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하면 일본을 떠나고 싶다.” 일본의 한 대학에서 영미 비교문학을 가르치는 폴(60)은 자칭 ‘아시아를 사랑하는 미국인’이다.6년쯤 남은 정년 때까지 일하고,그후에는 동남아쯤으로 거주지를 옮길까 생각 중이다.청춘 때부터 맺은 아시아와의 인연을 끊을 생각은 없다.두 차례의 유학,대학교수 생활을 합쳐 25년간 일본에 체재중이지만 정년 이후는 다른 나라에서 살고 싶다는 게 솔직한 마음이다. 이처럼 외국인이 일본에 살기란 그리 쉽지 않다고 한다.살면 살수록 어려운 것이 일본 사회라는 말이 실감난다는 게 일본 속의 외국인들의 말이다.외국인들의 눈에 비친 일본인,일본 사회는 어떨까.
|도쿄 황성기특파원|2001년 일본에 특파원으로 온 베이징일보의 리유촨(34) 기자도 임기는 4년이지만 “임기를 다 채울 생각은 없다.”고 한다.그는 일본에 체류하는 중국인 주재원의 상당수가 “나와 비슷한 생각”이라고 덧붙인다.
일본에서 MBA를 따고 외국계인 시티그룹에서 일하는 터키인 구비라이(30)도 일본에 온 지 7년이 넘었지만 일본생활에 젖어 들었다고 생각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이다.
●소득은 높아도 생활수준은 낮아
얼마전 휴가를 이용해 베이징에 다녀 온 리유촨은 오랜만에 싸고 맛있고 푸짐한 중국 요리를 실컷 먹고 돌아왔다고 자랑한다.“물가가 도쿄의 7분의 1정도인 베이징에서 모처럼 해방감을 느꼈다.”는 그는 엔을 위안으로 환산하는 버릇이 도쿄 체재 3년인데도 아직도 남아 있다고 빙긋 웃는다.
베이징에 방 3칸짜리 아파트(70㎡)를 소유하고 있는 그는 방 1∼2칸짜리의 좁은 집에서 외식도 자주 즐기지 못하는 일본인들이 전혀 부럽지 않다.“의식주란 게 인간의 기본인데 그런 점에서 도쿄 사람보다 베이징,상하이 사람이 훨씬 생활의 질이 높은 것 같다.”
도쿄의 월 9만 5000엔짜리 원룸(25㎡)에 살고 있는 구비라이는 “고향에 돌아가고 싶지만 터키 경제가 별로 좋지 않아서 고민 중”이다.그렇지만 “터키에 가면 인생이 더 즐거울 것은 분명하다.”고 못박는다.
도쿄에 놀러온 여동생으로부터 비좁은 집에서 사는 자신의 모습에 “불쌍하다.”는 말을 들었다는 구비라이의 고향집은 서민층인데도 거실 하나만 해도 지금의 도쿄 월세집보다 넓다.
●이해하기 힘든 일본인,일본 사회
외국인들에게 일본,그리고 도쿄는 불가사의한 일 투성이다.
“거리에서 어린이 목소리를 듣기가 어렵다.”는 구비라이.“터키는 물론이고 잠시 일한 적이 있는 싱가포르에서도 어린이들로 시끄러울 정도인데 도쿄에서는 통학시간 말고는 전차는 물론 거리에서조차 어린이 보기가 힘들다.”고 말한다.
그는 “일본 어린이들이 워낙 조용해서인지,가정교육을 엄하게 시켜서인지,아이 덜 낳기로 어린이 숫자가 줄어들어서인지,7년이 지난 지금도 이유를 잘 모르겠다.”고 고개를 저었다.
술과 음식을 즐기는 리유촨에게 일본인의 음주습관은 도통 이해가 안된다.“술이 사람과 사람을 친해지도록 하는 촉매제라는 점은 중국과 같지만 오후 6시부터 이튿날까지 몇집을 돌며 마시는 일본인 친구들과 어울리기에는 내 몸이 일단 견뎌나지 않는다.”고 말한다.“중국인이라면 한 가게에서 맛있는 음식과 좋은 술을 시켜 놓고 느긋하게 먹고 마시고 얘기하다 대개 밤 9시,10시면 집에 돌아간다.” 그런 그에게는 부인이 잠들 때까지 집 근처 선술집에서 혼자 술을 마시고 돌아가는 어느 일본인 친구가 이해하기 힘든 존재다.
하버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따고 미네소타 대학 조교수로 근무하다 일본의 A대학으로 1981년 이직한 폴은 일본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A대학의 교수회에 들어갈 수 없었던 일이 못내 서운하다.
“일본인 교수들은 나에게 ‘당신은 교수회에 들어갈 의무가 없다.’고 말했는데,그 말이 ‘교수회에 들어갈 의무도 없지만 들어갈 권리도 없다.’는 뜻이라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았다.”
그는 A대학의 복잡한 파벌,인간관계,외국인 차별을 견디기 힘들어 6년 뒤 신생 B대학으로 옮겼다.
영국 유학경험이 있는 미국계 통신사의 일본인 여기자 가오리(30)는 “장관을 취재하러 남자 카메라맨과 함께 가면 남자를 먼저 소개하고 나를 소개하는 경우가 많다.남성중심 사회라 어쩔 수 없다.”고 씁쓸히 웃는다.
●정확하지만 효율과 속도는 떨어져
일본사회가 친절하고,정확하지만 생각보다 효율이 낮은 것 같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리유촨은 “서비스가 좋지만 사람을 많이 기다리게 하는 일본인,일본사회가 답답하다.은행에 돈을 바꾸러 가면 바쁜 시간에는 기다리는 것은 당연하다.” 면서 “그러나 일본의 은행직원들은 기다리는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전혀 서두르는 기색도 없다.중국에서 그랬다가는 ‘빨리 하라.’고 욕을 얻어먹기 십상이다.”고 말한다
한국에서 5년간 외교관 생활을 마치고 재작년 일본에 귀국한 스즈키(30·가명)도 “한 동안은 ‘문화 충격’에 짜증을 낸 적이 한두차례가 아니었다.”고 털어놓는다.
“새 집에 놓을 가재도구를 장만하러 백화점에서 쇼핑하고 배달을 부탁했더니 한국 같으면 당일이나 이튿날 배달해줄 것을 ‘1주일쯤 걸린다.’는 얘기를 듣고 화가 치밀어 견딜 수 없었다.”
●곳곳에 스며든 미의식·서비스
이해하기 힘든 사회구조,파고들기 힘든 인간관계이지만 “칭찬을 하고 싶은 것도 많다.”(구비라이)는 것이 외국인들의 속내이기도 하다.
4년전 도쿄 시내에 튀니지 요리점을 연 제리비 몬디르(33)도 “일정한 거리를 지켜주면 내 생활을 침범하지 않는 일본인들이 쌀쌀하게 생각될 지 모르지만 난 오히려 그런 점이 편하다.”고 말한다.
구비라이는 “터키에서는 규칙이 있어도 잘 지키지 않는데 일본사람은 잘 지킨다.학교에서 배운다기보다 집에서부터 버릇이 든 것 같다.”고 나름대로 풀이한다.
규칙을 잘 지키는 일본인들을 치켜세우기는 리유촨도 마찬가지.“운전하면 언제 어디서 사람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베이징과는 달리 마음 편하게 운전할 수 있어 좋다.”
일본에서 오래 산 폴의 생각은 보다 깊다.“룰을 중시하는 일본 사회에는 집단을 소중히 한다든가,버릇없이 굴면 안된다든가,표면적인 화(和)를 어겨서는 안된다든가 하는 그런 이면의 룰이 있다.”는 분석.
처음은 친일(親日)이었다가,시간이 지나 지일(知日)로,지금은 일본에 대해 “무덤덤하게 변했다.”는 폴은 그래도 “조그만 것에 마음을 쓰고,패션감각이나 눈을 즐겁게 해주는 일상생활의 미적 감각은 여전히 좋아한다.”고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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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황성기특파원|2001년 일본에 특파원으로 온 베이징일보의 리유촨(34) 기자도 임기는 4년이지만 “임기를 다 채울 생각은 없다.”고 한다.그는 일본에 체류하는 중국인 주재원의 상당수가 “나와 비슷한 생각”이라고 덧붙인다.
일본에서 MBA를 따고 외국계인 시티그룹에서 일하는 터키인 구비라이(30)도 일본에 온 지 7년이 넘었지만 일본생활에 젖어 들었다고 생각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이다.
●소득은 높아도 생활수준은 낮아
얼마전 휴가를 이용해 베이징에 다녀 온 리유촨은 오랜만에 싸고 맛있고 푸짐한 중국 요리를 실컷 먹고 돌아왔다고 자랑한다.“물가가 도쿄의 7분의 1정도인 베이징에서 모처럼 해방감을 느꼈다.”는 그는 엔을 위안으로 환산하는 버릇이 도쿄 체재 3년인데도 아직도 남아 있다고 빙긋 웃는다.
베이징에 방 3칸짜리 아파트(70㎡)를 소유하고 있는 그는 방 1∼2칸짜리의 좁은 집에서 외식도 자주 즐기지 못하는 일본인들이 전혀 부럽지 않다.“의식주란 게 인간의 기본인데 그런 점에서 도쿄 사람보다 베이징,상하이 사람이 훨씬 생활의 질이 높은 것 같다.”
도쿄의 월 9만 5000엔짜리 원룸(25㎡)에 살고 있는 구비라이는 “고향에 돌아가고 싶지만 터키 경제가 별로 좋지 않아서 고민 중”이다.그렇지만 “터키에 가면 인생이 더 즐거울 것은 분명하다.”고 못박는다.
도쿄에 놀러온 여동생으로부터 비좁은 집에서 사는 자신의 모습에 “불쌍하다.”는 말을 들었다는 구비라이의 고향집은 서민층인데도 거실 하나만 해도 지금의 도쿄 월세집보다 넓다.
●이해하기 힘든 일본인,일본 사회
외국인들에게 일본,그리고 도쿄는 불가사의한 일 투성이다.
“거리에서 어린이 목소리를 듣기가 어렵다.”는 구비라이.“터키는 물론이고 잠시 일한 적이 있는 싱가포르에서도 어린이들로 시끄러울 정도인데 도쿄에서는 통학시간 말고는 전차는 물론 거리에서조차 어린이 보기가 힘들다.”고 말한다.
그는 “일본 어린이들이 워낙 조용해서인지,가정교육을 엄하게 시켜서인지,아이 덜 낳기로 어린이 숫자가 줄어들어서인지,7년이 지난 지금도 이유를 잘 모르겠다.”고 고개를 저었다.
술과 음식을 즐기는 리유촨에게 일본인의 음주습관은 도통 이해가 안된다.“술이 사람과 사람을 친해지도록 하는 촉매제라는 점은 중국과 같지만 오후 6시부터 이튿날까지 몇집을 돌며 마시는 일본인 친구들과 어울리기에는 내 몸이 일단 견뎌나지 않는다.”고 말한다.“중국인이라면 한 가게에서 맛있는 음식과 좋은 술을 시켜 놓고 느긋하게 먹고 마시고 얘기하다 대개 밤 9시,10시면 집에 돌아간다.” 그런 그에게는 부인이 잠들 때까지 집 근처 선술집에서 혼자 술을 마시고 돌아가는 어느 일본인 친구가 이해하기 힘든 존재다.
하버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따고 미네소타 대학 조교수로 근무하다 일본의 A대학으로 1981년 이직한 폴은 일본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A대학의 교수회에 들어갈 수 없었던 일이 못내 서운하다.
“일본인 교수들은 나에게 ‘당신은 교수회에 들어갈 의무가 없다.’고 말했는데,그 말이 ‘교수회에 들어갈 의무도 없지만 들어갈 권리도 없다.’는 뜻이라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았다.”
그는 A대학의 복잡한 파벌,인간관계,외국인 차별을 견디기 힘들어 6년 뒤 신생 B대학으로 옮겼다.
영국 유학경험이 있는 미국계 통신사의 일본인 여기자 가오리(30)는 “장관을 취재하러 남자 카메라맨과 함께 가면 남자를 먼저 소개하고 나를 소개하는 경우가 많다.남성중심 사회라 어쩔 수 없다.”고 씁쓸히 웃는다.
●정확하지만 효율과 속도는 떨어져
일본사회가 친절하고,정확하지만 생각보다 효율이 낮은 것 같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리유촨은 “서비스가 좋지만 사람을 많이 기다리게 하는 일본인,일본사회가 답답하다.은행에 돈을 바꾸러 가면 바쁜 시간에는 기다리는 것은 당연하다.” 면서 “그러나 일본의 은행직원들은 기다리는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전혀 서두르는 기색도 없다.중국에서 그랬다가는 ‘빨리 하라.’고 욕을 얻어먹기 십상이다.”고 말한다
한국에서 5년간 외교관 생활을 마치고 재작년 일본에 귀국한 스즈키(30·가명)도 “한 동안은 ‘문화 충격’에 짜증을 낸 적이 한두차례가 아니었다.”고 털어놓는다.
“새 집에 놓을 가재도구를 장만하러 백화점에서 쇼핑하고 배달을 부탁했더니 한국 같으면 당일이나 이튿날 배달해줄 것을 ‘1주일쯤 걸린다.’는 얘기를 듣고 화가 치밀어 견딜 수 없었다.”
●곳곳에 스며든 미의식·서비스
이해하기 힘든 사회구조,파고들기 힘든 인간관계이지만 “칭찬을 하고 싶은 것도 많다.”(구비라이)는 것이 외국인들의 속내이기도 하다.
4년전 도쿄 시내에 튀니지 요리점을 연 제리비 몬디르(33)도 “일정한 거리를 지켜주면 내 생활을 침범하지 않는 일본인들이 쌀쌀하게 생각될 지 모르지만 난 오히려 그런 점이 편하다.”고 말한다.
구비라이는 “터키에서는 규칙이 있어도 잘 지키지 않는데 일본사람은 잘 지킨다.학교에서 배운다기보다 집에서부터 버릇이 든 것 같다.”고 나름대로 풀이한다.
규칙을 잘 지키는 일본인들을 치켜세우기는 리유촨도 마찬가지.“운전하면 언제 어디서 사람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베이징과는 달리 마음 편하게 운전할 수 있어 좋다.”
일본에서 오래 산 폴의 생각은 보다 깊다.“룰을 중시하는 일본 사회에는 집단을 소중히 한다든가,버릇없이 굴면 안된다든가,표면적인 화(和)를 어겨서는 안된다든가 하는 그런 이면의 룰이 있다.”는 분석.
처음은 친일(親日)이었다가,시간이 지나 지일(知日)로,지금은 일본에 대해 “무덤덤하게 변했다.”는 폴은 그래도 “조그만 것에 마음을 쓰고,패션감각이나 눈을 즐겁게 해주는 일상생활의 미적 감각은 여전히 좋아한다.”고 덧붙인다.
marry04@˝
2004-02-10 3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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