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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명 앗아간 죗값 2000만원… 법이 눈감은 비극

40명 앗아간 죗값 2000만원… 법이 눈감은 비극

민나리 기자
민나리 기자
입력 2020-04-30 22:14
업데이트 2020-05-01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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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전 참사 겪고도 왜 바뀌지 않나

당시 이천 냉동창고서 전기용접 중 폭발
가스 경보장치 없었고 방화셔터는 수동
안전 무시하고 공기 재촉한 업주는 벌금
피해자와 합의했다고 집유 관행도 문제
책임자 처벌 가능한 ‘중대재해법’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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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38명이 숨지고 10명이 다친 경기 이천 물류창고 화재 사고 발생 이튿날인 30일 이천 서희청소년문화센터에 희생자를 기리는 합동분향소가 설치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정세균 국무총리는 합동분향소에 조화를 보내 유족들을 위로했다. 연합뉴스
노동자 38명이 숨지고 10명이 다친 경기 이천 물류창고 화재 사고 발생 이튿날인 30일 이천 서희청소년문화센터에 희생자를 기리는 합동분향소가 설치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정세균 국무총리는 합동분향소에 조화를 보내 유족들을 위로했다.
연합뉴스
12년 전과 똑 닮았다. 38명의 사망자가 나온 이천 물류창고 화재 사건은 2008년 같은 도시에서 벌어진 냉동창고 화재 사건과 판박이다. 가연성 높은 우레탄폼에 옮아 붙은 불씨가 순식간에 건물을 삼켰고, 앞만 보고 땀 흘리던 노동자들은 피할 새도 없이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 값싼 자재를 쓰고 작업을 독촉하고 안전 관리는 나 몰라라 했던 기업들은 솜방망이 처벌을 받았다. 40명이 숨졌는데 사업주가 받은 죗값은 고작 2000만원이었다. 노동자의 생명을 경시하는 안전사고가 반복되는 이유다.

2008년 1월 7일 경기 이천시에 있던 주식회사 코리아2000 냉동창고에서 폭발음과 함께 번진 불길은 40명의 생명을 앗아갔다. 당시 창고 지하에선 57명의 노동자가 전기배선 설치와 냉매 주입 등의 작업을 하고 있었다. 전기용접을 위해 불을 붙이는 순간 공기 중에 차 있던 기름 증기가 폭발해 버렸고, 불은 유독가스를 내뿜으며 순식간에 건물 전체로 번졌다.

조사 결과 화재 위험이 컸던 이 건물에는 현장 점검도 없이 소방안전점검 필증이 발부됐다. 사업주는 공사 기간을 맞추려고 채근했다. 안전교육은커녕 조급하게 공사를 강행한 정황이 드러났다. 가스 검지 및 경보장치는 없었고 방화셔터나 스프링클러는 수동으로 작동하게 돼 있었다.

2020년 4월 29일 경기 이천시에 있는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에선 38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대부분 일용직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확한 화재 원인은 조사를 거쳐야 하지만 최초 폭발이 시작된 장소에서 우레탄폼에 발포제 등을 첨가하는 작업과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는 작업이 함께 이뤄지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값싼 우레탄폼은 여전히 건설 자재로 사용됐고 그 옆에서 불꽃이 튈 수 있는 엘리베이터 설치가 동시에 진행됐다. 그 안에서 일용직 노동자들이 전기, 배선 작업 등에 투입됐다.

12년 전 냉동창고 화재 사건에 대해 법원은 재판에 넘겨진 코리아2000 법인과 대표 공모씨에게 각각 벌금 2000만원을 선고하는 데 그쳤다. 현장 소장과 방화관리자 등도 징역형의 집행유예나 금고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사업주가 위험한 환경에서 작업이 이뤄진다는 사실을 알고도 안전 조치 의무를 다하지 않아 근로자가 사망하면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근로자가 산재보험금을 받았다”거나 “사업주가 ‘반성’이나 ‘합의’를 했다”는 이유에서 많은 사업주들이 벌금형이나 집행유예를 받았다.

2012년 8명이 사망한 LG화학 청주공장 다이옥산 폭발 사고에서도 하청회사 법인에 벌금 3000만원, 현장 소장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LG화학 대표는 무혐의 처분을 받아 재판도 받지 않았다. 기업이나 사업주들에게는 우레탄폼만큼 가벼운 처벌일 수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손익찬 변호사는 “회사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물으려면 말단 책임자부터 처벌해야 하는 현행 법의 한계가 솜방망이 처벌로 이어졌다”면서 “수십 명이 죽어 나가도 원청의 최고경영자나 고위급 임원은 아무 책임을 지지 않는 현실을 바꾸려면 중대재해기업 처벌법 도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2020-05-01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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