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페이지

“생쌀주면 밥 어떻게 먹으라고…” ‘코로나 사각지대’의 장애인들

“생쌀주면 밥 어떻게 먹으라고…” ‘코로나 사각지대’의 장애인들

오세진 기자
입력 2020-03-01 17:16
업데이트 2020-03-01 17:16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코로나 자가격리’ 중증장애인들의 사투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진환자와 접촉한 사람으로 분류돼 지난달 23일부터 자택에서 자가격리 생활을 하고 있는 중증장애인 강형구(가명)씨. 현재 활동지원사가 없어 강씨는 바닥을 기어 다니면서 생활을 하고 있다.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제공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진환자와 접촉한 사람으로 분류돼 지난달 23일부터 자택에서 자가격리 생활을 하고 있는 중증장애인 강형구(가명)씨. 현재 활동지원사가 없어 강씨는 바닥을 기어 다니면서 생활을 하고 있다.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제공
증가하는 ‘코로나 자가격리’ 중증장애인
활동지원사 지원 없이 자택서 홀로 생활
집안 기어다니며 옷 입는데 1시간 넘어
조리 어려운데 생쌀·배추 보낸 시와 구청
“장애 유형별 맞춤 재난 정책 만들어야”


“일주일째 기어다녔더니 무릎이 아프고 엄지발가락 살갗이 벗겨졌어요. 바닥에 계속 쓸리니까···.”

대구 남구에 사는 강형구(36·가명)씨는 지체장애와 뇌병변장애를 갖고 있는 중증장애인이다. 하루 5시간 활동지원사의 지원을 받았지만 최근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진환자의 접촉자로 분류돼 지난달 23일부터 자택에서 혼자 지내고 있다.

하지만 강씨는 혼자 생활하기 어려운 처지다. 집 안에서 기어다니면서 이동을 하고 있다. 활동지원사가 하던 청소, 빨래, 설거지도 할 수 없다. 혼자 옷을 갈아입는 데 1시간 30분이 넘게 걸린다. 손을 뻗어도 창문이 닿지 않아 환기도 불가능하다.

음식도 스스로 해먹기 어려워서 어쩔 수 없이 식사 한 끼를 줄였다. 아침 겸 점심으로 미숫가루를 물에 타 먹는다. 강씨는 자겨격리 일주일째를 맞은 1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활동지원이 필요하지만 자가격리자한테 누가 와서 지원을 해주겠느냐”면서 답답해했다.

이날 오후 5시 기준으로 확진환자 수가 3700명을 넘는 등(3736명) 코로나19 감염 확산으로 강씨처럼 자가격리 생활을 하는 중증장애인들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 이렇게 취약계층의 안전망이 흔들리고 있지만 이들을 위한 지원책은 정작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은 모습이다.

중증 뇌병변장애인인 민승기(38·가명)씨도 지난 23일부터 확진환자 접촉자로 분류돼 혼자 자가격리 생활을 하고 있다. 청소, 빨래, 설거지, 조리는 할 수 없다. 화장실을 갈 때도 바닥을 기어서 겨우 간다. 그런 그에게 대구시와 구청이 지난달 26~28일 식료품이 든 상자를 보냈다.
대구시가 자가격리 생활 중인 중증장애인들에게 지급한 식료품. 그런데 상자 안에는 생쌀, 봉지라면 등 중증장애인들이 조리할 수 없는 식품이 들어 있었다. 사진은 현재 중증장애인 3명과 함께 자가격리 생활을 하고 있는 한상민(가명)씨가 제공했다.
대구시가 자가격리 생활 중인 중증장애인들에게 지급한 식료품. 그런데 상자 안에는 생쌀, 봉지라면 등 중증장애인들이 조리할 수 없는 식품이 들어 있었다. 사진은 현재 중증장애인 3명과 함께 자가격리 생활을 하고 있는 한상민(가명)씨가 제공했다.
민씨는 상자를 열고 한숨이 나왔다. 간편식이 와야 하는데 생쌀, 배추, 봉지라면과 같이 조리가 필요한 식품이 들어 있었다. 3분요리와 즉석밥도 있었지만 자가격리 기간(2주)을 버틸 수 있는 양이 아니었다. 민씨는 “지금도 전자레인지를 간신히 쓰고 있는데, 활동지원사 지원도 못 받는 장애인한테 생쌀, 배추를 보내면 어떻게 밥을 먹으라는 것인지···”라면서 말끝을 흐렸다.

대구의 한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상근 활동가로 일하는 비장애인 한상민(30·가명)씨는 현재 20대 후반~40대 초반 중증장애인 3명(뇌병변장애인 1명, 지적장애인 2명)과 함께 자가격리 생활을 하고 있다. 한씨도 자가격리자이지만 방호복과 마스크, 고글 등을 착용하고 중증장애인 3명의 생활을 지원하고 있다.

한씨가 자가격리 중인 자립생활주택에는 방이 총 4개가 있다. 방 3개를 중증장애인이 각자 나눠서 사용하고 있고, 남은 공간인 활동지원사 대기공간을 한씨가 쓰고 있다. 한씨는 분무기 형태의 소독제를 이용해 욕실, 부엌, 거실 청소를 매일 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가 권고한 ‘자가격리 대상자의 동거인 생활 수칙’에 따라 옷, 이불 등을 빨래할 때도 세탁기를 따로 돌리고, 식기류도 따로 분리해 세척한다.

하지만 방호복과 고글을 하루 종일 착용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한씨는 “음식을 조리할 때 방호복과 고글을 착용하고 있으면 앞이 잘 보이지 않아 잘못하면 안전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면서 “일회용품인 방호복도 여벌이 얼마 없어서 방호복은 장애인들의 샤워를 지원할 때만 착용한다. 밀착 상태에서 지원해야 하고, 샤워하는 과정에서 비말이 묻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본인도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진환자의 접촉자이면서 다른 접촉자인 중증장애인 3명의 일상 생활을 지원하고 있는 비장애인 한상민(가명)씨가 사용하고 있는 방호용품들. 왼쪽부터 방호복, 마스크, 고글. 한씨 제공
본인도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진환자의 접촉자이면서 다른 접촉자인 중증장애인 3명의 일상 생활을 지원하고 있는 비장애인 한상민(가명)씨가 사용하고 있는 방호용품들. 왼쪽부터 방호복, 마스크, 고글. 한씨 제공
그런데 이 방호용품들은 모두 보건소가 아닌 자립생활센터에서 구했다. 한씨는 “보건소는 전화로 자가격리자들의 체온만 확인할 뿐 자가격리자들이 집단 생활을 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무엇을 주의해야 하는지 아무 것도 안내해주지 않았다”면서 “방호용품도 센터에서 다 구했고, 지원 인력을 보내줄 수 없겠냐는 물음에 보건소는 답변을 회피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제가 지금 중증장애인 3명을 지원하고 있지만 활동지원사처럼 1대1로 지원하는 것보다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지난달 28일부터 자가격리 장애인을 도울 수 있는 생활지원인력을 모집하고 있지만 전문 인력을 구하기도 쉽지가 않다. 전근배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국장은 “지원자 중에 활동지원사와 사회복지사 등 전문 자격을 가진 사람들의 비중이 많지 않다”면서 “자가격리 장애인에겐 장애 유형별 특성과 활동지원 상황별 대처방법 등을 아는 사람의 생활지원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무엇보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도 코로나19에 감염될 수 있고 자가격리될 수 있다는 것을 대비한 재난 정책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많이 본 뉴스

22대 국회에 바라는 것은?
선거 뒤 국회가 가장 우선적으로 관심 가져야 할 사안은 무엇일까요.
경기 활성화
복지정책 강화
사회 갈등 완화
의료 공백 해결
정치 개혁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