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성품이 악덕하여 고치기 어렵다는 사람도 그 정도가 아주 심하지 아니하면 또한 상황에 따라 잘 처리하여 마침내 서로 헤어지는 지경에는 이르지 않도록 해야 하며, 옛날에는 아내를 내쫓으면 딴 사람에게 시집을 갈 수 있었으므로 칠거지악의 이유로 아내를 내쫓을 수도 있었으나 지금은 여자는 한번 시집가면 평생 한 남자를 따라야 하는데, 어찌 마음이 맞지 아니한다고 아무런 관계 없는 사람처럼 또는 원수 보듯 하여 자기 아내를 허무하게 천리 밖으로 내쳐서 가정을 다스리는 도리를 망가뜨리고 자손을 끊기게 하는 불행을 저지를 수가 있겠는가. 대학에 말하기를 ‘자기에게 잘못이 없는 연후에 남의 잘못을 나무란다(無諸己而后非諸仁).’고 하였는데, 이 점에 있어서 내 경우를 들어 말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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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가 말하였던 ‘자기 잘못이 없는 연후에 남의 잘못을 나무란다.’는 말은 대학의 제9장에 나오는 말로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요순이 천하를 다스림에 인으로 하니 백성들이 그를 따랐고, 걸주(桀紂)가 천하를 다스림에 포악함으로 하니 백성들도 따라서 악해졌느니라. 지도자가 명령하는 것이 그 자신의 행동과 반대되는 것이면, 백성들이 따라 하지 아니하는 법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자기 자신에게 선함이 있은 연후에 남에게 선을 권하고 자기 자신에게 악함이 없는 연후에 남의 잘못을 나무라는 법이다. 자기 자신에게 남을 용납하고 남과 함께 선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이 남을 가르칠 수는 없는 법이다.”
퇴계가 이함형에게 주는 편지 속에서 대학에 나오는 이 문장을 인용하였던 것은 부부유별의 어려운 윤리를 실천하였던 자신의 처지를 감히 말함으로써 이함형도 자신을 본받아 옛 성현의 말을 마음에 새기고 이를 실천해 주기를 바라는 충정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러고 나서 퇴계는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았던 권씨 부인과의 결혼생활을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다.
“나는 일찍이 재혼하였으나 한결같이 불행이 심하였네. 그러나 나는 스스로 각박하게 대하지 아니하고 애써 잘 대하기를 수십년이나 했다네. 그간에 더러는 마음이 뒤틀리고, 생각이 산란하여 고뇌를 견디기 어려운 적도 없지는 않았으나 그렇다고 어찌 내 생각대로 인간의 근본도리를 소홀히 하여 홀로 계시는 어머니의 근심을 사게 하겠는가. 옛날 후한(後漢) 때의 사람 질운()이 ‘아내와 부부의 도리를 어기어 자식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자는 실로 진리를 어지럽히는 사특한 자이다.’라고 말한 바가 있는데, 내가 이 말을 빌려 자네에게 충고하노니, 자네는 마땅히 거듭 깊이 생각하여 고치도록 힘쓰도록 하게. 이 점에 있어서 끝내 고치는 바가 없으면 굳이 학문을 해서 무엇을 할 것이며, 무엇을 실천한단 말인가.”
이함형에게 준 사신을 통해 알 수 있듯이 권씨 부인과의 16년에 걸친 결혼생활은 ‘한결같이 불행이 심하였던’ 불우한 시절이었다. 오죽하면 퇴계 스스로가 ‘더러는 마음이 뒤틀리고 생각이 산란하여 고뇌를 견디기 어려운 적도 없지 않았다.’고 고백하고 있었음일까.
그러나 퇴계는 아내 권씨를 자신의 덕을 쌓는 수양의 화두로 삼았음이니, 일찍이 세기의 철인 소크라테스는 악처 크산티페를 두었는데, 사람들이 소크라테스에게 왜 그런 악처와 사느냐 물었을 때,‘훌륭한 기수일수록 성질이 사나운 말을 타는 법이오. 왜냐하면 그런 말을 잘 달래서 탈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어떤 말이라도 다 탈 수 있기 때문이오. 내가 크산티페를 잘 다룰 수 있다면 어떤 악한 성질을 가진 사람이라도 잘 달랠 수 있기 때문이오.’라고 말한 것과 비교할 수 있음이다.
2005-04-06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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