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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파이어는 왜 외로운 사람을 찾아왔나

뱀파이어는 왜 외로운 사람을 찾아왔나

하종훈 기자
하종훈 기자
입력 2021-07-01 17:42
업데이트 2021-07-02 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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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찾아오는 구원자
천선란 지음/안전가옥/304쪽/1만 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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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찾아오는 구원자’ 책표지  안전가옥 제공
‘밤에 찾아오는 구원자’ 책표지
안전가옥 제공
치매와 불구 환자들이 대부분인 인천 철마재활병원에서 자살 사건이 네 차례나 연이어 발생한다.

우연이라기엔 수상한 낌새에 형사 수연은 수사에 들어갔다. 현장에서 만난 의문의 여성 완다는 자신이 ‘뱀파이어 헌터’라며 이 사건이 뱀파이어의 소행이라고 말한다. 이 병원 간호사 난주는 빚 독촉에 시달리며 가족을 부양하느라 허덕대며 고단한 삶에 절망한다. 어느 날 나타난 뱀파이어는 자신이 구원해 주겠다고 손을 내밀고, 난주는 그의 손을 잡고 싶어 한다.

SF소설 ‘천 개의 파랑’으로 혜성처럼 떠오른 천선란 작가의 신작 ‘밤에 찾아오는 구원자’는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 ‘뱀파이어’와 인간의 애증을 세 여성의 관점으로 풀어낸다.

작가가 창조한 뱀파이어는 외로운 사람들의 피 냄새를 맡고 그들을 찾아 헤매면서도 아름답고 로맨틱한 존재로 나타난다. 수연은 경찰 생활을 통해 고독에 무감각해졌고, 완다는 어렸을 때 프랑스 가정에 입양된 외로운 이방인이다. 착한 딸이었던 난주는 가족의 도움을 받지 못한 채 홀로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간다. 사람에게서 치유받지 못하고 사람 때문에 거듭 고통을 당했던 이들이 뱀파이어에게 끌리는 것은 필연적 흐름이다.

“죽음은 두려운 것이 아니라 끔찍한 세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안온한 피난처이자 완벽한 구원이죠.”(272쪽) 사람을 죽인 뱀파이어의 항변은 우리 주변 이웃들을 외롭게 방치해 둔 인간 사회에 대한 질타로 풀이된다.

아울러 작가는 뱀파이어가 견뎌야만 하는 현실과 시간을 통해 우리 사회 소수자에 대한 차별도 은유적으로 지적했다. 생존을 위해 피를 마셔야 한다는 이유로 배척당해야 했던 존재, 인간보다 훨씬 오래 살면서도 존재를 숨겨야 하는 고통을 감내할 이들을 무작정 배제하는 것이 옳은지 고민하는 섬세한 시선이 엿보인다.

이야기의 흐름을 좇으며 읽다가도 등장인물들이 처한 상황에 감정을 이입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된다. 인간 세상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이 잔잔한 여운을 남긴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2021-07-02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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