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대 국회 5명 원내대표 중 이한구·최경환만 ‘무탈’
‘총리 영전’ 이완구,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재판‘비박’ 유승민, 취임 150일여만에 사퇴…총선 공천 못받아
무소속 출마‘마지막 주자’ 원유철, 총선 참패 멍에
새누리당의 20대 국회 첫 원내대표를 뽑는 경선이 이틀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지난 19대 국회 원내사령탑들의 ‘수난사’가 새삼 이목을 끌고 있다.
19대 국회 전반기 2년을 이끈 이한구·최경환 전 원내대표가 크고 작은 굴곡에도 별 탈 없이 임기를 마친 데 비해 후반기 2년의 원내대표들은 롤러코스터와도 같은 재임기를 보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4년 5월 합의추대를 통해 최 전 원내대표의 후임으로 선출된 이완구 전 원내대표는 여권의 대표적 충청권 정치인으로, 임기 중에 여야가 첨예하게 맞섰던 세월호특별법 등의 굵직한 현안을 처리해내는 특유의 협상력이 주목을 받았다.
이듬해인 2015년 2월 새 국무총리로 영전할 때까지만 해도 이 전 원내대표는 차기 대권 주자로 거론될 정도로 그야말로 승승장구했지만, 취임 직후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 파문’에 휩싸이면서 ‘최단명 총리’의 불명예를 안고 물러나게 됐다.
이후 재판과정에서 혈액암이 재발한 것으로 알려진 이 전 원내대표는 1심에서 정치자금법 위반 등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으며, 현재 2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20대 총선에는 불출마했다.
그 후임자인 유승민 전 원내대표 또한 한 편의 드라마와도 같은 재임기를 겪었다. ‘원조 친박(친박근혜)’에서 ‘탈박(탈박근혜)’을 거쳐 ‘비박(비박근혜)’으로 변모한 유 전 원내대표와 박 대통령 간의 관계회복 가능성에 관심이 쏠렸지만 반전은 없었다.
2015년 2월 친박계와 비박계 간 대결 구도로 치러진 원내대표 경선에서 예상 밖의 대승을 거두며 화려하게 등판한 유 전 원내대표는 야당을 상대로 박근혜정부 최대 숙원 과제 중 하나였던 공무원연금 개혁 협상을 이끌어내는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협상 과정에서 청와대가 반대했던 국회법 개정안을 공무원연금 개혁안과 함께 통과시킨 것이 발목을 잡았다.
박 대통령은 결국 국회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데 이어 국무회의 석상에서 유 전 원내대표를 겨냥, “배신의 정치”를 운운하며 비난을 쏟아냈고, 유 전 원내대표는 그로부터 정확히 13일만이자 취임 156일만인 그해 여름 원내대표직에서 내려와야 했다.
유 전 원내대표는 급기야 올해 4·13 총선 과정에서도 새누리당의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해 당선됐으며, 그의 복당 문제는 여전히 당내 계파갈등의 불씨가 되고 있다.
유 전 원내대표의 중도하차로 공석이 된 원내대표직은 그의 정책위의장 파트너였던 원유철 원내대표에게 돌아갔다. 그는 유 전 원내대표의 사퇴 직후인 지난해 7월 경선에서 합의추대 됐다.
두 전임자에 비해 원 원내대표는 큰 무리 없이 임기를 마치게 됐지만, 임기 말 예상치 못했던 새누리당의 4·13 총선 참패로 인해 한참 상승세이던 정치적 입지가 좁아지게 됐다.
지도부의 일원으로서 총선 패배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는데다가, 최고위 전원 사퇴 후 비상대책위원장 인선 과정에서 불거진 당내 계파 간 잡음의 한가운데로 내몰리면서 온유한 이미지에 생채기가 났다는 평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