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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이야기 16] 실학자가 묘사한 파이프오르간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이야기 16] 실학자가 묘사한 파이프오르간

입력 2015-09-11 10:32
업데이트 2023-02-27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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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헌 홍대용 초상. 베이징에서 담헌과 친교를 쌓은 중국 문인화가 엄성(嚴誠)이 그렸다.
담헌 홍대용 초상. 베이징에서 담헌과 친교를 쌓은 중국 문인화가 엄성(嚴誠)이 그렸다.
조선 후기 대표적인 실학자의 한 사람인 담헌 홍대용(1731~1783)은 문학과 철학은 물론 자연과학에도 깊은 관심을 가졌던 인물이다. 당시 서양 문명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진보적 지식인 사회에서는 일종의 시대정신이기도 했다. 담헌은 음악에도 조예가 깊었는데, 특히 서양음악의 한국 전래 역사에서 그의 존재는 매우 특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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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병연행록
을병연행록


거문고의 명인이었다는 담헌은 북경의 남천주교당에서 파이프오르간과 마주친다. 그는 이 새로운 악기와 만난 경험을 ‘을병연행록’(乙丙燕行錄)에 꼼꼼하게 적어 놓았다. 1765년(을유년)과 1766년(병술년)까지 숙부 홍억의 자제군관으로 청나라를 여행하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어머니를 위해 한글로 쓴 기행문이다.

담헌이 오늘날에는 선무문천주당이라고도 불리는 남천주교당을 찾은 것은 1766년 1월 9일이다. 독일계 선교사 유송령(劉松齡·Augustinus von Halberstein)과 포우관(鮑友官·Antonius Gogeisl)이 일행을 영접했다. 담헌은 성당 곳곳을 둘러보다가 파이프오르간이 있는 곳에 당도한다. 파이프오르간을 처음 만난 순간이다.

‘남쪽으로 벽을 의지하여 높은 누각을 만들고 난간 안으로 기이한 악기를 벌였으니, 서양국 사람이 만든 것으로 천주에게 제사할 때 연주하는 풍류였다. 올라가 보기를 청하자 유송령이 매우 지탄(指彈)하다가 여러 차례 청한 뒤에야 열쇠를 가져오라고 하여 문을 열었다.’

북경 남천주교당. 1904년 다시 지은 것이라고 한다.
북경 남천주교당. 1904년 다시 지은 것이라고 한다.
‘풍류’란 곧 파이프오르간이다. 분위기를 짐작해보면 유송령은 파이프오르간을 자세히 보여주는 것이 그리 탐탁치는 않았던 듯 하다. 홍대용은 그런 유송령을 귀찮을 정도로 졸랐던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유송령은 연주를 듣기를 청하는 담헌에게 연주자가 병이 들었다며 거절하기도 했다. 그래도 연주대로 일행을 인도해 소리를 들려주었다.

‘틀 밖으로 조그만 말뚝 같은 두어 치의 네모진 나무가 줄줄이 구멍에 꽃혔거늘, 유송령이 그 말뚝을 눌렀다. 위층의 동쪽 첫 말뚝을 누르니, 홀연히 한결같은 저소리가 다락 위에 가득하였다. 웅장한 가운데 극히 정제되고 부드러우며 심원한 가운데 극히 맑은 소리가 나니….’

‘조그만 말뚝 같은 두어 치의 네모진 나무’란 곧 건반을 말한다. 파이프오르간은 보통 2단의 손건반과 발건반(페달)을 갖추고 있는데, 유송령은 처음 낮은 음의 건반을 짚었던 듯 하다.

‘말뚝을 누르니 그 소리가 손을 따라 그치고 그 다음 말뚝을 누르니 처음 소리에 비하면 적이 작고 높았다. 차차 눌러 아래층 서쪽에 이르자 극진히 가늘고 높았다.…대개 생황 제도를 근본으로 하여 천하에 다양한 음률을 갖추었으니, 이는 고금에 희한한 제작이다’

많은 금속제 관으로 이루어진 파이프오르간을 보면서 생황을 떠올린 것이다. 여러 개의 대나무관으로 이루어진 생황은 입으로 부는 악기로,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 이후 중요하게 쓰여졌다. 서양의 팬파이프(panpipe)나 팬플루트(panflute)와 같은 원리라고 할 수 있다. 입으로 부는 오르간((mouth organ)이라고도 부르니 오르간과 생황을 연결시킨 것은 지극히 합리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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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천안에 있는 담헌의 묘소
충남 천안에 있는 담헌의 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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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 담헌 묘소의 묘비
천안 담헌 묘소의 묘비


담헌도 건반을 눌렀다. 그는 ‘그 말뚝을 두어 번 오르내린 뒤 우리나라 풍류 잡는 법을 따라 짚으니 거의 곡조를 이룰 듯하여 유송령이 듣고 희미하게 웃었다.’고 했다. 처음 접한 파이프오르간으로 우리 곡조를 만들어보려 했던 것이다. 건반의 원리를 깨닫고 나서는 제법 멜로디를 인식할 수 있는 수준으로 짚어낼 수 있었던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이날 남천주교당 방문에는 역관 홍명복과 관상감의 이덕성 등도 동행했다. 파이프오르간을 접한 조선 사람이 담헌 한 사람은 아니라는 뜻이다. 실제로 담헌은 ‘여럿이 다투어 짚어 반나절이나 지난 후’라고 했으니 이 악기에 대한 관심은 동행인들도 매우 컸음을 알 수 있다.

남천주교당은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의 족적이 깊은 곳이다. 병자호란 이후 북경에 볼모로 잡혀있던 소현세자는 남천주교당으로 마테오 리치를 자주 방문하기도 했다. 아마도 소현세자 역시 파이프오르간을 보았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 그럼에도 조선 사람으로 파이프오르간을 처음 접한 공로는 담헌이 독차지하고 있으니 기록을 남기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

새로운 서양 과학문명을 탐구하는 담헌의 자세는 매우 진지하다. 그는 파이프오르간을 구성하는 요소를 꼼꼼하게 살펴본 뒤 이 악기가 소리를 내는 원리를 다음과 같이 설파했다.

‘이 악기 제도는 바람을 빌려 소리를 나게 하는데, 바람을 빌리는 법은 풀무와 한가지다.…바깥 바람을 틀 안에 가득히 넣은 뒤 자루를 놓아 바람을 밀면 들어오던 구멍이 절로 막히고 통 밑을 향하여 맹렬히 밀어댄다. 통 밑에 비록 각각 구멍이 있으나 또한 조그만 더데를 만들어 단단히 막은 까닭에 말뚝을 누르면 틀 안에 고동을 당겨 구멍이 열린 뒤 바람이 통하여 소리를 이룬다. 소리의 청탁고저는 각각 통의 대소장단을 따라 음률을 다르게 하는 것이다.’  

유송령도 담헌의 설명을 듣고는 ‘옳은 말씀’이라고 공감을 표시했다고 한다.

홍대용의 파이프오르간 조우기(記)는 그저 신기하고 새로운 악기에 대한 유람객의 시선에 머물지 않는다. 악기의 원리에 대한 자연과학적 의문까지 모두 풀어낼 만큼 철저하다. 오늘날에도 파이프오르간의 원리를 이보다 더 정확하게 설명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서동철 수석논설위원 dcsu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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