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년 전 내려진 한국 재건 처방…지금 빈부 간극 메울 퍼즐일까

입력 : ㅣ 수정 : 2019-12-27 0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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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대전 당시 미국 전시(戰時)생산위원회 계획위원장으로 근무한 로버트 네이선(오른쪽)이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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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차 대전 당시 미국 전시(戰時)생산위원회 계획위원장으로 근무한 로버트 네이선(오른쪽)이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한국 경제의 재건을 위한 진단과 처방/조영준·류상윤·홍제환 역해/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544쪽/4만 5000원

“한국에서는 직간접으로 정부의 결정과 정부 행정에 의하여 영향을 받지 않는 경제 분야가 거의 없다. 따라서 정부의 역할이 제한된 다른 국가보다 한국은 행정 책임이 더욱 크다. 한국 경제 재건의 진실한 성공은 근본적인 제도의 변혁으로써 성취될 것이다.”

“한국의 경우는, 1945년 일본인 축출과 1949년 농지 개혁으로 가장 큰 (소득과 부의) 불공평은 제거되었으나, 이 나라는 대규모 인플레이션을 겪었으며 이 인플레이션은 확실히 소득 분배를 더욱 왜곡시켰다. 한국 재정 정책의 즉각적인 목적인 소득 분배의 공평화 문제와는 별개로 한국 재정은 최부유층과 최빈민층 간의 간극의 확대를 방지해야 한다.”

1954년에 작성된 ‘네이선 보고’의 내용 중 한 대목이다. 얼추 70년 전에 내려진 진단이지만, 당장 오늘 적용해도 어색할 게 없는 분석이다. ‘네이선 보고’는 당대 최고의 경제학자로 꼽히는 미국의 로버트 네이선(1908~2001)이 국제연합 한국재건단(UNKRA)에 제출한 보고서다. 신간 ‘한국 경제의 재건을 위한 진단과 처방’은 오류가 많고 접하기도 어려웠던 ‘네이선 보고’를 번역하고 해제를 붙여 새로 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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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선 보고’는 한국전쟁 이후 한국의 자원과 잠재력에 대한 평가와 분석, 경제 재건의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현실적인 정책 제안에 주안점을 두었다. 당대 한국 경제에서 포착되는 각종 경제지표를 비롯해 여러 사회 현상, 산업 현황 등 거의 모든 것을 포괄한다. 저자들은 “전쟁의 참화를 겪은 직후의 한국 경제를 이처럼 체계적으로 분석한 보고서는 없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당시 이승만 정부는 ‘네이선 보고’에 담긴 정책 제안을 채택하지 않았고, 보고서는 사실상 사장되고 말았다.

왜 이 시점에 ‘네이선 보고’를 되짚어 봐야 하는 걸까. 우선 우리 경제사의 완결성을 구축한다는 의미가 있다. 한국 경제에 대한 전망이나 분석을 하려면 과거 경제 발전 경험을 제대로 이해하는 장기적인 시야 확보가 필수다. 그런데 우리에겐 이 부분이 일정 기간 결여돼 있다. 태평양전쟁, 한국전쟁을 거쳐 이승만 정부에 이르기까지의 자료는 제대로 남아 있지 않다. 일부 남은 것도 통계 신뢰도가 현저히 떨어진다. 저자 중 한 명인 조영준 서울대 교수는 “1940년대부터 1960년대 사이는 통계의 공백기로 장기적인 시야를 확보하기 어려운 상태였다”며 “당시 역사를 복원해 일제강점기와 고도성장기 사이의 공백기를 연결해 주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우리의 위상 변화에 대처하는 방식에도 ‘네이선 보고’는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그동안 원조수혜국이었던 한국은 이제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원조공여국 반열에 올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DAC)에 가입해 경제 발전 경험을 개발도상국에 나눠 준다. 하지만 우리의 경제 성장 포맷을 동남아 국가 등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각 나라의 문화나 제도 등이 상이하기 때문이다. 이런 제반 상황들을 ‘네이선 보고’는 상세하게 담고 있다. 조 교수는 “선진국 입장에서 여러 여건들을 체크해야 후진국에 맞는 방향을 설정해 줄 수 있다”며 “‘네이선 보고’의 정책 제안이 당시엔 빛을 보지 못했지만 우리가 원조공여자의 역할을 수행할 때 중요한 경험치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손원천 선임기자 angler@seoul.co.kr
2019-12-27 3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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