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들의 출입이 철저히 통제된 155마일 철책선 주변은 멧돼지들의 천국이다.어디를 가나 멧돼지 떼가 무리지어 다니고 최전방 초소는 먹이를 찾아 드나드는 단골집이다.십수년 전만 해도 초소 주변의 멧돼지는 부대 회식용으로 심심찮게 이용됐다.지휘관들에게는 쓸개가 인기였다.
하지만 환경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면서 요즘엔 장병들과 잔반을 나누며 공생하는 사이가 됐다.멧돼지는 먹이를 얻고 군장병들은 처치 곤란한 잔반을 해결할 수 있어 좋다.잔반을 먹기 위해 몰려드는 멧돼지들과 장병들은 한가족이나 마찬가지다.잔반을 놓을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나타나고 조금 늦어지면 쓰레기통을 뒤집어 놓으며 투정까지 부린다.어쩌다 외지인이 찾아 얼쩡거릴 때면 낯가림을 하느라 서너시간씩 숲속에 숨어 나타나지도 않는다.그 좋은 먹성에 배고픔까지 참아가면서…
비무장지대(DMZ)를 감도는 긴장감은 사람만… 비무장지대(DMZ)를 감도는 긴장감은 사람만의 것인가 보다.까치는 철망에 앉아 속살대고,멧돼지는 귀담아 들으려는 듯 까치에게 눈을 맞추고 있다.야성(野性)은 이렇듯 거칠기만 한 것은 아니다.대화라도 나누는 양 정감 넘치는 이들의 모습이 취재팀의 렌즈 안으로 들어왔다.6월11일 강원도 화천군 백암산 자락에서 촬영.
화천 이종원기자 jongwo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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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무장지대(DMZ)를 감도는 긴장감은 사람만…
비무장지대(DMZ)를 감도는 긴장감은 사람만의 것인가 보다.까치는 철망에 앉아 속살대고,멧돼지는 귀담아 들으려는 듯 까치에게 눈을 맞추고 있다.야성(野性)은 이렇듯 거칠기만 한 것은 아니다.대화라도 나누는 양 정감 넘치는 이들의 모습이 취재팀의 렌즈 안으로 들어왔다.6월11일 강원도 화천군 백암산 자락에서 촬영.
화천 이종원기자 jongwon@seoul.co.kr
시력은 좋지 않지만 냄새와 청각으로 정확하게 외지 손님을 가려내 경계하는 폼새는 영락없이 우리 장병들에게서 눈치껏 배운 노하우일게다.덩치가 워낙 큰 데다 짙은 회색의 짧은 털을 빗자루처럼 세우고 다녀 장병들 사이에서는 ‘황소 멧돼지’ ‘시커먼스’로 더 잘 통한다.
이같은 공생관계가 이어지면서 번식력 좋은 멧돼지 수가 급격히 늘어난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그동안 정확한 서식밀도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지만 DMZ 주변 대형 포유류 가운데 고라니·너구리와 함께 가장 많은 개체수를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중동부전선 최전방 초소 두 곳을 찾아 멧돼지 가족과 장병들 사이의 어우러진 삶의 모습을 들여다보았다.
●까치와 친구하는 백암산 멧돼지
“……”
병사들이 뿌리는 잔반은 멧돼지들의 단골 메… 병사들이 뿌리는 잔반은 멧돼지들의 단골 메뉴다.가장인 듯한 수컷 한놈이 맨 먼저 다가와 허기를 달래기에 앞서 경계부터 살피고 있다.녀석이 포식한 뒤 물러서자 이내 나머지 가족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잔반을 해치운다.포만감 때문일까,취재팀을 바라보는 멧돼지의 눈길이 한결 부드럽다.야생고양이는 멀찌감치 떨어져 제 차례를 기다리는 중이다.비대한 몸집의 녀석은 병사들 사이에선 ‘짬(잔반) 타이거’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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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사들이 뿌리는 잔반은 멧돼지들의 단골 메…
병사들이 뿌리는 잔반은 멧돼지들의 단골 메뉴다.가장인 듯한 수컷 한놈이 맨 먼저 다가와 허기를 달래기에 앞서 경계부터 살피고 있다.녀석이 포식한 뒤 물러서자 이내 나머지 가족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잔반을 해치운다.포만감 때문일까,취재팀을 바라보는 멧돼지의 눈길이 한결 부드럽다.야생고양이는 멀찌감치 떨어져 제 차례를 기다리는 중이다.비대한 몸집의 녀석은 병사들 사이에선 ‘짬(잔반) 타이거’로 불린다.
6월의 뙤약볕을 이고 침묵 속에 얼마를 기다렸을까.섭씨 32∼34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위와 시큼한 잔반 냄새,파리·모기떼,각종 벌레들이 몰려와 괴롭힌다.일어서고 앉기를 수십번.3시간은 족히 기다렸지만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하루 세끼 거르지 않고 나타나 배를 채우던 녀석들이 별일이다.외지인의 냄새를 맡은 것이 분명했다.
잔반 놓은 곳에서 10여m 떨어진 시설물 뒤에 몸을 숨겼지만 영리한 멧돼지들은 넘어가지 않았다.1차 신경전은 취재팀의 완패다.결국 후퇴를 결정하고 10여m 더 물러나 또다시 기다림에 들어갔다.20∼30분쯤 지났을까.숲속에서 ‘쉭∼ 쉭∼’대며 나타난 녀석은 멧돼지라기보다 차라리 아프리카 코뿔소쯤으로 보인다.초병들이 들려준 ‘황소 멧돼지’가 나타난 것이다.치켜든 엄니와 머리 꼭대기부터 등짝 중간쯤까지 빗자루처럼 솟아 있는 짙은 회갈색 억센 털이 멧돼지의 위용을 대변해 주고 있다.서너살 이상으로 추정된다.
경계를 풀지 못해서인지 가족은 남겨두고 수컷만 나타나 ‘쩝쩝’대며 정신없이 먹어 치운다.배고픔이 대단했던 모양이다.멧돼지와 함께 토실토실 살이 오른 들고양이,까치,까마귀,꿩들까지 떼지어 들락거리며 잔반을 쪼아댄다.아무도 방해하지 않고 묵묵히 서로 먹는 일에만 열중이다.
까치들이 등을 타고 놀아도 멧돼지는 개의치 않는다.전방 초소에서나 볼 수 있는 야생동물들간의 또다른 교감현장이다.
초소 조리병인 조용석(23) 상병은 “어쩌다 잔반을 주지 않으면 부대주변 쓰레기통을 몽땅 뒤집어 놓고 땅을 파헤치는 등 저지레를 쳐 귀찮아도 꼬박꼬박 줘야 한다.”며 설명이 신난다.
●멧돼지 가족의 장유유서(長幼有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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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첫날,오락가락하는 빗줄기 속에 또다시 멧돼지 기다림이 이어졌다.금강산을 오가는 차량들이 빤히 내려다 보이는 155마일 동해안 마지막 율곡부대 초소에서도 멧돼지는 장병들과 한가족이다.웅웅거리는 동해선 공사소음이 들리고 차량들의 왕래가 잦은 곳이어서 멧돼지들의 낯가림은 더욱 심한 것 같다.
먹이를 놓는 장병들과 함께 있으면 스스럼 없이 찾아오는 녀석들이 외지인들만 있으면 나타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군복으로 갈아 입어도 마찬가지다.
점심때부터 저녁무렵까지 족히 너댓시간 잠복하면서 또 얼마나 기다렸을까.빗줄기가 굵어지면서 카메라 장비를 챙기며 포기하고 돌아서려는 순간.‘두두두두‘ 한떼의 멧돼지 가족이 숲속을 질주하며 나타난다.모두 7마리,대식구다.수컷 한마리가 나타나 주변 상황을 돌아보고 사라진 지 족히 2시간도 넘은 뒤였다.먹이를 찾아 나타난 가족들 대부분은 숲속에 남아 있고 가장 연장자인 듯한 녀석이 먹이를 독차지하고 먹기 시작한다.새끼들이 먹이 주변에 나타나 얼씬거리면 씩씩거리며 혼쭐을 낸다.그렇게 배를 채운 덩치 큰 수컷이 거드름을 피우며 물러나자 암컷이 찾고 이어 새끼들이 나타나 얼마남지 않은 잔반을 게걸스레 먹어 치운다.먼저 먹겠다고 서로 주둥이를 밀어대며 쟁탈전도 대단하다.
원시적인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멧돼지 가족들 사이에도 가족사랑과 질서가 고스란히 살아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최전방의 멧돼지들은 이렇듯 장병들과 어울려 독특한 생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철원·고성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2004-07-13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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