 있는 알 하지 주스 자카(오른쪽)와 그와 마찬가지로 양팔을 잃은 동료.
의수로 볼펜을 집어들어 어렵사리 노트에 한국 정부에 대한 호소문을 쓰고 있는 알 하지 주스 자카(오른쪽)와 그와 마찬가지로 양팔을 잃은 동료.
“모두 프리타운으로 구걸하러 나갔어요.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그것 밖에 없어서요.”

내전 때 팔다리를 잘린 사람들의 협의회 회장으로 일하고 있다는 알 하지 주스 자카(48).그는 1995년 수도 부근 30㎞까지 쳐들어온 RUF 반군 소년병들에게 양 팔을 모두 잘려 의수(義手)로 생활하고 있다.그는 “오늘 아침 학교를 가던 다섯살 아들로부터 ‘밥 좀 먹었으면 좋겠다.’는 푸념을 들었다.”며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이런 말을 듣는 게 너무 가슴 아프다.”고 털어놓았다.

현재 동료들과 함께 추진 중인 부상자 재활 기금 마련에 한국 정부가 관심을 기울여줬으면 좋겠다고 밝혔다.다음은 이날 자카의 집 앞마당에서 진행된 일문일답을 그의 증언으로 재구성한 것이다.이 기사는 여러 사정을 감안해 인터넷을 통해서만 게재한다.

반군이 쳐들어온다는 소문은 3주 전부터 들려왔지만 어디로 피난 갈 수도 없었어요.삶의 터전을 쉽게 벗어나지 못하겠더군요.

오후 3시쯤 갑자기 반군 병사가 집에 들이닥쳤어요.14살난 딸과 아내를 데려가겠다고 하더군요.옥신각신 실랑이를 벌이다 결국 딸이 붙들려 나갔는데 전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어 총을 구해가지고 반군에게로 갔지요.

격투를 벌였어요.결국 붙들려 두 팔을 뒤로 묶인 채 어딘가로 끌려갔지요.이미 많은 사람들이 저처럼 끌려와 무릎을 꿇은 채 앉아 있더군요.

소년병들은 ‘손목을 자르라.’는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들을 입고 있더군요.함께 있던 사람 중에는 두 손을 잘리고도 총맞아 죽는 사람들이 있었다.제 차례가 됐어요.막 총을 쏘려고 하는데 한 소년병이 “그냥 놔둬도 죽을텐데 총알이 아깝다.“고 말리더군요.

어떻게 집에 돌아왔는지도 기억에 없어요.어느 순간 깨어보니 아내가 저를 지켜보고 있더군요.마당에는 제가 흘린 피가 가득했어요.아내가 빨리 나가자고 해,“왜 그러느냐.”고 했더니 집에 불이 붙었다는 거예요.반군이 불을 지른 것이었어요.

병원이라고 갔는데 의사는 있었지만 먹을 게 없었어요.사흘동안 아무 것도 먹지 못했어요.3주간 전투 끝에 정부군이 승리해 반군이 퇴각해 좀 더 큰 병원으로 옮겨졌어요.제 기억에 하루 밤에도 스무명씩 죽어나갔던 것 같아요.의사는 저를 처음 보더니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한숨만 내뱉더군요.“어떻게 살아났느냐.이건 기적이다.이렇게 많은 피를 흘리고도 살아남았다니.”

나중에는 국립경기장으로 옮겨져 팔다리를 잘린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치료다운 치료를 처음 받았어요.

정부가 만든 진실화해위원회에 출두해 증언했고 그 결과 부상자를 돕도록 정부에 권고하는 조항이 들어가게 됐어요.

내전 직후 유엔 기구 등은 무기를 반납하는 소년병이나 반군 등에게 100달러씩 지원 정착금을 지원하고 내전 때 트라우마를 치료하기 위한 심리치료를 병행하는 등 배려했지만,부상자들을 위한 지원에는 인색했어요.땅을 내주고 집을 짓게 해주는 것이 고작이었지요.

지난 주 저는 여러 지방을 돌며 저같은 부상자들을 만나 정부 지원을 이끌어내는 방안 등을 논의했어요.우리의 요구 사항은 정부가 진실화해위의 권고 사항을 당장 이행하라는 것과 희생자들을 장기적으로 도울 수 있는 피해자 기금 마련을 지원해달라는 거예요.

6000∼7000명이 내전 당시 손발이 잘린 것으로 추정되는데 정부의 공식 집계가 시작되면 더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반군들은 단지 국제사회에 조금 덜 알려진 내전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키기 위해 만행을 저질렀어요.그런데 그런 끔찍한 짓을 저지른 이들에겐 정착 지원금이 건네진 반면,우리에겐 위로금 조로 약간의 돈만이 쥐어졌지요.

마을 사람들은 다 구걸하러 프리타운에 갔어요.저도 구걸을 할 수 밖에 없어요.그래도 도둑질보다는 낫잖아요.

부기(附記).인터뷰 도중 그는 갈고리가 달린 의수를 이용해 어렵사리 볼펜을 집어들어 노트에 글을 적기도 했다.한국 정부에 지원을 호소하는 내용이었다.

인터뷰 도중 한 한국 기자가 맨흙에서 올라오는 열기를 못 이겨 가벼운 일사병 증세를 보였다.병원을 가봐야 해 급히 마을을 떠나야 했다.아니 그들의 참상을 마주하기가 겁나 좋은 핑계 거리를 찾았다고 표현하는 게 더 적절할 지도 모르겠다.

우리를 쫓아 차에 오른 자카는 머뭇거림 없이 일행에게 손을 벌렸다.구걸이 도둑질보다 낫다는 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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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걷어 적당한 금액을 건네야 했다.마치 그래야 도덕적 부담이 덜어질 수 있다고 믿는 듯이.
2006-05-09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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