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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 언니들의 샤우팅, 여성 옥죄는 관습 ‘찍어내기’

센 언니들의 샤우팅, 여성 옥죄는 관습 ‘찍어내기’

박성국 기자
박성국 기자
입력 2020-04-27 23:34
업데이트 2020-04-28 0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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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록 뮤지컬 ‘리지’… 여성 서사 판을 엎다

美 1892년 부부 살인사건 바탕 극화
용의자로 지목된 ‘둘째 딸 리지’ 중심
끔찍한 사건 발생 이유·배경에 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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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 뮤지컬 ‘리지’
록 뮤지컬 ‘리지’
2017년 10월 미국 할리우드 영화 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추문 폭로로 시작된 ‘미투 운동’(#MeToo)은 곧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타고 범지구적 여성운동으로 번졌다. 한국에서는 2018년부터 문단과 연극, 영화 등 문화계 전반으로 퍼져 나갔다. 이는 곧 남성 중심의 기존 작품 서사에도 영향을 미쳤다. 예쁜 드레스를 입고 백마 탄 왕자님만을 기다리는 공주 대신 직접 활과 칼을 쥐고 전장을 누비거나 남성 주인공의 ‘주변인’이 아닌 무대를 오롯이 지배하는 여성 캐릭터를 다루는 작품 등이 늘기 시작했다. 공연계의 이런 변화 속에 브로드웨이 화제작 ‘리지’의 국내 초연 소식은 다양한 여성 서사에 목말랐던 뮤지컬 팬들에게는 선물과도 같았다. 올해 가장 주목받는 초연 뮤지컬로 꼽히며 지난 2일 서울 대학로 드림아트센터에서 막을 올렸다.

작품은 실제 1892년 미국 매사추세츠의 대저택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을 바탕으로 제작됐다. 부유한 사업가 앤드루 보든과 부인 에비 보든이 자택에서 도끼로 잔인하게 살해된 채 발견된다. 검찰은 아버지와 계모를 죽였다며 둘째 딸 리지를 재판에 넘기고, 리지의 언니 엠마와 친구 앨리스 러셀 그리고 보든가의 가정부 브리짓 설리번이 증인으로 나선다.

당시 이 사건은 미국 전역에 알려지며 사회를 충격에 빠트렸다. 정황상 리지가 범인일 가능성이 컸지만 물적 증거가 발견되지 않으면서 풀려났고 사건은 영구 미제로 남았다.

뮤지컬 역시 실제 사건을 충실하게 따르지만 누가 범인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진범 찾기’로 이야기를 꾸려 가는 흔한 스릴러 작품과 달리 애초 공연을 통해 진범을 명확하게 드러내면서 이 끔찍한 사건이 왜 일어났는지 그 배경과 구조에 집중한다.

무대에는 앙상블 없이 여성 배우 4명만 등장해 시종일관 강렬한 록 콘서트를 이어 간다. 공연장을 뚫는 시원한 외침 속 곳곳에 여성을 향한 폭력과 차별에 맞서 싸우는 상징과 비유가 가득하다. 특히 ‘도끼’는 살인 도구인 동시에 여성을 옥죄는 낡은 관습과 사회를 끊어 내는 저항의 도구로 활용된다. 이른바 ‘n번방 사건’과 ‘그루밍 성범죄’에 대한 엄벌을 촉구하고 있는 현재 우리 사회에도 강력한 메시지를 던진다. 뮤지컬 넘버로 엮은 10여분의 커튼콜은 뮤지컬을 순식간에 록 페스티벌로 바꿔 놓는다. 마스크를 착용한 관객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환호와 함성 대신 뜨거운 박수로 배우들과 소통한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2020-04-28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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