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가에서는 ‘스핀(Spin)’이라는 말이 자주 쓰인다. 어떤 상황을 각자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는 것을 말한다. 아전인수(我田引水)나 견강부회(牽强附會)와 비슷한 뜻이고 침소봉대(針小棒大)의 의미로도 쓰인다.
지난 3일과 5일 뉴햄프셔주 맨체스터의 세인트 안셀름 대학에서 미 민주당과 공화당의 대선후보들이 각각 총출동해 토론을 벌일 때도 기자실 옆에 ‘스핀 룸’이 별도로 설치됐다. 민주당과 공화당의 대선후보들은 2시간의 토론회를 마친 뒤 대부분 스핀룸을 찾아 자신들이 얼마나 훌륭한 대통령감인가를 부각시키기 위해 열심히 ‘스핀’을 걸어댔다.
민주당과 공화당의 대선 후보 한사람, 한사람과 짧게나마 질문답변을 주고받으면서 인상적인 느낌을 받았다. 후보들이 한반도 문제에 대해 나름대로 관심과 정보를 갖고 있다는 점이었다.
북한을 몇차례나 방문했던 민주당의 빌 리처드슨 뉴멕시코 주지사나, 북한인권법안을 주도했던 공화당의 샘 브라운백 상원의원은 말할 필요도 없다. 민주당의 조지프 바이든 상원 외교위원장과 외교위 소속인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 국방위 소속인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도 모두 한·미동맹과 북한 핵 문제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또 민주당의 마이크 그라벨 전 상원의원이나 공화당의 토미 톰슨 전 위스콘신 주지사처럼 한국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후보들도 북핵 문제에 대해 최신 정보를 바탕으로 자기 주장을 내세웠다.
사실 민주당과 공화당 후보들간의 토론회에서는 한국이나 북한 관련 문제가 전혀 거론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함께 토론회를 취재했던 미국 기자는 “일반 국민의 관심이 상대적으로 작아 질문이 나오지 않았을 뿐이지 대선 후보들에게 한반도 문제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그 말을 들으며 나름대로 슬쩍 ‘스핀’을 걸어봤다. 미국의 대선 후보들이 한반도 문제에 관심이 있으니 한국과 관련된 현안에서 우호적인 행동을 취할 가능성이 많다고. 그러나 그런 순진한 스핀이 환상에 불과했다는 사실은 며칠이 지나지 않아 드러났다.
민주당에서 가장 유력한 대선후보인 클린턴 의원은 지난 9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미국 자동차 산업에 피해를 준다며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한·미간의 ‘경제 동맹’보다는 자동차 노조의 표가 클린턴 의원에게는 더욱 소중했던 것이다. 부각되지는 않았지만 존 에드워즈 전 상원의원은 이미 지난 4월에 반대의사를 표명했다고 한다.
지난 26일 열린 하원 외교위원회의 ‘위안부 결의안’ 처리 과정에서는 일부 대선주자들의 대 한반도 인식이 극명하게 드러났다.39대2라는 압도적인 표차로 통과된 결의안에 반대를 던진 두 의원은 공화당의 톰 탄크레도(콜로라도 주)와 론 폴(텍사스 주)이었다. 두 사람 모두 뉴햄프셔에서 만났던 공화당의 대선 후보들이다.
특히 폴 의원은 토론회에서 만났던 공화당 후보 가운데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서 가장 전향적인 입장을 밝힌 인물로 기억에 남아있다. 그는 북한이 개방돼야 하고, 이를 한국이 도와야 하며, 남북한은 결국 통일돼야 하고, 미국은 남북간의 대화와 접촉을 막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폴 의원의 그같은 관심이 호감이나 우호적인 행동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위안부 결의안 찬반토론에서 일본을 적극 두둔하는 그의 발언을 통해 명확하게 드러났다.
유명한 마케팅 용어 가운데 AIDA라는 것이 있다. 고객이 상품을 구매하는 단계, 즉 관심(Attention)-흥미(Interest)-욕구(Desire)-행동(Act)을 말한다. 이 용어에 스핀을 걸어 미 대선후보들의 대 한국 인식에 적용한다면 한·미관계는 아직도 맨앞의 A 단계를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이도운 워싱턴 특파원 dawn@seoul.co.kr
지난 3일과 5일 뉴햄프셔주 맨체스터의 세인트 안셀름 대학에서 미 민주당과 공화당의 대선후보들이 각각 총출동해 토론을 벌일 때도 기자실 옆에 ‘스핀 룸’이 별도로 설치됐다. 민주당과 공화당의 대선후보들은 2시간의 토론회를 마친 뒤 대부분 스핀룸을 찾아 자신들이 얼마나 훌륭한 대통령감인가를 부각시키기 위해 열심히 ‘스핀’을 걸어댔다.
민주당과 공화당의 대선 후보 한사람, 한사람과 짧게나마 질문답변을 주고받으면서 인상적인 느낌을 받았다. 후보들이 한반도 문제에 대해 나름대로 관심과 정보를 갖고 있다는 점이었다.
북한을 몇차례나 방문했던 민주당의 빌 리처드슨 뉴멕시코 주지사나, 북한인권법안을 주도했던 공화당의 샘 브라운백 상원의원은 말할 필요도 없다. 민주당의 조지프 바이든 상원 외교위원장과 외교위 소속인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 국방위 소속인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도 모두 한·미동맹과 북한 핵 문제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또 민주당의 마이크 그라벨 전 상원의원이나 공화당의 토미 톰슨 전 위스콘신 주지사처럼 한국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후보들도 북핵 문제에 대해 최신 정보를 바탕으로 자기 주장을 내세웠다.
사실 민주당과 공화당 후보들간의 토론회에서는 한국이나 북한 관련 문제가 전혀 거론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함께 토론회를 취재했던 미국 기자는 “일반 국민의 관심이 상대적으로 작아 질문이 나오지 않았을 뿐이지 대선 후보들에게 한반도 문제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그 말을 들으며 나름대로 슬쩍 ‘스핀’을 걸어봤다. 미국의 대선 후보들이 한반도 문제에 관심이 있으니 한국과 관련된 현안에서 우호적인 행동을 취할 가능성이 많다고. 그러나 그런 순진한 스핀이 환상에 불과했다는 사실은 며칠이 지나지 않아 드러났다.
민주당에서 가장 유력한 대선후보인 클린턴 의원은 지난 9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미국 자동차 산업에 피해를 준다며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한·미간의 ‘경제 동맹’보다는 자동차 노조의 표가 클린턴 의원에게는 더욱 소중했던 것이다. 부각되지는 않았지만 존 에드워즈 전 상원의원은 이미 지난 4월에 반대의사를 표명했다고 한다.
지난 26일 열린 하원 외교위원회의 ‘위안부 결의안’ 처리 과정에서는 일부 대선주자들의 대 한반도 인식이 극명하게 드러났다.39대2라는 압도적인 표차로 통과된 결의안에 반대를 던진 두 의원은 공화당의 톰 탄크레도(콜로라도 주)와 론 폴(텍사스 주)이었다. 두 사람 모두 뉴햄프셔에서 만났던 공화당의 대선 후보들이다.
특히 폴 의원은 토론회에서 만났던 공화당 후보 가운데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서 가장 전향적인 입장을 밝힌 인물로 기억에 남아있다. 그는 북한이 개방돼야 하고, 이를 한국이 도와야 하며, 남북한은 결국 통일돼야 하고, 미국은 남북간의 대화와 접촉을 막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폴 의원의 그같은 관심이 호감이나 우호적인 행동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위안부 결의안 찬반토론에서 일본을 적극 두둔하는 그의 발언을 통해 명확하게 드러났다.
유명한 마케팅 용어 가운데 AIDA라는 것이 있다. 고객이 상품을 구매하는 단계, 즉 관심(Attention)-흥미(Interest)-욕구(Desire)-행동(Act)을 말한다. 이 용어에 스핀을 걸어 미 대선후보들의 대 한국 인식에 적용한다면 한·미관계는 아직도 맨앞의 A 단계를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이도운 워싱턴 특파원 dawn@seoul.co.kr
2007-06-3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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