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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톡톡 다시 읽기] (53) 루쉰 ‘광인일기’

[고전 톡톡 다시 읽기] (53) 루쉰 ‘광인일기’

입력 2011-01-31 00:00
업데이트 2011-01-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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狂人이여, 참된 인간이 되고 싶은가? ‘식인의 잔혹사’와 단절하라

제1차 세계대전(1914~18)이 막바지에 달했을 무렵, 루쉰(迅)이란 필명으로 쓰인 소설이 잡지 ‘신청년’에 발표된다. 이 작품이 중국 최초의 근대소설 ‘광인일기’다.

소설이 발표된 시기는 민주주의와 인도주의 등의 새로운 사상이 전 세계를 휩쓴 후, 신해혁명(1911)으로 청나라가 망하고 ‘중화민국’이 된 지 7년이 되던 해였다. 정치체제도 바뀌고 전쟁도 끝나가는데, 루쉰이 보기에 중국인들의 생활방식이나 태도는 예전과 다를 바 없었다. 혁명은 일어났지만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것이다. 그는 이런 현실에 절망했고, 그 후 침묵한다. ‘광인일기’는 7년이란 긴 침묵의 시간을 깨고 나온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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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
루쉰
●광인의 공포-‘나는 잡아먹힐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주인공은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이 낯설게 느껴진다.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는데 그는 사람들이 자신을 잡아먹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시달린다. 자신을 제외한 다른 모든 사람들이 식인종이라는 걸 느끼는 순간, “나 역시 인간이다. 놈들은 나를 먹고 싶어진 것이다.”라고 생각하게 된 것.

이제 이 공포심은 구체적 징후들을 통해 극대화되어간다. 길거리에서 한 여인이 자기 자식을 때리면서 “물어뜯어 버리기 전에는 직성이 풀리지 않는다.”라고 하는 말이나, 시체를 먹으면 담보가 커진다는 속설을 믿은 마을 사람들이 사람을 죽여 그 자의 내장을 기름에 튀겨 먹었다는 이야기나,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빛 등에서 말이다. 심지어 조가(趙家)네 개에게서조차 살기를 느낀다.

그는 식인이 자행되는 세계 속에 놓인 자신을 발견한다. 주변 사람 모두가 그의 적이다. 동시에 그 모두에게 이제 그는 광인이다. 그는 다음 번 식인의 희생자가 자신일 거라고 확신한다. “나를 무서워하는 것 같기도 하고 나를 없애려고 하는 것 같기도 하였다./…/나는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소름이 오싹하였다. 놈들이 완전 채비를 갖추었구나, 생각하였다.”

자기가 느끼는 공포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그는 역사책을 뒤진다. 역사에서 그가 발견한 것은 ‘인의도덕’이란 좋은 말과 그 사이에 쓰인 ‘식인’이란 두 글자다! 그는 전통이란 이름으로 4000년 간 지속되어온 식인의 역사가 자신을 꼼짝 없이 제물로 만들 것이라는 위협을 느낀다. 형도, 광증을 치료해준다는 의원도 사실은 자신의 죽음을 기다리는 식인이었다고 하는 공포 속에서 ‘광인’은 하이에나 같은 이들에 둘러싸여 먹지도 자지도 못한다. 가족과 세계, 역사가 모두 광인의 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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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인의 자각-‘4000년 식인 역사를 가진 나!’

늙은이는 방을 나간 지 얼마 안 되어 작은 소리로 형에게 속삭였다. “어서어서 먹어버리는 겁니다.” 형은 끄덕였다. 그렇던가, 형까지도 그렇던가, 라고 나는 생각했다. 이 대발견은 뜻밖인 것 같았으나 실은 뜻밖이 아니었다. 한패가 되어 나를 먹으려 하는 인간이 나의 형인 것이다.

-인간을 먹는 것이 나의 형이다.

-나는 인간을 먹는 인간의 동생이다.

나 자신이 먹혀버린다 해도 여전히 나는 인간을 먹는 인간의 동생이다.

광인은 형이 자신을 먹으려는 식인들과 한패라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리고 이 ‘대발견’은 자기 존재에 대한 자각과 연결된다. 그렇다, 나도 식인종의 동생이다! 동생을 잡아먹은 형, 이에 동조한 어머니, 그리고 나. 혈연으로 엮인 관계 속에서 자신도 식인사회의 동조자였다는 걸 깨닫는 순간 그의 인식은 전환된다. 나 역시 식인사회와 동떨어져 존재하는 인간이 아니고 그 사회의 일부일 뿐이라는 철저한 자각과 함께 비로소 그는 광증에서 벗어난다.

나는 피해망상에서 벗어나 이 시대를 어떻게 극복해 나갈지 고민하기 시작한다.

“나는 인간을 먹는 인간을 저주함에 있어, 먼저 형부터 저주하리라. 인간을 먹는 인간을 개심(改心)시키는 데 있어 먼저 형부터 개심시키리라.”

그는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부터 개심시키고자 한다. 그는 ‘참된 인간’이 되기 위해, 야만의 역사를 벗어나야 한다고 형을 설득한다. 고대의 요리사 역아(易牙)가 자신의 아들을 삶아서 폭군 걸주(桀紂)에게 먹인 이야기는 과거의 전설이 아니라 현재 일어나고 있다. 처형된 혁명가의 피에 만두를 찍어먹는 자들을 보라.

루쉰은 부모의 병을 낫게 하기 위해 자신의 넓적다리 살을 베어낸 자를 효자라고, 물에 빠진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강물에 몸을 던지는 딸을 효녀라고 칭송하는 중국의 전통에서 시대의 절망을 느꼈다. 인의도덕과 같은 덕목은 왜 언제나 가해행위로 증명되어야 하는가. 4000년 동안의 중국역사를 관통하는 것은 ‘식인’의 폭력성과 잔인함이다. 거기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예전부터 내려온 방식을 그대로 반복하면서 살아갈 뿐이다. 이들에게 루쉰은 광인의 입을 빌어 이렇게 말한다. ‘참된 인간’이 되기 위해 우리는 이런 식인의 역사와 단절해야 한다고.

●출구의 발견-‘아이를 구하라’

인간을 먹은 일이 없는 아이가 아직 있는지 모르겠다.

아이를 구하라.

소설은 ‘아이를 구하라’는 광인의 절박한 외침으로 끝난다. 식인의 역사를 단절하기 위해 주인공은 아직 식인하지 않은 아이들에게 희망을 건다. 광인의 희망은 절망 끝에서 발견한 출구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누이동생의 고기를 먹었을지도 모른다는 절망감이 ‘아이를 구하라’는 절박한 외침을 낳은 것! 이제 그는 외치기 위해서라도 기어코 살아남아야 한다.

‘광인일기’는 시대의 어둠에 갇혀 있던 한 사람이 자신의 한계를 뚫고 나오게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일기는 그렇게 되기까지의 병과 자각의 흔적이다. 식인하지 않은 아이들을 위해 광인은 자기 한계를 넘어 새로운 길로 자신을 밀어 넣는다. “청년아, 나를 딛고 나아가라!” 시대의 적막을 뚫고 탄생한 ‘광인일기’는 우리들에게 던져진 한 ‘광인’의 외침이다.

어쩌면 우리야말로 잡아먹힐지도 모른다는 피해망상 속에서 살기 위해 다른 자들을 잡아먹는 식인이 아닐까? “죽어도 이 한 걸음을 넘어서려 하지 않는다.”는 광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자 누구인가.

최태람 수유+너머 남산 연구원
2011-01-31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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