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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한 속 서울 노숙자 2천여명 ‘월동전쟁’

혹한 속 서울 노숙자 2천여명 ‘월동전쟁’

입력 2010-01-13 00:00
업데이트 2010-01-13 0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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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오후 5시30분께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앞에서 지하철 2호선 을지로입구역으로 이어지는 지하 공간.

지하철역 7번 출구 쪽과 연결된 원형 공간에 정모(52)씨를 포함한 노숙자 9~10명이 두꺼운 종이 상자나 고무판을 깔고 띄엄띄엄 떨어져 앉아 있었다.

남색 운동복 복장에 초췌한 모습이었고 일부는 온종일 계속되는 영하 날씨에 찬 바람을 막으려고 장갑과 귀마개, 장갑 등으로 중무장했다.

서울에서 20년 넘게 노숙생활을 한 정씨는 낮에는 주로 서울역 주변에서 지내다가 무료 급식 시간에는 을지로입구역으로 자리를 옮긴다고 했다.

같은 시간대 서울역 광장 동쪽 방면에서 남대문 방면으로 이어지는 지하도 안에서는 4명이 침낭과 이불을 덮고 잠자고 있었다.

종이 상자와 이불이 겹쳐 놓은 이부자리는 지하도 안에 모두 11개였지만 절반 이상은 사람이 없었다.

서울역 앞 남대문경찰서 방향 지하도 안에서는 한 노숙자가 계단에 쪼그리고 앉아 두 눈을 감고 있었다. 서울역 대기실에서도 잔뜩 웅크린 채 고개를 숙인 노숙자들의 모습이 쉽게 목격됐다.

10년 넘게 노숙을 했다는 황모(58)씨와 친구 2명은 조끼와 점퍼를 3겹 이상 껴입고 서울역 광장을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취기가 오른 듯 일행 중 한 명은 말투가 꼬였고 다른 한 명은 ‘춥지 않으냐’고 묻자 “추위를 이겨내기에는 막걸리가 최고다”라고 웃으며 말했다.

황씨와 일행은 취재 기자에게 “2천 원만 주면 추위를 벗어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 돈으로 막걸리나 소주를 사서 마시겠다는 얘기다.

◇ 환승역 ‘북적’…추울 땐 쪽방촌 거주 = 황씨처럼 생활하는 노숙자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서울에는 겨울에 대략 2천여 명의 노숙자가 주요 지하철 역 주변 등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봉사단체 ‘사랑의 쌀 나눔운동본부’ 이선구(59) 이사장은 “작년 5월 기준으로 서울 전역의 노숙자의 수는 3천여 명에 달한다”면서 “겨울에는 이보다 적겠지만, 최소 1천500명에서 2천명 정도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날씨가 영하 10도를 밑돌 정도로 추워지면 서울역과 영등포역, 용산역, 을지로입구역 등 환승역으로 노숙자들이 몰린다.

이들의 얘기를 모아보면 용산역과 영등포역은 역무원들이 밤에 역사 밖으로 쫓아내지 않는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하루 평균 가장 많은 편인 150여 명, 100여 명이 각각 이곳에서 잠을 청한다.

서울역과 을지로입구역도 각각 100여 명, 50~60명의 노숙자가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겨울에는 날씨가 추워지면 3~6㎡ 크기의 쪽방에 거주하는 노숙자가 늘어난다.

남대문경찰서와 용산경찰서 뒤편, 영등포역 뒤편 쪽방촌의 1인당 하루 숙박비는 7천~8천원 사이다. 한 달을 머물면 15만-20만원 정도 내야 한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도 별로 없어 구걸하거나 노숙인 일자리, 막노동 일을 하면서 숙비를 버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씨는 “잠은 서울역 대기실에서 잔다. 손님이 없는 새벽 2시부터 4시30분 사이가 숙면에 좋다. 3층에서 눈치 안 보고 바닥에서 잘 수 있다. 낮의 온기가 남아서 바닥에서 자도 따뜻한 편이다”고 했다.

그는 “옆에 롯데마트가 있어서 상자를 가지고 올 수 있다. 역에서도 이 시간에는 봐 준다. 낮에는 TV도 볼 수 있고 나머지 시간에 지내기는 서울역이 제일 좋다”고 말했다.

이선구 이사장은 “겨울에는 찬 바람을 피하려고 밀폐된 공간을 찾는다. 서울 곳곳의 지하도나 다리 밑, 지붕 등 일반인에게 잘 보이지 않는 은폐된 공간에 머무는 노숙자가 많다”고 말했다.

◇ 보호시설은 외면…동사 신고는 없어 = 서울역 주변에서 만난 다른 노숙자 임모(60)씨는 “춥고 배고프면 술 마시고 그냥 쓰러져서 잔다. 알코올 치료센터나 노숙인 사회복지시설도 다녀왔지만, 다시 나왔다”고 말했다.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과 잠자는 시간이 정해져 있고, 술과 담배는 엄격하게 규제하기 때문에 보호시설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는 게 노숙자들의 전언이다.

올겨울 한파가 계속되고 있지만, 서울역 주변에서 동사한 노숙자는 아직 공식적으로 없다.

남대문경찰서와 중구청에 따르면 최근 수년간 서울역 주변에서 지병과 합병증 때문인 변사자가 1년에 1~2차례 나오긴 했지만, 얼어 죽었다는 신고는 접수되지 않았다.

중구청 사회복지과 손석희 주임은 “노숙자들이 음주 탓에 병에 걸리거나 결핵으로 숨지는 사례는 있지만, 동사로 사망하는 사람은 최근 10년간 못 봤다”고 했다.

노숙자 정씨는 “밤에 추운 데서 자다가 잘못되는 일은 잘 없다. 아프면 119구조대원들이 잘 온다. 말동무가 없고 분위기도 좋지 않지만, 밤에 잘 때 자리싸움까지는 하지 않는다. 다 자기 자리가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노숙인 황씨는 “옷을 네 겹 입고 있고 잠자리에 들기 전 막걸리나 소주를 마시면 큰 추위를 느끼지 못한다. 또 지정된 자리에서 매일 자니까 익숙한 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남대문경찰서는 노숙자 보호 등을 목적으로 1개 중대 60~70명을 서울역 주변에 배치해 24시간 교대근무를 시키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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