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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당] ‘지금’이 가리키는 시의성/최나욱 건축가·작가

[문화마당] ‘지금’이 가리키는 시의성/최나욱 건축가·작가

입력 2021-09-01 20:08
업데이트 2021-12-07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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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나욱 건축가·작가
최나욱 건축가·작가
최근 문화현상을 설명하는 개념으로 ‘패드’(fad)라는 용어가 빈번히 쓰인다. ‘for a day’(하루 동안)라는 말의 축약어로 급속도로 바뀌는 유행을 가리킨다. 순식간에 생겼다가 사라지는 문화를 가리키기에 기존의 트렌드나 패션이라는 단어는 불충분한 모양이다. 말마따나 “여긴 지금 꼭 가야 해!”였던 곳이 순식간에 생겨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기다란 줄을 서 방문하던 식당, 웃돈을 얹어 구매한 상품, 반드시 지금 알아야 할 것만 같던 뉴스 등. 당장은 놓치면 안 될 것 같던 분위기가 금세 무색해진다.

한때는 유행이라고 부르던 것을 신조어까지 빌려 말하는 까닭은 그것들의 소멸을 상기하게 됐기 때문일 테다. 여전히 새로운 문화상품들이 빠르게 생산되고 소비되지만, 그 또한 사라질 것이라는 피로와 권태가 점차 커져 간다. 이를테면 발빠른 방문을 기념하기 위해 오픈 첫날에 이어 ‘가오픈’이라는 형식까지 고안했으나, 다음 단계는 ‘가가오픈’이기보다 발 빨라야 했던 시간에 관해서다. 시의성이라는 명목으로 ‘지금 해야 하는 일’이 수두룩하게 제시되지만 더이상 마냥 따라가기에는 걸림돌이 있다. 핸드폰 타임라인이 넘어가는 속도가 어느 때보다 급박해지고, 그것들이 주변을 온통 점유하기에 이른 오늘날 퍼져 가는 공감대다.

영국 음악가 브라이언 이노는 런던에서 ‘지금’이 뜻하는 길이와 출장차 간 뉴욕에서의 길이가 다르다는 사실을 논했다. 우리가 이토록 급변하는 타임라인을 의식하고, 발 빠르게 무언가를 좇게 하는 ‘지금’이라는 개념이 일종의 환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얼마 전 기획한 전시 ‘긴 지금’은 어느 때보다 ‘지금 여기’의 압박이 커진 오늘날에 이 관점을 적용한다. 미술도 마찬가지로 지금 유행하는 담론과 조형언어에 맞춘 기획과 작품이 만들어지니, 앞선 신조어의 개념에 얽매여 있긴 매한가지이기 때문이다. 전시에 참여하는 정재경, 전혜주, 이현종, 허수연 등 네 작가가 해석하는 시의성이 모두 다르다.

우리는 ‘지금 여기’서 일어나는 일들을 손쉽게 알게 되면서 그것이 전부라고 믿지만, 실제로는 대부분 개인의 타임라인에 국한해 있을 따름이다. 한쪽에서 당연하게 열광하고 따라가기를 재촉받는 ‘지금 여기’가 다른 쪽에서는 하릴없는 얘기이기 일쑤다. 그렇다면 지금 같은 일시적 유행의 시대에서 각자가 좇는 타임라인을 넘어서는 것이야말로 시의적 주제일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질문을 공유한다면 “여긴 지금 꼭 가야 한다”는 말도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범람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문화를 접하면서 이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막연히 당장의 인기에 영합하기에는 결과가 뻔히 보이는 한편, 그것을 애써 무시하는 것도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로 여겨진다. 눈앞에서 소비하는 문화도 모자라 개인 자체가 일시적인 마음가짐을 품어야 하는 것도 지금 시대의 문화인 걸까? ‘긴 지금’이라는 전시에 앞서 ‘클럽 아레나’라는 책을 썼던 과정은 이 생각의 경로를 드러낸다. 말초적이고 순간적인 문화를 극단적으로 내보이던 클럽을 소재 삼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 책에서 클럽 공간을 두고 “인스타그램의 물리적 형상화”라고 묘사했던 표현은 오늘날 SNS 타임라인을 좇아 바뀌는 풍경 전반에 적용된다.

순간적인 것을 더이상 마다하지 않는 지금, 그렇기 때문에 그것들을 다른 각도에서 살펴볼 필요가 생겨난다. 보들레르가 말했듯 아름다움은 일시적인 것을 포착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과 영원한 것을 연결 지을 때 비로소 구성되기 때문이다. ‘긴 지금’은 이를 추구하는 양가적인 도구이며, 그렇기에 이는 때 지난 노스탤지어가 아니라 어느 때보다 시의적절한 고민이다.
2021-09-02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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