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신춘문예 동화 당선작] 발이 도마가

입력 : ㅣ 수정 : 2020-01-06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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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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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내가 좀 특별한 아이래요. 내가 뭘 잘 하든 못하든, 그건 내가 특별하기 때문이라고 말하죠. 오빠는 내가 좀 이상한 아이래요. 내가 뭘 잘하든 못하든, 진짜 이상하다고 혀를 차요. 엄마가 다른 사람 보고 혀 차는 건 나쁜 버릇이랬는데.

난 글을 잘 못 읽어요. 초등학교 2학년이지만, 친구들과 좀 다르거든요. 잘 못 읽고, 잘 쓰지도 못해요. 아직 내 이름을 쓰는 것도 어려워요. 1학년 때는 받아쓰기를 빵점만 받았는데, 엄마는 그래도 항상 잘했다고 칭찬해 줬어요. 어차피 선생님이 불러 주는 건 받아 쓸 수 없으니, 나는 글자 대신 그림을 그렸어요. 가끔은 생각나는 글자를 한 글자씩 마음대로 쓰기도 하고요. 엄마는 빨간 줄이 주욱주욱 그어진 받아쓰기 공책을 한참씩 들여다보며 맞는 글자를 찾았어요.

“와, ‘가’ 자에 ‘ㄱ’을 이번엔 거꾸로 쓰지 않고 아주 예쁘게 잘 썼네!”

한 줄에 한 글자씩만 똑바로 쓴 글자가 있어도, 엄마는 백점만큼 잘한 거라고 칭찬해 줬어요. 빵점을 맞아도 방실방실 웃는 나와 엄마를 보면서 오빠는 옆에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혀를 찼죠.

“무슨 초등학생이 글자를 모르냐고?”

아, 혹시 우리 오빠처럼 오해할까봐 다시 말하는 건데요, 전 글자를 못 읽는 게 아니라 글을 못 읽는 거예요. 물론 얼마 전까지는 글자도 잘 못 읽었지만. 오빠는 자꾸 그게 그거라고 하는데, 그건 분명히 다르거든요. 자꾸 헷갈리는 표정인 걸 보니 우리 오빠처럼 이해를 잘 못하시는군요?

그러니까 저는 ‘가’를 읽을 수 있고 어렵지만 ‘방’도 읽을 수 있어요, 이제. 하지만 아직 ‘가’하고 ‘방’이 붙으면 머릿속에서 글자들이 막 춤을 추며 날아다녀요. 글자만 보고는 무슨 뜻인지 이해가 잘 안 돼요. 하지만 괜찮아요. 언어치료 선생님이 한 글자를 읽을 수 있게 된 것처럼 언젠가 두 글자가 만나도, 세 글자가 만나도 잘 읽게 되는 시간이 올 거라고 했어요.

학교에서도 난 좀 특별해요. 선생님과 친구들이 날 아주 많이 도와준다는 걸 알고 있어요. 선생님은 수업 시간에 칠판에 글을 열심히 쓰고 난 후에도 꼭 나와 눈을 맞추고 다시 한번 읽어 주세요. 내가 잘 모르겠다고 눈을 깜빡거리고 있으면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다시 읽어 주세요. 그건, 선생님과 나 사이의 신호 같은 거예요. 내가 고개를 끄덕일 때까지 선생님은 몇 번이고 다시 읽어주시죠. 어떨 땐 다른 친구가 일어나서 읽어 주기도 해요. 내가 고개를 끄덕일 때까지 지훈이, 예슬이, 선우, 지은이. 계속 계속 읽어 주죠.

받아쓰기를 한 후에도 선생님은 내 공책에는 빨간 줄 대신 색연필로 그림을 그려주세요. 어차피 내 마음대로 쓴 글자지만 선생님은 정답을 찾는 게 중요한 게 아니랬어요. 그래서 내 받아쓰기 공책은 1학년 때처럼 빨간 비가 오는 공책이 아니라, 노란색 애벌레가 점점 자라 허물을 벗고 예쁜 분홍나비가 되어 가는 그림이 예쁘게 그려져 있죠. 그런데요, 우리 선생님은 글자도 예쁘게 잘 쓰고, 예쁜 목소리로 동화 구연도 잘하시고 다 잘 하시는데, 나보다 애벌레는 못 그리는 것 같아요. 처음 선생님의 애벌레 그림을 보고는 우리 오빠가 휴지 위에 뱉어 놓은 껌인 줄 알았다니까요.

어느 날 점심시간이 끝나갈 때쯤,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김민철이 우리 교실에 들어왔어요. 김민철은 1학년 때부터 친구들을 자꾸 괴롭히던 아이예요. 엄마에게 일렀더니, 엄마는

“민철이가 너무 심하게 굴면 선생님이나 엄마에게 다시 한번 자세히 이야기해 줘. 하지만 민철이가 친구들과 더 친해지고 싶어서 그러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 엄마는.”

하고 말했었죠.

민철이는 우리 교실을 한 바퀴 쓱 둘러보고는 내 앞에 앉은 예슬이 책상 앞으로 다가왔어요.

“야, 너 아까 문방구에서 콜라볼 사더라. 나 한 줄만 줘.”

“안 돼. 이거 이따 방과 후 수업 전에 애들이랑 나눠 먹기로 했단 말이야.”

“참나, 어차피 나눠 먹을 거니까 나도 좀 달라고. 너 아침에 문방구에서 불량식품 사왔다고 니네 선생님한테 다 이른다.”

예슬이는 민철이를 째려보며 가방에서 콜라볼을 꺼냈어요.

“이걸 어떻게 나눠 달라는 거야?”

“가위로 반 잘라 주면 되겠네.”

“한 줄만 달라며?”

“마음이 바뀌었어.”

예슬이는 화가 났는지 곧 울음이 터질 것같이 빨간 얼굴이 되었어요. 예슬이가 울게 생겼는데 내가 어떻게 나서지 않을 수가 있겠어요? 그리고 콜라볼은 예슬이가 방과 후 수업 가기 전에 나에게도 나눠 주기로 했던 거란 말이에요.

“야, 김민철. 너 왜 예슬이 괴롭혀?”

“니가 뭔데 그래.”

“친구 거 뺏는 건 나쁜 거잖아.”

점점 주변으로 아이들이 모여들었어요. 웅성웅성 우리 반 친구들이 한 마디씩 거들기 시작했어요.

“무슨 일이야?”

“김예슬 울어? 왜 울어?”

“김민철, 너 왜 김예슬 울려?”

“왜 남의 반에 와서 난리래?”

김민철의 얼굴도 점점 빨개지기 시작했어요. 그러더니 김민철이 나를 툭 밀며 말했어요.

“야, 너 장애인이라며?”

“뭐라고?”

“우리 형이 그러는데, 너 글자 못 읽는 장애인이랬거든? 뭐라 그랬지? 나, 난, 뭐라고 했는데.”

당황스럽고 속상한 마음에 내 눈에도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어요. 우리 오빠가 울면 지는 거라고 그랬는데, 울면 안 되는데…. 나는 꾹 참으며 김민철에게 소리쳤어요.

“장애인이 뭐 어때서? 그래서 뭐 어쩌라고!”

예슬이도 벌떡 일어나서 김민철에게 따지며 소리쳤어요.

“너 진짜 못됐구나!”

곁에 있던 친구들도 화난 목소리로 김민철에게 한마디씩 했어요.

“야, 김민철! 우리 엄마가 친구한테 못되게 굴면 다시 다 자기한테 돌아온다고 했어.”

“야, 박하민 장애인 아니거든!”

“맞아, 글자 좀 못 읽는 거 가지고! 그건 배우면 되는 거지!”

“우리 아빠가 사람은 다 똑같은 거라고 했거든. 막 다른 사람 차별하고 무시하고 그러면 안 된다고.”

그 순간 나는 참고 참던 울음이 터져 나왔어요. 그건 김민철이 미워서가 아니라, 장애인이라는 말을 들은 게 속상해서가 아니라, 내 편이 되어 준 친구들이 고마워서 터져 나온 울음이었어요. 김민철은 당황한 표정을 하고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어요.

“아니, 우리 형이 그랬다고. 내가 그런 게 아니라.”

나는 아예 책상에 엎드려 울어 버렸고, 김민철이 언제 어떻게 가버렸는지는 모르겠어요.

5교시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나는 내 방에 들어가 그림을 그리고 있었어요.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기분이 점점 좋아지거든요. 난 힘들고 속상한 일은 금방 잊어요. 그건 오빠도 인정한 나의 특별한 점이에요. 그런데 학교에서 방과 후 수업을 마치고 온 오빠가 집으로 들어오며 시끄럽게 내 이름을 불러댔어요.

“박하민! 박하민! 엄마, 박하민 어디 있어요?”

소란스럽게 내 방 문을 연 오빠는 나를 다그쳐 물었어요.

“야, 김민철이 몇 반이야? 오늘 너 괴롭혔다며?”

“어, 어떻게 알았어?”

“방과 후 시간에 다 들었어.”

오빠의 방과 후 수업은 줄넘기 수업이었으니, 아, 지훈이가 오빠에게 다 얘기했나 봐요. 그리고 오빠는 다시 엄마에게 들은 이야기를 다 전했죠.

“우리 하민이가 많이 속상했겠네.”

“괜찮아요. 우리 반 친구들이 다 내 편이 돼서 김민철한테 막 뭐라고 해줬어요.”

“우리 하민이 곁에 좋은 친구들이 많아서 감사한 일이네.”

엄마가 날 보고 웃어주자 오빠가 투덜댔어요.

“엄마, 그냥 그렇게 넘어갈 게 아니라, 내일 가서 혼내줘야 한다니까요. 김민철 몇 반이냐고?”

“아, 오빠는 참견하지 말라고. 무슨 5학년이 2학년하고 싸우려고 하냐고.”

나는 오빠가 정말 김민철을 찾아가서 혼내줄까봐 걱정이 됐어요.

다음날 나는 학교에 가자마자 지훈이에게 가서 다짐을 받았어요.

“야, 오늘 우리 오빠가 너한테 김민철 몇 반이냐고 물으면 절대 알려주면 안 돼! 알겠지?”

“왜?”

“우리 오빠가 김민철 혼내주러 간다고 했단 말이야. 절대 안 돼! 알겠지?”

“진짜? 하랑이 형이 김민철 혼내준대? 우와, 형 멋지다!”

“멋지긴 뭐가 멋져? 5학년이 2학년하고 싸우는 게 말이 되냐고! 알겠지? 절대 알려주면 안 돼!”

난 오빠가 2학년 교실을 뒤지고 다닐까 봐 하루종일 걱정이 돼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어요. 김민철 때문에 좀 속상했던 건 사실이지만, 그건 벌써 어제 일인걸요. 그리고 5학년이 2학년을 불러서 시비를 거는 건 너무 치사한 일이잖아요.

오전 수업이 끝나고 점심을 먹은 난 도서관이 있는 4층으로 올라가려고 교실을 나섰어요. 그런데 오빠가 2학년 교실이 모여 있는 2층 복도를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는 게 아니겠어요? 나는 깜짝 놀랐지만 오빠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뒤로 살살 걸어가다가 김민철네 반으로 냅다 들어갔어요!

“김민철, 도망가!”

하지만 교실엔 김민철이 없었어요.

“야, 아직 김민철 급식 먹으러 갔다가 안 왔어!”

아, 괜히 큰 소리로 김민철을 부르는 바람에 옆 반 교실을 지나던 오빠가 내 목소리를 듣고 달려왔어요.

“김민철이 어디 있다고?”

나는 숨이 차도록 달려서 급식실로 가다가 1층 복도에서 어슬렁거리고 있는 김민철을 만났어요.

“야! 김민철! 우리 오빠가 너 잡으러 쫓아오고 있어! 빨리 도망쳐!”

“뭐라고?”

“빨리 도망가라고!”

나는 김민철의 팔을 붙잡고 급식실 안 쪽, 선생님들이 아직 식사 중인 식탁 옆으로 뛰어갔어요.

“박하민, 멈춰! 급식실에선 위험하니까 절대 뛰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을 텐데?”

선생님에게 잡힌 나는 숨을 몰아쉬며 뒤를 돌아봤어요. 오빠가 급식실 입구에서 우리를 못마땅하게 쳐다보고 있었어요.

“후! 하! 그러니까요, 선생님. 뛰면 안 되는 건 아는데, 안 뛸 수가 없어서….”

내가 채 말을 끝내기도 전에 김민철네 담임선생님도 김민철을 보고 큰 소리로 말했어요.

“아이고, 우리 민철이가 같이 뛰었구나! 아까도 쉬는 시간에 복도에서 뛰다가 혼난 걸 그새 잊으시고?”

우리는 담임선생님을 따라 우리 교실로 와서는 점심시간이 끝날 때까지 교실 뒤 사물함 앞에 가만히 서 있어야 했어요.

“자, 가만히 서서 급식실에서 뛰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반성하고 있어.”

선생님은 교실 앞 선생님 책상으로 가서 수업 준비를 하셨어요.

“박하민, 너 때문이잖아!”

“야, 그래도 이게 나을걸. 우리 오빠한테 잡히는 것보다. 우리 오빠가 너 잡으면 가만 안 둔댔단 말이야!”

김민철이 입을 꾹 다물었어요.

“야, 김민철. 오늘 5학년도 5교시 하는 날인 거 알지? 너 이따가 학교 끝나면 무조건 집까지 뛰어가라. 문방구 같은 데 들렀다가 우리 오빠랑 마주치지 말고. 알겠냐?”

김민철은 한숨을 푹 쉬며 물었어요.

“야, 니네 오빠가 날 언제까지 잡으러 다닐까?”

“글쎄. 그건 잘 모르겠지만, 우리 오빠도 바쁜 사람이고, 뭐 나한테 그렇게 관심이 많지는 않으니까 며칠 있으면 잊어버리지 않을까?”

“니네 오빠 힘 세?”

“우리 오빠 여섯 살 때부터 태권도 다녔거든.”

김민철의 한숨 소리가 더 커졌어요.

“그리고, 혹시라도 니네 형한테 우리 오빠 얘기하면 안 된다. 5학년들끼리 싸우면 엄청 무섭댔어.”

“야, 나도 그 정도 눈치는 있거든!”

“누가 반성하랬더니 시끄럽게 떠들지?”

투닥거리는 우리 소리를 들으셨는지, 선생님이 주의를 주셨어요. 우리는 동시에 입을 꾹 다물고 바짝 서 있었죠. 점심시간이 끝나기 5분 전 예비종이 울렸어요.

“자, 민철이는 너희 교실로 가서 수업 준비해. 하민이도 자리로 들어와 앉고.”

나는 교실로 돌아가는 김민철을 쳐다보며 입을 삐죽거렸어요.

“잘 가라.”

내 인사를 듣고는 잠시 머뭇머뭇 대던 김민철이 조용히 소근거렸어요.

“박하민, 미안해. 어젠 내가 좀 나빴어. 그리고 사실, 나도 아직 받침 두 개 달린 글자는 잘 몰라.”

“야, 나는 그거랑은 좀 다르다니까.”

“어쨌든 미안한 건 미안하다고.”

김민철은 자기 할 말만 후다닥 하고는 자기 교실로 쪼르르 가버렸어요.

참, 나. 나는 피식 웃음이 났어요. 난 그거랑 좀 다른데. 하지만 상관없어요. 지금 중요한 건, 오늘은 5학년도 5교시 수업까지 한다는 거니까. 나는 서둘러 종합장을 꺼내 크게 글자를 썼어요. 우리 오빠가 김민철을 찾기 전에 내가 이 쪽지를 김민철에게 먼저 전해줄 수 있을까요?
2020-01-02 4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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