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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외계어 30대 75% “무슨 뜻이야”

10대 외계어 30대 75% “무슨 뜻이야”

이재훈 기자
입력 2006-02-22 00:00
업데이트 2006-02-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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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나전, 솔대, 엑박, 안습, 다굴…. 당신은 이 중 몇개나 뜻을 알고 있는가. 친구들 사이에 ‘인터넷 외계어의 도사’로 통하는 생기발랄 20대인데도 모르겠다고? 속상해할 것 없다. 이건 ‘10대 나라’의 언어니까. 언어의 연령대별 격차가 커지고 세분화하면서 30대는 물론,20대도 모르는 10대만의 외계어가 확산되고 있다. 그 속을 들여다봤다.

서울 잠실의 한 보습학원에서 3년째 수학을 가르치고 있는 김향숙(30·여)씨는 가끔 10대들이 쓰는 말을 이해하지 못해 아이들에게 놀림감이 된다. 최근 학원에서 장난을 치던 아이들이 한 학생을 두고 “너 자꾸 그러면 다굴해 버릴 거야.”라며 놀리는 말을 듣고선 고개가 갸우뚱해졌다.‘다굴하는 것’의 뜻을 물으니 아이들은 “에이∼선생님은 그것도 몰라요. 여러 명이 한명을 따돌리는 걸 말하는 거예요.”라고 했다. 게임용어에서 왔단다. 김씨는 “아이들만의 언어를 들으면 왠지 소외감도 느끼고 세대차이도 명확하게 인식하게 돼 서글픈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10대들만의 ‘외계어’… 세대언어 격차 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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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 이모(27)씨도 최근 인터넷을 검색하다 ‘안습하네요.’라는 희한한 문장을 봤다. 뜻을 이해하지 못해 또래 친구들에게 물어봤지만 역시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 인터넷 검색을 해봤더니 ‘안구에 습기가 차다.’는 문장의 줄임말로 10대들이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적’이라는 의미로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대학을 졸업한 지 얼마 안 돼 스스로 신세대라고 생각하고 있던 이씨에게 자기가 10대들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충격이었다. 이씨는 “10대들의 기발한 상상력에 감탄사를 쏟아낼 정도지만 사실 그들만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할 땐 ‘내가 벌써 그렇게 나이가 들었나.’싶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20대,10대들 외계어 60% 이해 못해

서울신문은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10대들이 자주 쓰는 ‘외계어’ 12개를 선정, 포털사이트 다음과 조사기관 ㈜시노베이트코리아에 의뢰해 20∼30대 750명을 설문조사했다.10대들의 언어를 얼마나 알고 쓰는지에 대한 조사였다.

그 결과 20대들은 10대들이 쓰는 외계어의 60% 정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30대 초반은 75%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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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은 12개 단어 및 문장과 뜻을 적어두고 각각 (1)전혀 모른다 (2)의미를 몰라 사용하지 않는다 (3)의미는 모르지만 대충 사용한다 (4)의미는 알지만 사용하지 않는다 (5)의미를 완벽하게 알고 있고 사용한다 등 다섯 단계로 나눠 물었다.750명 가운데 20대 초반(20∼25세)과 후반(26∼30세),30대 초반(31∼35세) 참가자가 각각 200명이었고 35세 이상 참가자는 150명이었다.

20대 초반은 12개 단어에 대해 중복해서 답한 결과 1391명(58.0%)이 (1)∼(3)번을 선택해 뜻을 모르고 있다고 답했다.20대 후반은 1475명(61.5%)이 모른다고 답했다.30대 초반은 1802명(75.1%)이,35세 이상은 1493명(82.9%)이 대체로 모르는 편에 속했다.

컴퓨터 타자 실수에서 파생된 단어로 10대들에게 ‘완전’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오나전’이란 단어에 대해 20대 초반 139명(69.5%)이 (1)∼(3)번을 선택해 뜻을 모르고 있다고 답했다. 뜻을 알고 있다는 의미인 (4)번과 (5)번을 선택한 사람은 61명(30.5%)에 불과했다.20대 후반은 156명(78%),30대 초반은 171명(85.5%)이 뜻을 몰랐다. ‘솔직히 말해 대박나다.’의 줄임말로 쓰이는 ‘솔대’ 역시 2030 10명 중 8명 이상이 모른다고 답했다.20대 초반의 86.5%,20대 후반의 82.0%가 이 단어 뜻을 몰랐다.30대 초반은 85.0%,35세 이상은 86.0%가 모른다고 답했다.

‘엑스박스’의 줄임말로 인터넷 상에 이미지가 안 나오거나 그림이나 동영상의 링크가 잘못 걸렸을 때 ‘X’표시와 함께 뜨는 작은 상자를 뜻하는 말인 ‘엑박’도 2030들에겐 남의 나라 말이었다.20대 초반은 45.0%가 모른다고 대답했지만 20대 후반은 59.5%,30대 초반은 83.0%가 모른다고 답했다.35세 이상 가운데 모르는 사람은 84.7%였다.‘안습하다.’란 단어 역시 20대 초반의 74.5%,20대 후반의 74.0%가 뜻을 몰랐다.

20대보다 30대가 10대 외계어에 더 부정적

10대 언어에 대한 반응은 20대와 30대가 다르게 나타났다.

‘앞으로 10대들이 사용하는 은어를 계속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20대 초반은 30.0%(60명),20대 후반은 39.0%(78명)가 ‘사용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반면 30대 초반은 56.0%(112명),35세 이상은 62.0%(93명)가 ‘사용하지 않겠다.’고 답해 30대가 20대보다 10대들의 외계어에 상대적으로 더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그들만의 언어’ 외계어 변천사

가상공간을 오가는 ‘외계어’변천사는 어떻게 될까.

가장 먼저 한글을 파괴한 ‘주범’은 1990년대 초중반 보편화된 무선호출기(삐삐)다. 당시 숫자만 전송할 수 있었던 호출기를 통해 ‘486(사랑해)’‘7942(친구사이)’‘8255(빨리오오)’‘1004(천사)’ 등 메시지가 10대부터 30,40대까지 폭넓게 쓰였다.

비슷한 때 하이텔과 천리안, 나우누리 등으로 대표되는 PC통신이 대중에 확산되면서 가상공간 언어는 더 늘어났다. 이 시기의 특징은 전화선으로 연결된 통신비용을 아끼기 위해 줄임말을 많이 쓰게 된 것.

‘안녕하세요’의 줄임말인 ‘안냐세요’와 ‘반갑습니다.’를 뜻하는 ‘방가’를 비롯해 ‘ㄱㅅ(감사)’‘ㅊㅋ(축하)’‘냉무(내용없음)’‘강추(강력추천)’‘드뎌(드디어)’‘글구(그리고)’‘열공(열심히 공부하다)’ 등이 대표적이다. 반가움을 뜻하는 ‘하이루’와 대화방에 다시 들어온 사람에게 인사를 하는 ‘리하이’ 등 신조어도 생겼다.

90년대 후반 초고속 인터넷이 전국에 보급되면서 가상공간 언어는 제2세대로 진화한다. 인터넷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뜻하는 ‘네티즌’, 타인의 글에 붙이는 자신의 의견인 ‘덧글’과 ‘답글’, 악의적으로 덧글을 다는 사람을 일컫는 ‘악플러’ 등 용어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함께 등장해 폭발적인 인기를 누린 ‘스타크래프트’ 등 게임도 가상공간 언어가 진보하는 데 한몫했다. 무언가를 살필 때 ‘옵서버(정찰용 캐릭터)로 본다.’, 다쳐서 치료할 때는 ‘메딕(치료 캐릭터) 불러라.’ 등의 게임 문장이 일상 생활에서 버젓이 사용됐다.‘포트리스’라는 게임에서 여러 캐릭터가 한 캐릭터에게 공격을 가한다는 의미인 ‘다굴하다.’란 단어가 가상공간 사전에 포함되기도 했다.

2000년대 초반 디지털카메라 공동구매 사이트에서 네티즌들의 정보 공유 사이트로 성격이 바뀐 ‘디시인사이드’가 인기를 끌면서 가상공간 언어는 더 이해하기 힘든 세계로 빠져들었다. 기분이 좋거나 황당하고 어리둥절할 때 느끼는 감정을 대신해 ‘아’, 돈을 함부로 쓰는 행위를 두고 ‘지름신이 강림하셨다.’ 등 표현이 사용됐다.

드라마나 만화, 영화 등 하나의 콘텐츠에 빠진 사람들을 일컫는 ‘폐인’,‘위협하다.’는 의미를 가진 ‘방법하다.’,‘당신이 최고’라는 의미인 ‘원츄’ 등도 이때부터 쓰이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하삼체’가 유행이다.‘하삼체’는 말끝마다 ‘삼’자를 붙이는 것으로 ‘밥먹었어?’를 ‘밥먹었삼?’ 등으로 쓰는 말투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2006-02-22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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