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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부른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아버지의 애끓는 호소

죽음 부른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아버지의 애끓는 호소

김희리 기자
김희리 기자
입력 2016-04-21 23:26
업데이트 2016-04-22 0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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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폐업할 정도로 제재… 우리는 보상금 몇푼이라니”

“우리 딸 증상이 감기랑 비슷했어요. 감기는 일주일 정도 지나면 낫잖아요. 그런데 이건 전혀 차도가 없는 거예요. 당연하지. 호흡기로 계속 화학물질이 들어오니까. 부모들은 미치죠. 입술 허예져서 맥풀린 아이 들쳐 업고 이 병원, 저 병원 미친 듯이 왔다 갔다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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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모임’ 강찬호 대표가 21일 경기 광명시의 한 카페에서 가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 도중 눈을 감은 채 비통한 표정을 짓고 있다.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모임’ 강찬호 대표가 21일 경기 광명시의 한 카페에서 가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 도중 눈을 감은 채 비통한 표정을 짓고 있다.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모임’ 대표를 맡고 있는 강찬호(46)씨의 목소리가 차츰 떨리더니 결국 말이 끊기고 말았다. 21일 오후 경기 광명시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나고 있는데 마침 옥시레킷벤키저에서 50억원의 피해 지원금을 추가로 내놓겠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의 눈에 다시 힘이 들어갔다. “몇 년 동안 우리들의 피 토하는 목소리를 무시하던 옥시가 이제 와서 100억원을 기탁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게 더 큰 상처를 주는 것입니다.”

다섯 살이던 강씨의 딸은 2011년 6월 15일 서울대병원에서 ‘원인 미상의 간질성 폐질환’ 진단을 받았다. 그나마 간호사였던 아이 엄마가 호흡곤란이 오기 전에 병원을 찾아가 가까스로 생명은 건질 수 있었다. 아이는 항암 치료, 고농도 스테로이드 치료 등을 받았고 지금도 만성적인 호흡기질환에 시달린다.

“덴마크의 세퓨사 제품이었어요. 옥시레킷벤키저에서 사용한 폴리헥사메틸렌구아디닌(PHMG)과 같이 강력한 독성물질로 알려진 염화에톡시에틸구아디닌(PGH) 성분이 들었지요. 덴마크 정부가 해당 원자재 업체가 폐업할 정도로 강력한 제재를 내렸어요. 그래서 보상받을 길은 막막하지만 다른 피해자는 더 없을 테니 다행인 거죠.”

●24일 집단 민사 손배소 논의

강씨는 지난해 5월 피해자 4명과 영국 레킷벤키저 본사에 방문했는데 덴마크와 너무 달랐다고 했다. “법적 책임은 레킷벤키저의 한국 법인인 옥시레킷벤키저에 있다는 말만 되풀이했어요. 무책임했죠. 지금까지 피해자들은 개인적으로 합의를 하거나 소송을 했는데, 오는 24일 피해자 총회를 열어 영국의 옥시 본사 등 국내외 관련 업체들에 대해 집단 민사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는 방안을 추진할 겁니다.” 그는 피해자들을 대했던 옥시의 태도가 이번 검찰 수사로 바뀌고 있는 것이 사태 해결에 전환점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현재 정부가 1, 2차 접수를 통해 파악하고 있는 피해자 수는 200여명이다. 지난해 말까지 3차 접수를 했는데 예상 외로 752명(사망자 79명)이 신고를 해 왔다. 환경부는 신고자가 많아지자 3차 신고자의 피해 정도를 3년에 걸쳐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진실 규명 않는 ‘안방의 세월호’

이에 피해자 가족모임은 한시가 급한 상황에서 환경부가 안이하게 대응한다며 이달 초 감사원에 감사 청구를 했다. 시민단체인 환경보건시민센터가 파악한 피해자는 환경부 접수분의 2배가 넘는 1528명(사망자 228명)이다. 3차 접수가 끝난 올 들어서도 246명(14명 사망)이 추가로 피해자 신고를 했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는 이윤에 눈이 먼 기업의 비도덕성으로 만들어졌지만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속시원히 진상도 규명하지 못하고 있는 ‘안방의 세월호 참사’라고 생각합니다.”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2016-04-22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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