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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지마 정규직 심사… 장관 표창 받은 날, 일터서 쫓겨났다

묻지마 정규직 심사… 장관 표창 받은 날, 일터서 쫓겨났다

김헌주 기자
김헌주 기자
입력 2018-12-31 22:04
업데이트 2019-01-01 0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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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화진흥원 ‘손말이음센터 채용 논란’

위탁→직접 고용 전환서 ‘노조 배제’ 의혹
업무 성과 우수 추천 해놓고 면접서 탈락
전환 직전 용역업체 ‘사표 요구 논란’도
반발 커지자 “일용직 채용 후 새달 면접”
누구를 위한 비정규직 정규직화인가
누구를 위한 비정규직 정규직화인가 손말이음센터 수화통역사들이 31일 서울 영등포구 더불어민주당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정보화진흥원의 직접고용 전환 과정이 불공정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손말이음센터지회 제공
“축하합니다. 장관 표창 대상자로 선정되셨습니다.”

지난 28일 오전 11시쯤 청각·언어 장애인들에게 전화·영상·문자 중계 서비스를 제공하는 ‘손말이음센터’의 수화통역사(중계사) 황모(30·여)씨에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표창을 받게 됐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그동안 황씨가 일터에서 보인 노력과 업무적 성과를 정부에서도 인정한 것이다. 황씨를 추천한 곳은 한국정보화진흥원이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같은 날 오후 5시 30분쯤 정보화진흥원에서 ‘무기계약직 전환을 위한 최종 전형에 불합격했다’는 내용의 문자메시지가 황씨에게 전해졌다. 사실상 해고 통지였다. 황씨는 “일 잘했다고 장관 표창 추천을 해 놓고선 나가라고 하는 이유가 뭔지를 도무지 알 수가 없다”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손말이음센터는 과기부 산하 준정부기관인 정보화진흥원이 민간 회사 KTcs에 위탁해 운영되는 기관이다.

정보화진흥원이 손말이음센터 소속 중계사들을 직접 고용하는 과정에서 노조 지회장인 황씨를 비롯해 사무장 등 조합원 5명을 불합격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이를 둘러싸고 진흥원 측이 노조 핵심 간부를 최종 전형에서 의도적으로 탈락시킨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노조 측은 “부당 노동행위”라고 반발하고, 진흥원은 “전형은 엄격하고 공정하게 진행됐다”고 맞서는 형국이다.

31일 정보화진흥원에 따르면 지난 19일부터 손말이음센터 계약직 직원을 진흥원 직원으로 전환하기 위한 ‘3단계 전형’이 치러졌다. 1차 시험에는 39명의 중계사 중 29명이 응시했고, 이 가운데 3명만이 탈락했다. 지난 21일 2차 면접에서는 응시자 26명 모두 합격했다. 하지만 3차 임원 면접에서 황씨 등 노조 핵심 조합원 5명을 포함한 8명이 대거 탈락했다.

노조는 즉각 “진흥원이 형식적인 채용 절차라던 무기계약직 전환 시험을 대량 해고 수단으로 삼았다”고 반발했다. 면접에서는 ‘건강관리를 어떻게 하느냐’, ‘진흥원 직원으로서 가져야 할 덕목은’ 등의 가벼운 질문이 주로 오간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진흥원 측은 “3차 면접은 수행 업무에 대한 적극성, 성실성, 업무 발전계획, 인성 및 조직관 등을 평가 기준으로 심사했다”고 밝혔다.

게다가 고용 전환 전형에 응시한 중계사 전원은 1차 시험을 봤을 때 KTcs 측에 사직서를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노조 관계자는 “KTcs 측이 19일 정오까지 퀵으로 사직서를 보내라고 했다”고 말했다. 노동자들이 최종 전형에 탈락했을 때 돌아갈 다리마저 끊어버린 셈이다. 이 때문에 31일로 계약이 만료된 탈락 직원들은 실업급여도 못 받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진흥원 측은 “전환 조건으로 사직서를 요구한 적이 없고, 사직서를 제출한 사실도 몰랐다”고 주장했다. KTcs 관계자는 “사직서 제출을 종용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에 노조 측이 거세게 항의하고 과기부도 사실 확인에 나서자 진흥원은 31일 “3차 면접 탈락자 8명을 일용직으로 우선 고용한 뒤, 2월 공개 채용 때 최종 면접 기회를 주겠다”며 부랴부랴 중재안을 내놨다. 노조 측은 “오는 3일 협상을 재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2019-01-01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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