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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세상] 정자산(鄭子産)의 수레/강명관 부산대 한문학 교수

[열린세상] 정자산(鄭子産)의 수레/강명관 부산대 한문학 교수

입력 2010-01-15 00:00
업데이트 2010-01-15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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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에 이따금 공자의 인물평이 나온다. 원칙에 엄격했던 분이니, 그 평가는 믿음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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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예컨대 정(鄭)나라 자산(子産)이라는 인물을 보자. 자산은 춘추시대라는 난세에 탁월한 외교적 수완으로 정나라를 보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고 알려진 인물이다.

공자도 자산이 정나라의 외교문서를 최종적으로 윤색한, 외교에 능력이 있었던 사람이라고 밝히고 있다(논어 ‘헌문’).

물론 자산은 국내 정치에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그 정치의 골자는 백성에 대한 사랑이다. 공자는 이렇게 평가한다.

“자산은 군자의 도(道) 네 가지를 갖추고 있었으니, 몸가짐이 공손하였고, 윗사람을 섬기는 것이 공경스러웠고, 백성을 기름이 은혜로웠으며, 백성을 부림이 의로웠다.”(논어 ‘공야장’) 백성을 기름이 은혜로웠고, 백성을 부림이 의로웠다는 것은 그가 당시 여느 통치자와는 달리 백성을 착취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사랑하는 대상으로 보았다는 말이다. 이런 자산을 두고, 자산의 인물됨을 묻는 어떤 사람에게 공자는 한마디로 ‘은혜로운 사람’이라고 답하고 있다.

한데 공자 사상의 계승자인 맹자는 그 ‘은혜롭다.’는 말에 꼬투리를 단다. 맹자 ‘이루장’에 실린 자산에 대한 맹자의 평가를 읽어보자.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자산이 정나라의 정치를 맡고 있을 때의 일이다. 정나라에는 진수(溱水)와 유수(洧水)라는 강이 있다. 강 너머로 가려는 사람들은 늘 옷을 걷고 맨발로 강을 건널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 자산은 그 광경을 보고 딱히 여기고는 자기가 타는 수레에 사람을 태워 강을 건네주었다. 요즘으로 치면 나라의 고위 관리가 무명의 국민에게 관용차를 한 번 태워준 셈이다.

어떻게 보면 미담일 수 있는 이 이야기에 대한 맹자의 평가는 은근히 차갑다. “은혜롭기는 하지만 정치를 제대로 할 줄 모르는 것이다.” ‘은혜로운 자산’이라는 공자 이래의 평가에 대해 맹자는 비판적이었던 것이다.

왜인가. 맹자는 정치가 개인이 백성을 수레에 태워주는 것은 정치가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맹자는 이렇게 말한다. “11월에 도강(徒?)이 완성되고, 12월에 여량(輿梁)이 이루어지면, 백성들이 강을 건너는 것을 고통으로 여기지 않는다.”

도강은 사람이 도보로 건너는 널빤지로 만든 작은 다리고, 여량은 수레가 건너다닐 수 있는 큰 규모의 다리다. 11월과 12월에 다리가 이루어지는 것은, 주나라는 이때가 되어야 농사일이 끝나서 백성들을 다리 공사에 동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다리를 놓아야만 백성들이 얼음이 언 차가운 강을 다리를 걷고 건너는 고통을 면할 수 있다. 다리를 놓는 것은 제대로 된 정치, 곧 왕정(王政)이 해야 할 일 중 하나다.

맹자는 정치가 자산이 백성 개인에게 베푸는 은혜의 이면에 놓인 문제를 예리하게 파고들었다. “그래, 그것은 은혜로운 일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백성들에게 다리를 놓아주는 것이 아닐까?” 하여, 맹자는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군자가 제대로 된 정치를 한다면, 길을 갈 때 행인을 물리치고 가도 무방하다. 어찌 사람마다 모두 강물을 건네 줄 수 있겠는가? 이 때문에 군자가 사람마다 모두 기쁘게 해 주려면 날마다 그렇게 해도 모자랄 것이다.”

대통령이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사 먹고, 기초생활수급자의 사연을 듣고 눈물을 흘렸다는 기사를 보았다. 기사를 보자, 뜬금없이 정자산의 수레가 떠올랐다. 개인의 딱한 사연을 듣고 흘리는 눈물과 돕고자 하는 마음의 진정성은 의심할 수 없다.

하지만 정치가의 임무란 그런 사연이 애당초 들리지 않도록, 그들이 생활고를 건널 다리를 놓아주는 것이다. 지금의 정치가 과연 그 다리를 놓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그렇다고 쉽게 확언할 수 없다. 만약 4대강을 파는 비용을 복지에 쏟아붓는다면 모를까. 아니 그런가.
2010-01-15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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