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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살균제사건 5년…대규모 제조물 피해 최초·최대수사 주목

가습기살균제사건 5년…대규모 제조물 피해 최초·최대수사 주목

입력 2016-04-24 10:53
업데이트 2016-04-24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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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자 228명 포함해 피해자 1천여명 추산…검찰 특별수사팀 가동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을 수사하는 검찰이 이번주부터 관계자 소환조사에 본격적으로 나서면서 분수령을 맞았다. 자료 조사 위주에서 벗어나 조만간 첫 사법처리 대상자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

2011년 5월 첫 사망자가 나온 지 5년 가까이 흐른 가운데 검찰 수사가 속도를 내면서 얼마나 진상 규명이 이뤄질지, 어느 선까지 형사처벌을 받게 될지 관심이 모아진다.

◇ 원인 모를 폐질환 속출…사람 잡은 ‘공포의 물질’

2011년 4월 말 서울 시내 한 병원 중환자실에는 급성 호흡부전 임산부 환자가 잇따라 입원했다.

이 중 4월12일 입원했던 30대 여성 환자가 한달쯤 뒤인 5월10일 숨졌다. 원인 불명 폐손상으로 인한 첫 사망자다. 5월26일, 6월14일에도 사망자가 나왔다. 가족 내 집단 발병 사례도 발견됐다.

보건당국의 역학조사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8월31일 질병관리본부는 가습기 살균제나 세정제가 위험요인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후 동물 흡입 독성실험과 전문가 검토 결과 폐손상의 원인이 살균제로 드러났다. 건강을 위해 첨가한 물질이 오히려 치명상을 입힌 독성물질로 판명돼 큰 충격을 가져왔다.

강제수거 명령이 내려지고, 모든 종류의 가습기 살균제가 의약외품으로 지정·관리되기 시작했다.

일부 유족은 2012년 8월 피해대책 시민위원회, 환경보건시민센터와 함께 제조업체를 과실치사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옥시레킷벤키저(옥시), 롯데마트, 홈플러스, 이마트, 코스트코코리아, 애경산업, SK케미칼 등 17개 업체가 고발됐다. 검찰은 사건을 경찰에 내려보내 수사를 지휘했다.

그해 11월 보건당국은 폐손상 조사위원회를 꾸려 원인미상 폐질환 신고 사례 300여 건을 대상으로 살균제와 상관관계를 조사했다.

조사결과, 공식 신고 361건 중 살균제 피해가 확실한 사례는 127건, 가능성이 큰 사례는 41건으로 파악됐다. 환자 사망사건 104건 중 절반이 넘는 57건은 살균제가 원인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 검찰 특별수사팀 출범이 변곡점…다국적기업 민낯 드러나

위원회 조사가 진행될 때 검찰은 기소를 중지했다가 2014년 8월 수사 재개를 지시했다.

경찰은 지난해 9월 옥시,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 제조·판매업체 8곳의 업무상 과실치상·치사 혐의를 인정해 기소 의견으로 넘겼다.

사건은 국민건강·의료 전담인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가 맡았다. 검찰은 작년 10월 옥시 본사와 연구소, 롯데마트 등을 압수수색했다.

올해 1월 검찰 인사 이후 이영렬 중앙지검장이 특별수사팀을 꾸린 것은 ‘신의 한 수’로 꼽힌다. 중앙지검은 형사2부 기존 사건 대부분을 타 부서에 재배당하는 등 강력한 진상 규명 의지를 드러냈다.

수사팀은 2월에도 옥시,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 제조·유통사를 추가 압수수색했다. 이후 제품의 유해성, 사망 사건과의 인과관계 조사에 주력했다.

그 결과 ▲ 옥시싹싹 뉴가습기당번(옥시) ▲ 와이즐렉 가습기 살균제(롯데마트 PB) ▲ 홈플러스 가습기청정제(홈플러스 PB) ▲ 세퓨 가습기 살균제(버터플라이이펙트) 등 4개 제품이 폐 손상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네 제품은 모두 PHMG 인산염 또는 PGH 성분을 함유했다. 이 성분은 다른 살균제에 비해 피부 및 경구(섭취)에 대한 독성은 비교적 적지만 코나 입으로 흡입했을 때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명확한 연구 결과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장 많이 피해를 낸 기업으로 지목된 옥시에 수사력이 집중되면서 책임을 회피하려던 다국적기업의 ‘민낯’이 드러났다.

유해성을 감추려고 각종 관련 실험 내용을 은폐했다는 의혹이 대표적이다.

보건당국의 역학조사를 반박하려 서울대, 호서대에는 용역비를 주고 ‘짬짜미 실험’을 해 유리한 결과를 검찰에 제출했다. 흡입독성 동물실험 용역을 준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KCL)이 불리한 보고서를 내놓자 수령을 거부한 정황도 있다.

소비자가 가슴 통증을 호소하며 홈페이지에 올린 부작용 관련 글을 검찰 수사 전에 삭제하고, 법인이 안을 책임을 피하려 주식회사에서 유한회사로 조직을 변경해 설립 등기를 한 의혹도 제기됐다.

소환조사도 본격화됐다. 19일에 인사담당 상무가, 21일에 민원담당 직원이 불려나왔다. 검찰은 25일 마케팅 직원을 불러 허위표시 광고 관련 내용을 조사하고, 신현우 전 대표 등 전·현직 임원진도 부를 예정이다.

◇ 피해자들 한맺힌 문제 제기…민사소송도 진행

환경보건시민센터가 파악한 피해자 수는 사망자 228명을 포함해 1천528명에 달한다.

센터는 “정부가 가습기 살균제와의 관련성에 따라 1∼4등급으로 피해자를 분류한 것은 지나치게 엄격하다”고 비판하면서 정부가 피해 구제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1∼2차 조사 때 ‘관련성 확실(1등급)’과 ‘관련성 높음(2등급)’ 판정을 받은 피해자 221명만 보상하기로 했다. 검찰 수사도 일단 1∼2등급 피해자만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752명이 신청한 3차 조사 결과는 내년 말에나 나온다.

피해자들은 국회와 옥시 본사 앞 등에서 사과 촉구 집회를 열고 판매·제조사들을 고소하는 등 꾸준히 문제를 제기했다.

2012년 1월 피해자 유가족 6명은 2012년 1월 살균제 제조업체들과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유가족들과 업체 사이에 작년 8월 조정이 성립돼 업체들은 빠지고 피고로 국가만 남았다. 1심은 지난해 1월 국가의 주의의무가 부족하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며 원고 패소로 판결했고,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다른 피해자들도 제조·유통업체를 상대로 소송을 내 서울중앙지법에 6건의 1심 소송이 계류돼 있다.

피해자들은 24일 모임 총회를 열어 판매사 및 제조사, 정부 등에 대한 집단 손해배상 소송인단을 모을 계획이다.

업계에서는 옥시를 상대로 약 80여 건의 개별 소송이 제기됐으며 이 가운데 70건 정도는 합의가 이뤄진 것으로 본다. 이번 소송은 개별 소송을 진행하지 않은 피해자 전체를 대상으로 한다.

센터는 “정부에서 관련성 ‘낮음(3등급)’이나 ‘없음(4등급)’ 판정을 받은 피해자는 업체 쪽이 책임을 인정하지 않을 테니 개별 보상보다 피해자 전체를 위한 대책 마련과 기금 조성이 초점”이라고 설명했다.

◇ “대규모 제조물 피해, 최대·최초 수사”…사법처리 수위 관심

검찰이 강도높은 수사에 나서자 수년 간 ‘모르쇠’로 일관하던 업체들의 태도에 변화가 생긴 것은 일단 성과로 꼽힌다.

롯데마트를 시작으로 홈플러스·옥시 등이 사과와 보상 제안에 나섰다. 그러나 피해자들은 “진정성이 없다”며 “검찰 수사를 의식한 보여주기식 사과는 받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향후 검찰이 다수의 제조·판매업체 가운데 몇개 업체에 책임을 물을지, 각 업체의 어느 선까지 관계자 처벌이 이뤄질지 등이 관심이다.

영국 본사가 제조·판매 과정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도 밝혀야 할 부분이다. 검찰은 본사가 옥시 한국법인의 제품 출시 보고를 받고 이를 승인했으며, 문제가 불거지자 해당 내용을 보고받았다고 보고 있다.

영국 본사에 대한 수사가 쉽지는 않다. 다만, 검찰이 관련자 조사 결과를 토대로 영국과 형사사법 공조를 통해 본사 수사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현재까지 조사 결과로는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가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환경단체와 학자들은 “옥시는 살균제 원료인 PHMG(폴리헥사메틸렌구아디닌)가 흡입시 독성이 있다는 점을 알고 있었으나 이를 무시하고 계속 판매를 했다”며 살인죄 적용을 주장했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검찰 역사상 특정 제조물의 결함으로 인한 대규모 인명 피해를 수사하는 것은 사실상 이번 사례가 처음이고 규모도 최대일 것”이라며 “피해자들의 피해 회복과 진상 규명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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