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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구조조정하려다 은행 불안해지는 건 아닌가

기업 구조조정하려다 은행 불안해지는 건 아닌가

입력 2016-04-24 10:37
업데이트 2016-04-24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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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노출 대부분 국책은행에 집중…시중은행까지 번지진 않을 것

정부와 정치권이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하기로 모처럼 한목소리를 내고 있어 취약업종으로 분류되는 조선과 해운 업종에 대한 구조조정이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수십조 원대에 이르는 조선·해운분야의 실질 위험노출액(익스포저)이 실제 손해로 책정될 가능성이 커져 은행권에 기업 구조조정 발 위기가 닥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다만 조선이나 해운 같은 구조조정 업종의 경우 대부분 주채권은행이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들이 담당하고 있어, 시중은행까지 위기가 번질 가능성은 현재로써는 크지 않은 상태다.

◇ 불안한 조선·해운…은행권 괜찮은가.

조선, 건설, 해운, 철강 등 경기민감업종에 대한 은행 대출 중 위험에 노출된 익스포저는 대부분 특수은행에 집중돼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금융권의 익스포저는 약 21.7조원에 달한다.

이 가운데 약 84.3%인 18조3천억원이 특수은행의 몫이다.

은행별로 보면 수출입은행이 12조5천억원으로 가장 많고, 산업은행과 농협이 각각 4조1천억원, 1조6천억원 순이다.

이밖에도 KEB하나은행(1조95억원), 국민은행(8천967억원), 우리은행(5천469억원), 신한은행(4천87억원)도 위험에 노출돼 있다.

환매조건부채권과 미확정지급보증, 외상매출채권담보대출뿐 아니라 산업은행이 작년 10월 4조2천억원의 유동성 자금을 공급하기로 한 내용이 빠진 통계여서 실질적인 익스포저는 훨씬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 양사에 대한 익스포저는 1조7천700억원이다. 이 가운데 77.6%(한진해운)와 68.4%(현대상선)가 특수은행 부담이다.

대부분 특수은행의 익스포저가 크지만 아직 파악되지 않은 시중은행들의 부실 위험도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주요은행들은 한진해운, 현대상선, 대우조선해양 등 위기나 불황에 시달리는 대기업들에 대한 신용위험도를 B등급으로 평가하고 있는 걸로 알려졌다.

신용위험도는 A∼D의 네 개 등급으로 나뉘고, 이 가운데 C∼D등급이 워크아웃(기업재무구조개선)이나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 대상으로 분류된다.

금융감독원이 작년 발표한 ‘2015년도 대기업 수시 신용위험평가 결과’에 따르면 모두 54개 대기업이 구조조정 대상인 C∼D등급에 포함됐다.

현재 거론되고 있는 구조조정 기업들을 채권은행들이 대부분 ‘정상’으로 분류해 놓고 있다는 얘기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은행 입장에서 C등급으로 이들 그룹을 평가하면 엄청난 충당금을 쌓아야 한다”며 “국책은행이 주채권은행인 경우에는 부실이 심해도 대부분 B등급 정도로 분류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대기업 업황이 악화하면서 전체 연체율이 상승하는 등 은행 건전성도 위협을 받고 있다.

은행권에 따르면 기업대출 연체율은 KB국민·신한·우리·하나·농협 등 5대 대형은행 대부분에서 금융위기 후 최대 폭으로 올라 전체 수익에 악영향을 미쳤다.

농협은행의 작년 대기업 연체율은 2014년 대비 1.06%, 신한은행은 0.55%포인트 높아져 금융위기 후 최대 폭으로 증가했다.

2013년보다 0.83%포인트 급락하며 2014년 0.76%까지 떨어졌던 우리은행의 대기업 연체율도 1년 만에 0.28%포인트 반등, 다시 1%대로 올라섰다.

대기업을 포함한 KEB하나은행의 기업대출 연체율도 전년보다 0.27%포인트 높아졌다.

이 증가 폭은 2008년 이후 최대다. 기업부실 여신으로 5대 은행의 대손충당금 전입액은 눈에 띄게 늘었다.

2014년 3조4천553억원에서 지난해 3조6천688억원으로 6.18% 증가했다.

경남기업과 포스코플랜텍 등에 대한 부실 여신으로 신한은행의 전입액은 전년 대비 29.7% 늘었다.

STX조선에 발목을 잡힌 농협은행은 무려 214.3% 폭증했다.

◇ 우량 기업…대출 받기 어려워지나

그동안 실적 향상을 위해 방만하게 대출에 나섰던 은행들이 지난해 ‘충당금 폭탄’을 맞으면서 대기업 여신을 깐깐하게 들여다보고 있다.

시중은행들은 기업 상황이 좋지 않은 대기업을 대상으로 매년 중점관리그룹을 선정, 만기 된 여신의 경우 상환요청을 지속적으로 해 나가면서 여신을 줄여가고 있다.

특히 신용등급이 좋지 않은 데다가 담보 없이 주로 신용으로 대출을 받은 기업들을 대상으로는 계속해서 채무 독촉을 진행하는 상황이다.

금융당국도 기업 구조조정 등의 여파로 은행 건전성이 악화하고 있다며 은행들이 부실채권을 신속히 정리해야 한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은행권 부실채권비율은 금융위기 직후인 2010년 1.9%에서 2012년 1.33%로 떨어졌다가 2014년 1.55%, 2015년 1.80%로 다시 상승했다.

대손충당금 적립률(총대손충당금 잔액/고정이하여신)은 2010년 108.5%에서 2012년 159.0%로 올랐다가 2014년 124.0%, 2015년 112.0%로 다시 하향 추세를 보인다.

당국의 압박과 은행들의 ‘충당금 공포’ 속에서 비교적 건전한 대기업들도 대출을 받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KEB하나은행은 작년 9월 통합 이후 대기업 여신을 꾸준히 줄이고 있다. 한 번 터지면 엄청난 충당금을 쌓아야 하는 대기업 여신 비중을 줄여야 은행의 건전성이 강화된다는 내부적 판단이 작용했다.

KEB하나은행은 올해 1분기 대기업 대출이 작년 말보다 6.2%(1조4천140억원) 줄었다.

성동조선과 SPP조선에 거액의 익스포저를 보유한 우리은행도 대기업 비중을 줄이고 있다. 지난 2014년 말 전체 여신에서 대기업 비중은 21.1%에서 올해 3월 말 20.5%로 줄었다.

KB국민은행, 신한은행 등 다른 주요 대형 시중은행들도 대기업 여신을 줄이는 추세다.

돈 빌릴 데가 마땅치 않아진 대기업들은 속앓이를 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기업들의 회사채 발행 여건도 악화되고 있다.

국내 회사채 시장은 지난해 하반기 들어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 특히 AA등급을 중심으로 한 우량등급 회사채 시장이 크게 경색됐다.

AA등급 이상 회사채 시장은 작년 상반기까지만 해도 호황을 유지했으나 그해 7월 대우조선해양 사태 이후 발행이 급격히 줄었다.

등급이 하향된 업종 범위도 건설·조선 등 일부 업종에서 정유·화학 및 내수 업종 등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작년 신용평가사들이 무보증 회사채 신용등급을 내린 기업은 159곳으로 집계됐다.

신용등급 강등 업체 수는 2010년 34개사 이후 꾸준히 증가해 2014년 133곳까지 늘어나고 작년엔 160곳에 육박하게 됐다. 이는 1998년의 171개사 이후 가장 많은 것이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의 박기홍 기업금융팀장은 “앞으로 구조조정 강화를 골자로 한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이나 기업 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을 통해 시중은행들이 기업들에 대한 모니터링을 더욱 강화할 것”이라며 “이 과정에서 시장에 충격이 있을 수 있는 만큼 구조조정에 대한 옥석가리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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